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3:23-28)

 

1.

 

나는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중고생 시절, 모범생이었을까요, 문제아였을까요? 범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교회에서 혼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정문 앞에 있는 빵집 그린하우스에서 선배 여학생과 빵 먹다가 교회 선생님에게 들켜서 혼났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될 일이지만, 당시에 중고생은 빵집, 극장에 함부로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교회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금지시키고 있었습니다. 주일날 돈 쓰지 마라, 연애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담배피지 마라, 소대나시 입고 오지 마라, 당구장 가지 마라, ... 심지어 교회에서 기타를 치다 장로님께 혼 난 친구들도 있었고, 야유회에서 유행가 한번 불렀다가 요시찰(要視察) 인물이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자유분방한 젊은 혈기의 청년들에게 무수한 족쇄를 채웠습니다. 그러면서 그러셨습니다. 그것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다 죄짓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어떨 때는 죄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술 마시지 마라, 연애하지 마라, 극장가지 마라, 당구장 가지 마라, 유행가 부르지 마라, 주일날 돈 쓰지 말라고 죄를 운운하며 가르치던 어른들은 내가 보기엔 좀 이상했습니다. 그 분들은 모이기만 하면 언제나 쑤군덕거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들어보면 대부분이 목사님 흉을 보고, 장로님들을 미워하고, 서로간에 시기하고, 누구는 누구 편이래 하며 파벌과 분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집안을 흉보는 이야기들, 결코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더 큰 죄일까요? 어쩌다가 직업상 또는 분위기 상 술 한 잔 한 젊은이가 대 죄인인가요, 아니면 뒤에서 집요하게 편을 가르고 쑤군덕거리는 이가 대죄인가요? 담배 피는 것은 죄이고,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집요하게 미워하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요? 극장가는 것은 죄이고, 예배드리며 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요? 서로 사랑하라는데 서로 미워하고 있는 것은 괜찮은가요? 섬기라고 하는데 무시당했다고 삐져있는 것은 죄 아닌가요? 도대체 뭐가 더 큰 죄인가요?

 

2.

 

나는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늘 비뚤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활한 세리, 윤락녀, 그래서 예수님을 칭할 때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라고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좀도둑, 교만한 군인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매섭게 책망하신 적도, 잔소리하신 적도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한심한 이것들아!’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열 받으셔서 흥분하여 호통을 치신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 ‘위선자’, ‘눈 먼 인도자’,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동원하여 책망하시고 경계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얼마나 큰 죄인들이기에, 얼마나 형편없는 인생을 살아가기에, 그 생활이 얼마나 문란하기에 그리하셨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누군가요?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 열심은 가히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주 철저히 율법을 준수하는 이들입니다. ‘바리새’라는 말도 ‘구분되다,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일반인들과는 구분된, 이 더러운 세상과 떨어진 구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죄악의 세상과 그들은 짝할 수 없었고,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자기들 나름대로의 경건한 생활공간을 갖고 살던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경멸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그 말씀을 지키지도 못하는 일반 대중들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세리나 윤락녀가 스쳐 지나가거나 함께 자리를 했을 경우에는 그 더러움이 옮겨올지 모른다고 몸을 씻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생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었고, 정기적인 금식과 기도 생활에 철저했고, 십일조를 정확히 바치고, 매 순간 율법에 순종했고, 새로운 회심자를 얻기 위해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성적인 범죄나 폭력적인 범죄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깨끗이 사는 이들이라면 교회에서는 최고의 존경을 받을 만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생활을 지향하는 성도들이 볼 때에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깨끗한 이들을 주님은 얼마나 대견해 하셨겠습니까? 세리와 윤락녀들과 함께 있기보다는 이렇게 성결해 보이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예수님께 훨씬 더 편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편안함을 주님은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복음서를 살펴보면 주님은 이들과 함께 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해 입을 여시기만 하면 책망하셨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이토록 착하고, 성결해 보이는,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 이들도 없는데 왜 주님은 도리어 그들을 거북해 하셨을까요? 아니 거북한 정도가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분노까지 느끼셨습니다.

 

3.

 

오늘 본문, 마 23장은 1절부터 35절까지 바리새인에게 쏟아 부으신 예수님의 질책입니다. 마 5장에선 예수님께서 ‘복이 있으라!’하시면서 8복을 쏟아놓으셨는데, 이 마 23장에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하시며 7가지 저주를 쏟아놓으십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이렇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새번역 성경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헬라어 원어 성경은? 이 부분 제일 앞에 나오는 단어가 ‘onai’ 라는 단어입니다. ‘화가 있으라!’는 저주가 먼저 선포되는 단어입니다. 이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며 ‘위선자들아!’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로 화가 있다는 말입니다. 위선이 뭔가요?

 

어느 집에 심방을 갔는데, ‘외식은 위선이라고’ 설교를 하고 나자, 그 집 아이가 나에게 자기 엄마를 고자질 합니다. “목사님, 우리 엄마는요 위선자예요.” 놀래서 “왜?”라고 물었더니 그럽니다. “우리 엄마는요 맨날 아빠에게 외식하자고 해요.”

 

외식, 밖에서 밥 사먹는 것도 외식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외식은 그게 아닙니다. 위선입니다. 위선이 뭔가요?

 

솔직한 심정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위선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예(禮)를 차리기 위해서 부득이 위선적인 인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정의감과 혈기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으며 여러 사람과 관계 속에서 살다보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더 많습니다. 그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는 생각에 겉과 속이 다를 때가 참 많습니다. 이게 위선적인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책망하시고 저주하신 위선은 이런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위선의 실체에 주목해 봅시다.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약용 식물로 극히 적은 수입을 가리킵니다. 수입이 별로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 즉 수입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양이지만, 그것조차 철저하게, 1원까지 챙겨서 십일조를 계산하여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것이 왜 책망을 받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그런 철저한 물질의 십일조는 드리면서도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율법이 명하는 물질의 십일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율법의 정신, 율법의 중심인 정의로운 삶,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십일조 잘 드려도 여러분이 정의롭지 못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고, 돈을 떼어먹고, 사기를 친다면 허사입니다. 잘못한 이를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냉정하게만 대한다면 자신의 경건 생활은 무게를 잃습니다. 믿음, 믿음이 부족하다면 그게 더 큰 문젯거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중요한데 그러면 왜 바리새인들은 이것, 사소한 십일조까지는 챙기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렸을까요?

 

십일조는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정의와 긍휼, 믿음은 내적인 것으로 남이 쉽게 눈치 채기 어렵습니다. 그저 말없이 근엄하게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다 성인으로 알아줍니다. 내 속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외형적인 것들만 철저히 챙기면 자신은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적은 수입의 십일조까지 챙겨 드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탄합니다. ‘대단히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놀랍니다.

 

그러나 ‘정의, 긍휼, 믿음’은 쉽게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의롭지 못하고, 긍휼심이 없어도, 믿음이 부족해도 십일조만 잘 내면 사람들은 자신을 훌륭한 신앙인으로 인정해 준다는 생각, 바로 이 생각, 동기가 틀렸습니다.

 

보십시오, 이어지는 2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잔과 대접, 어디를 깨끗이 닦습니까? 당연히 안을 닦아야 하지 않습니까? 음식을 담아 두었던, 음료수를 담아 두었던 안을 깨끗이 닦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겉만 깨끗이 닦습니다. 그 안은? 지저분한 것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깨끗이 닦을 것이면 안을 닦아야지 왜 겉을 닦습니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향한 제스추어일 뿐입니다.

 

그래, 사람을 향한 거라고 칩시다, 그럴지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특별히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우리가 열심히 닦아야 하는 곳은 겉이 아닙니다. 내면의 세계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우리의 얼굴입니다. 내면, 속의 모습, 상태를 어떻게 남이 알까 싶죠? 압니다. 우리는 성도들입니다.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신령, 즉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의 상태를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입니다.

 

거울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성경 들여다보는 시간을 더 늘립시다. 얼굴 두드리는 시간보다 영혼 두드리는 시간을 늘립시다. 옷매무새를 꾸미는 시간보다 영혼의 전신갑주를 입는 데 더 시간을 들입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더욱 아름다운 영혼, 아름다운 마음, 청결한 마음이 청결한 향으로 풍겨날 것이며, 사람들이 내 주위에 찾아들 것입니다. 향이 아름다운 인생이 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맑고도 맑은 그리스도의 향이 그윽히 풍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삼상16: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으실 때의 장면인데,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와 관계없이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들은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외모보다 내 중심을 보신 다니 얼마나 감사한가요!

 

그런데 한번 심각하게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정말 내 중심, 내 속은 괜찮은가?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길에 견디어 낼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겉을 보지 않으시고 속을 보시고는 책망과 저주를 쏟아내셨는데, 과연 나는 그 예수님 앞에서 내 속을 제대로 보일 수 있는가? 내 속은, 내 생각은, 내 은밀한 마음의 방은 과연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에 힘쓰기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예수님이 보시고 ‘이 위선자여!’라고 책망하시지 않도록 내면의 세계를 닦아갑시다.

 

마가 7:20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주님 보시기에 뭐가 더 큰 죄인가요? 생활 속의 작은 실수들인가, 내면에 항상 잠재되어 있는 것들인가요? 젊은이들에게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는 이들이, 자기 내면에는 바로 이 예수님이 지적하신 오만가지 죄악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금식 기도에 힘을 쓰며, 십일조, 감사 생활에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힘쓰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의 내면의 세계, 머릿속의 생각, 깊숙한 마음에 오만가지 추한 것들과 미워하는 마음, 시기심, 경쟁심, 우월주의, 독선주의, ...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면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못 견뎌하시고 거북해 하셨습니다.

 

5.

 

사랑하는 여러분, 내면의 세계를 닦읍시다. 신앙은 겉을 닦는 게 아니라 속을, 내면을, 영혼을 닦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싯귀에 있는 표현입니다. “드러내놓아 / 전혀 거리낌 없는 삶을 살게 하소서 / .... 나의 속을 꺼내놓아 / 이미 표현된 나와 / 꼭 같게 하시고 / .... 주님 / 드러내놓아 / 전혀 거리낌 없게 하소서”(안상순)

 

안과 밖이 동일한 모습에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가까이 두시기에 거북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심을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