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그 느낌 그대로 왕십리는 좀 침침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이렇게 후지고 처진 지역이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조건으로 인해 뉴타운 1호로 선정되어 천지개벽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산뜻하고 깨끗한 동네로 변신하였죠. 동네가 산뜻해지니 사람들도 그렇게 산뜻해 보이고, 교회도 산뜻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산뜻함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한 분이 교회를 출입합니다. 헝클어진 머리며, 도수 높은 안경, 냄새 나는 옷차림, 피곤한 듯한 얼굴, 뭔가 불안정한 태도, .... 깨끗하고 산뜻한 동네, 그러한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멀리할 수도 있을 법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헌데 이 분이 교회를 출입합니다. 그러더니 점점 예배에 참여합니다. 그리곤 길에서 보면 달려와 인사를 하십니다. 때로는 교회에 작은 도움도 요청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분의 태도와 복장이 그 후 달라졌다는 겁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 머리도 정돈된 모습, ...
 
이렇게 교회를 출입하며 변화되는 분에게 시선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장충단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어렵게 살면서도 2010년에 필리핀 국적의 아내를 만나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슬하에 10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부득이 아내와 아들은 친정인 필리핀으로 보냈습니다. 데리고 오고 싶지만 형편이 못됩니다.
 
작년 말, 성탄절을 앞두고 기도하는데 이 분이 갑자기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 분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장애가 있기에 어렵게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한 재활용품들을 모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형편에 가족을 부를 수도, 자신이 갈 수도 없는 형편 ....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아무래도 주님께서 그를 도우라는 뜻인 듯 하여 12월 왕중헌금은 그를 필리핀의 가족에게 보내는데 사용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