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0:20-28)

  

     1.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 있노라면 참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그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씁쓸함과 조용한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에’라고 시작합니다. 그 때는 어느 때인가요? 바로 그 앞 절, 17-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곧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그 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고 핍박받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하나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확신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그들에게는 다른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자기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라고 하는 ‘예루살렘 입성’이란 사실에만 온 마음이 쏠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관심이 거기에만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즉, 드디어 하나님 나라의 대권을 잡으실 때가 되었다는 뜻 아닌가요?

 

    2.

    그러기에 그 때에, 제자들의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것은 이제 권력을 잡으실 때가 다가왔다는 뜻인데, ‘야 빨리 손을 써야지 자칫하면 밀리겠다’ 싶은 그런 세속적 생각이 제자들에게 가득했습니다.

 

    그중에 머리가 빨리 회전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이 둘이 자기 어머니를 대동하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왜 어머니를 대동했을까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겐 이모입니다. 혈육을 이용하여 한 자리 잡으려고 나온 이들입니다. 한 두 살 먹은 아이들이 아닙니다. 어른들입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대동합니다. 그만큼 마음이 다급했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아무래도 말하기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무슨 말을 하긴 하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횡설수설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무엇을,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서울 노회의 유명한 장로님 이름을 대며 잘 아는 사이라고 하면서 찾아왔습니다. 마주 앉았는데 가만 보니 별로 할 말도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얘기 저 얘기 합니다. 시국(時局)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부조리 이야기를 하더니,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이야기에 열을 내더니 다시 태평양을 건너와서 교회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랬더니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데 차비 3만원만 꾸어 주십시오.” 합니다.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 살로메까지 동원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는 뭔 말을 하긴 하는데 우물쭈물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자기들의 본심을 드러내는데, 그 어머니가 요청합니다.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쉽게 말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권력을 잡으실 때에 자신의 두 아들을 각각 좌의정, 우의정에 앉혀달라는 치맛바람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3년간 따라 다녔고, 3년간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고, 3년간 친히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이들만큼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잘 아는 이들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제 예수님께 요청하는 게 뭔가요? 세상 권력입니다. 세상 권세입니다. 벼슬입니다. 이게 참 떨치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이룰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날의 거대한 로마 바티칸 왕국처럼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손쓰기 전에 빨리 앞서자 하여 야고보와 요한은 그 어머니까지 대동하여 예수님께 나아가 인사 청탁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24절,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왜 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분히 여겼을까요? 정의로워서? 아닙니다. 자기들도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그 놈들이 어머니까지 동원하여 먼저 선수를 치다니...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다 똑같은 야망을 갖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데, 그 제자들은 섬김을 받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귀를 알아들으셨습니까?

   

    3.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계급으로 생각하니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싸웁니다. 그건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신앙 공동체, 주 예수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사는 교회에선 벼슬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공동의회를 통해 장로를 선출합니다. 장로라고 하니까 무슨 벼슬자리를 얻는 날인줄 아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들은 말인데, 어느 여 집사님은 권사가 되고픈 데 권사 투표에서 번번이 떨어지니까, 집에 가서 애매한 남편을 볶았답니다. ‘당신이 장로가 되지 못해서 내가 권사가 안 돼.’ 교회에서 서운한 일을 당하면 남편에게 분풀이를 이렇게 하곤 했답니다. “당신이 장로라면 내게 함부로 했겠어요?”

 

    공동의회는 우의정, 좌의정을 뽑는 날이 아닙니다. 최고의 인기짱을 뽑는 날도 아닙니다. 모든 환난과 고통이 밀려올 때 앞장서서 온 몸으로 교회와 교인을 위해 막아주고 희생할 이를 찾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얼굴도 안 보이는 이가 아니라, 늘 눈물과 기도로 주님을 섬기고, 교우들을 돌아볼 이를 찾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얼굴도 안 보이는 이가 아니라, 늘 눈물과 기도로 주님을 섬기고, 교우들을 돌아보는 이를 찾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희생할 줄 아는 이를 찾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아주 감동적인 설교를 하며 장로직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20:28)

 

    장로직은 뭔가요? 교인들을 위해 모든 행동거지, 말, 감정 등등을 삼가는 이입니다. 성질난다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직이 아닙니다. 꾸욱 참는 삼가는 직입니다.

 

    누가 그들을 세웠다고요? 성령님이 세웠습니다. 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라고!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세운 교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애착이 크겠습니까? 그런 교회를 보살피라고 세운 직이 장로직입니다. 그러니 이 장로직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면서도 얼마나 힘든 직인가요?

 

    20여년 전에, 목사 임직식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임직 받은 초짜 목사님들에게 축사와 권면의 시간인데, 나이 많으신 한 어른 목사님이 나오셔서 그들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십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축하를 해야 할지, 안 됐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임직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직이기에 축하를 해야 하겠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여러분의 청춘은 이제 종친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끝난 겁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에 사로잡혀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겁니다.”

 

    목사만 그러겠습니까? 임직자들은 다 동일합니다. 그러니 장로를 선출하는 오늘은 ‘축하합니다’란 인사말을 들을 사람을 찾는 날이 아니라 어쩌면 ‘미안합니다, 안됐습니다, 그러나 고맙습니다.’란 교우들의 인사를 들을 사람을 찾는 날입니다. 그만한 희생과 양보, 절제, 헌신, 그러면서 존경할 만한 이를 찾는 날입니다.

 

    4.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 어머니 살로메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가까이에서 3년을 살았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펑펑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세속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겸손, 겸허함, 희생, 섬김이란 단어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속적 욕망, 좌의정, 우의정의 권력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행여나 남들이 선수를 칠까 싶어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칩니다. 자신을 뽑아달라고!

 

    이들을 바라보는 예수님, 어떤 심정이실까요? 예수님은 너무 기가 막혀서 물으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에 그들이 답합니다. “할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의 잔을 뜻하시는데, 그들은 세속적 영광의 잔을 생각하고 대답합니다. 이건 완전히 동상이몽(同床異夢)입니다.

 

    뭣도 모르고 대답한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 그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의 잔, 주님조차도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했던 그 잔을 그들은 쥐뿔도 모르면서 마실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주 두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이 마시려던 그 고난의 잔을 결국 마실 것이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네 말대로 될지어다! 하신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와 요한, 뭣도 모르고 호언장담했던 그들,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했던 그들, 어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첫 번 순교를 당한 이가 야고보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지긋지긋하게 오래 살며 고난이란 고난을 다 겪은 이가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순교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장식한 이가 바로 뭣도 모르고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잘 모르고 호언장담한 야고보와 요한인데, 웬만하면 예수님께서 잘 가르쳐 주시고, ‘내가 마실 잔은 고난의 잔인데, 십자가의 잔인데, 너 정말 이래도 내가 마실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실 것이지, 왜 동상이몽의 상태에서 그대로 그들에게 선포하셨을까? 더군다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제자인데, 왜 그의 잘못된 관념, 오해를 풀어 교정해 주시고 다시 물어보실 것이지 왜 왜곡된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저주 같은 무서운 앞날을 선포하셨을까?

 

    이런 아쉬움을 늘 간직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나는 잠잠히 예수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작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형제자매인데, 그 중에서 잘난 체하려고, 형제자매의 그 동등성을 깨고서라도 높아지려고 하는 그 사악한 욕망과 의도에 예수님은 분노를 느끼신 듯합니다.

 

    그러기에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느끼신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높아지려고, 형제와 자매들을 누르고 통치하려고 하는 악한 의도에 그들의 오해, 잘못 이해한 것을 바로 잡아주시지 않고 그대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5.

    이 사람들 ...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때에 예수님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욕망을 표하고, 세속적 이해와 통념 속에 권세와 권력을 잡으려고, 잘 지내던 형제와 자매들을 자기 아래에 두고 자신은 높아지려는 욕망을 드러내다가 예수님의 무서운 선포를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 당회원들은 당회를 할 때 늘 이 찬송을 부릅니다. 다른 찬송은 안 부릅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늘 다잡으려는 듯이 늘 이 찬송을 주님 앞에 부릅니다. 그저 겸허히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겠다는 심정으로 당회를 합니다.

 

    이런 겸허한 마음과 자세에 동참할 참된 주님의 일군들이 오늘 공동의회를 통해 선출될 것을 믿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여러분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