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24)

     1.

     십자가, 요즘엔 우리 사회에서 십자가란 말을 듣기 어렵지 않습니다. 많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심지어 절간에서도 심각한 회의를 하다가 어느 수님이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소승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스님도 십자가를 지겠다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더 말 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면 십자가, 십자가가 뭔가요?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한 십자가, 액세서리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십자가, 그러면서도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찡한 느낌을 주는 십자가, 십자가가 대체 뭔가요?

 

     2.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이 십자가형은 로마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님 이전 수세기 전부터 고대 근동의 여러 국가 즉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에서 죄수를 처형하는 도구였습니다.

 

     이 십자가 형벌이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에도 행해졌는데 십자가 형벌은 너무나 가혹했기에 아무나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십자가형을 로마 시민에게는 하지 않고 거의 노예나 외국인 그리고 악한 죄수 또는 반역자들에게 행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은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심한 매질부터 합니다. 그 매질이 얼마나 심한지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심하면 창자가 튀어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달릴 나무를 지고 형장으로 가서 그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기절했다 깨어났다 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고 합니다. 손목과 발목에 못이 박힌 고통, 그리고 몸무게 때문에 몸이 밑으로 쳐져 숨을 쉬기도 불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이 고통만 계속되는데 그러다 하루 이틀 만에 대부분 죽습니다. 그러나 로마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십자가에 매달려 보름까지 간 이도 있답니다. 숨을 거두면 매장을 허락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죽은 후에도 시신을 그대로 매달아 두어 새들이 뜯어먹게 해서 처벌의 본보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라 로마도 사형 중에 법적 최고형으로 규정해두었고,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할 형편이었답니다. 영어 단어 중 ‘말 못할 고통, 미칠 듯한 고통’이라는 뜻의 ‘EXCRUCIATING’의 어원이 바로 이 십자가, ‘CRUCIFIX’에서 왔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말로 못할 고통이요, 모욕이요, 끔찍한 것이요, 저주였습니다.

 

     3.

     이런 십자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갑자기 십자가가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모두 자기 십자가가 있답니다. 내 십자가, 뭔가요?

 

     속 무지 썩히는 자식을 두고 ‘내 십자가’라고 눈물짓는 부모가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두고 ‘내 십자가’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남편을 두고 ‘내 십자가’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렵게 부양하는 가족을 향해 ‘내 십자가’라고도 합니다.

 

     십자가, 고생덩어리인가요? 짊어져야 할 책임감인가요? 생활고인가요? 질병인가요? 단순히 그런 건가요? 그러면 그런 고생덩어리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요? 왜 예수를 따르는데 죽어라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요? 왜 없는 고생덩어리라도 찾아서 짊어져야 하는 건가요?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 앞에는 큰 개천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매월 청소하는 날이 있어서 전교생이 일찍 나와 청소를 하는데, 개천 청소가 언제나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대충해라.’ 이왕하는 청소 깨끗이 해야 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러시더라구요. ‘다음 달에 또 개천 청소해야 하는데 이번에 너무 깨끗이 하면 다음 달에 청소할 게 없어진다. 적당히 대충해라.’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데, 그 십자가가 단순한 삶의 고통이요, 부담이요, 고생스러운 것이라면 없는 것이 나은데, 굳이 없음에도 그런 것을 만들어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른다? 말이 안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로마의 형벌입니다. 로마 제국 내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들,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면 그들 모두가 다 천국 갔습니까? 십자가 자체는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통덩어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수고와 부담과 고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내가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과 불이익과 분노와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깨끗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당해야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그런 영적, 신앙적 가치관들을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 죽겠는데, 성령의 감동은 자꾸 저렇게 하라고, ‘그래도 네가 성도 아니냐, 목사 아니냐, 집사 아니냐’하며 나로 하여금 참으라고 할 때의 자존심 죽이기입니다. 그냥 무시하고 그냥 해치우면 제일 시원하고 간단할 것 같은데,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살라는 바람에 일어나는 내적 고민과 갈등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예수의 사람으로 가장 기본적인 주일 성수, 이것을 지켜갈 때 당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의 몰이해, 불신 가족의 조롱, 희생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규범, 소득의 열의 하나를 드려야 하는 큰 믿음의 결단, 범사에 감사하는 위대한 손길, 그 바쁜 생활에서도 감당해야 하는 봉사와 충성으로 인한 시간 드림, 남들이 이해 못하는 헌신의 삶, ... 등등 오늘날 사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눈길로 바라보는 그 모든 부담스러운 시선들,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온 것이라면 그게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4.

     오늘날은 십자가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합니다. 영광과 축복만 있지 십자가가 사라진 교회라고 합니다. 동네에서 시끄럽다고, 집 값 떨어진다고 핍박 받는다고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무슨 십자가인가요? 그건 지혜롭지 못한 열매입니다.

 

     정작 교회가 잃어버린 십자가는 예수님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 희생, 부담입니다. 이젠 모두가 부담 없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봉사와 섬김, 희생이 사라졌습니다. 십자가가 사라진 것입니다.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 그런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성도가 잃어버린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살기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판단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데 걸리는 십자가입니다. 그런 모든 십자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처럼 살기에 떠안아야 하는, 맞닥뜨려야 하는 모든 십자가를 우회해서 지지 않고 편하게 따르려고 합니다. ‘아 그냥 대충합시다!’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없습니다. 액세서리, 대충 모양만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 예수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 예수를 따라가며 당하는 피해, 희생, 몰이해, 왕따, 심지어 폭행 등등 이런 것을 당하는 것이 다 미련한 짓입니다. 누구에게? ‘멸망하는 자들에게!’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이게 다 미련한 짓입니다. 종교를 갖는 것이 자기 인생 행복하려고, 잘 살려고 그런 것인데, 도리어 예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고, 고통을 당한다? 바보짓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 멸망하는 자들에게!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뭐라구요? 하나님의 능력! 우리는 어떤 이들이기에? ‘구원을 받는 우리!’ 이 말씀의 의미를 아시는가요?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보상되고 뒤집어집니다! 지금은 예수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예수 때문에 무시를 당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그 모든 것들, 그게 내 십자가입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런 자기 십자가 있습니까? 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쁘단 소리 듣고, 잘한단 소리만 들으려 하지 예수 때문에 자기 감정을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존심을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신앙양심으로 잘 알면서도 용서가 안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세속적 욕망을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기독교는, 교회는 너무 부해지면 십자가를 잃어버립니다. 가급적 십자가는 피하고 싶습니다. 편한 대로로 갈수도 있는 데 왜 굳이 좁은 길로 가야 하느냐고 대드는 교인들이 많이 생기는 교회, 교회가 아닌 종교 클럽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그러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그게 쉽던가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만 아니었다면 한 탕 했을 것인데, 예수님만 몰랐다면 한바탕 속 시원히 쏟아 붓고 쏘아주었을 것인데, 예수만 믿지 않았다면 눈 딱 감고 받았을 것인데, 예수만 몰랐다면 당연시하며 손을 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못했습니다. 못 갔습니다. 못 먹었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러나 그게 자신을 살릴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데 당하는 모든 어려움, 고통, 속상함, 부담감, 두려움, 불이익, ... 그게 십자가입니다. 막연한 삶의 고통이 십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것들이 다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집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처럼 살고프다면, 예수님께 바싹 따라붙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부인, 자기 욕망을 부인, 자기 욕심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그에 따르는 어려움, 자존심 상함, 불이익, 손해, 왕따, ... 그것들을 집시다. 그리곤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5.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스도인에겐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 십자가,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눅19장에 보면 십자가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그 길을 예수님은 어떻게 가셨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그 장면을 묘사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눅19:28)

 

     주저하지 않고 앞서서, 성큼성큼 가셨습니다. 가봐야 십자가가 자기를 기다리는데, 그 십자가는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십자가였지만, 그 고통의 십자가가 바로 성부 하나님의 뜻이고, 그 길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에,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 길을 앞서서 가셨습니다.

 

     사는 게 힘든 게 자기 십자가 아닙니다. 평생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자기 십자가 아닙니다. 책임지고 살펴주고 평생 돌봐야 할 가족이 자기 십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하며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도 펼치기 위한 삶에 부닥뜨리는 어려움, 불이익, 속앓이, 때로는 고통, 폭행, ... 그것들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지난 금요밤 기도회 시간에, ‘내 십자가 내가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감동이 내게 찾아들었습니다. ‘십자가? 너는 십자가, 십자가 하는데 너의 십자가가 뭐냐? 툭하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지겠다는 것 아니냐? 요즘엔 알지도 못하면서 십자가 지겠다는 이들이 너무 많더라.’

 

     십자가, 막연히 뜨거운 게 올라옵니다. 본능적으로, ‘그래, 십자가 져야지.’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구체적으로 뭔가요? 내가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십자가가 뭔가요?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눈물 흘리며 감동하기에 우리는 늘 감성에 속습니다.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있는 줄 착각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져야 할 십자가, 막연히 삶의 고통을, 불이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예수님처럼 섬기기 위해 져야 할 십자가, 그것을 집시다. 자존심 상해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용서와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따르기 위해 내 스스로 할 수 없는 그것들을 감당합시다. 피곤함에도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섬김, 봉사, ... 즐겁게 감당합시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뭣도 모르는 이들은 환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예루살렘 입성은 뭘 의미하는가요?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초연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제자 아닌가요?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져야 할 십자가를 집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릅시다. 감격적인 구원과 영광의 부활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