땅 끝까지

10여 년 전
몹시 지쳤을 때
홀로 버스에 몸을 싣고
마냥 마냥 갔습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땅 끝이었습니다.
그곳이 땅 끝이 아니었다면
더 갔을 것인데
땅 끝이기에
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땅 끝에 가면
아는 이 하나도 없이
외로울 것이란 사실을
대학시절
혼자 여행하며 체득한 바,
추운 겨울 바다
과연 아는 이는 고사하고
모르는 이조차 없었습니다.
거센 겨울 바다 바람에
서 있기 힘들어
바닷가를 서성이다가
옴폭 들어간 바위를 발견하곤
그곳에서 한없이 있었었지요.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매서운 겨울 칼바람인데
그곳은 포옥 들어간
따스한 곳이었습니다.
그 때, 포근한 바위틈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절벽 위의
해송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성령님께서,
지친 호렙산 동굴 속의
엘리사를 감쌌던
그 성령님께서
이렇게
나를 감싸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바로 그 장소에
다시 한 번 지친 영혼을 끌고
찾아 찾아 갔습니다.
10여 년 전과 달리
많은 건축물들이 있었고
한겨울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나에겐 없었습니다.
옛날의 그 장소,
성령님께서 나를 감싸셨던
그 장소를 찾느라
내 마음은 분주했습니다.
그곳, 그대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
이제 이곳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주님을 만나리라.
벅찬 기대감 속에 한참을
그 곳에서 머물며 두리번거리는데
아, 그곳에 성령님은 아니 계셨습니다.
지친 내 영혼을 보듬어 주신
그 세미한 손길은 없었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서 오는 내 마음,
편안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실 줄 알고
먼 길을 찾아갔었는데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서도
내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잠시 당혹스러워 두리번거리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속삭이셨습니다.
'내가 왜 땅 끝에 있어야 하니?
이미 네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씨익 웃고
돌아서 왔습니다.
하나님은 땅 끝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 안에, 내 삶 속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내가 그걸 의식 못했던 거지요.
아마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요즘엔 뭔 말을 하려면
눈시울부터 자꾸 뜨거워지는데
늙어가는 징조인가 했는데
사실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 영혼에게 말씀하고 계시던 거였습니다.
미련하게 내가 그걸 몰랐었지요.
왕십리 골목에서
일찌감치 무릎만 끓었어도
나를 보듬어 안으셨을 것인데
몸부림만 쳤지
꿇지를 못해서 …….

/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