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0-24)
 
    1.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중한 병으로 입원하여 권사님과 심방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소망의 권면을 하고, 우리 주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굳센 믿음으로 치료 잘 받으라고 해 주었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병실을 나서서 몇 발자국 가지 않았는데 동행했던 심방 권사님이 그러더랍니다. “오래 못 가겠지요?”
 
    그 때가 목사님으론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이랍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설령 그게 사실이고, 그게 합리적이고, 의학적으로 옳은지 몰라도 간절히 간구하고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가장 맥 빠집니다.
 
    저도 잠시 이런 일로 믿음이 흔들렸었습니다. 내겐 홍해가 있고, 광야가 있고, 요단강이 있고, 꿈쩍도 안 할 커다란 산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한숨이요, 생각만 하여도 절망입니다. 이것들은 마음에 두면 둘수록 자꾸 자꾸 내 안에서 커져만 갔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들로 인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더욱 더 나를 낙심케 합니다.
 
    이 때 막연한 심정으로,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런 나에게 뭐라 하시는가 보자 하는 심정으로 성경을 펼쳐 읽었습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짧은 게 마가복음서이기에 1장 1절부터 찬찬히 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난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2.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머무르시며 예루살렘 성전에 출근하다시피 한 수난 주간 중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월요일 아침에 예수님 일행은 일찍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길가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였습니다. 너무 시장한 나머지, 뭔가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다가가 보았으나 아무런 열매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열매를 얻기에는 제 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실망하셨던지 14절에서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저주하신 것입니다.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것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리곤 잊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날 화요일 아침, 역시 베다니에서 나와 어제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일행은 어제 보았던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곤 놀라움 속에 베드로가 소리칩니다.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는 왜 놀라움 속에 소리쳤을까요?
 
    다 잊어버렸습니다. 어제 아침 분명,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지나가셨지만, 설마하니 당장에 그렇게 될까 싶기도 했고, 또한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
 
    이렇게 놀라움 속에 외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뭐라 하시는가요? “하나님을 믿으라!” 나는 오늘 본문을 수도 없이 읽고 묵상했었는데,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처음 대하는 심정입니다. 이 장면에선 늘 그 다음 구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만 늘 눈에 들어왔지,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처음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도를 하고, 간구를 하고, 부르짖었으면서도 사실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 후 되어가는 과정을 믿은 것입니다. 그 후 들려오는 이야기, 정보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서도 실상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상황을 더 믿었습니다. 되어져가는 과정에 더 신경 썼습니다.
 
    그러기에 상황이 안 좋아지면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안절부절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터질 때만해도 곧 지나가겠지 했는데, 이것이 두 달 동안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묶어버렸습니다. 교회도 난생 처음으로 영상 예배로 주님께 예배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곧 지나갈 것이라고.
 
    그런데 이게 뭔가요? 모두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5월초 연휴를 보내며 곧 해제되어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엉뚱하게도 이태원에서 그것도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성소수자, 동성애 클럽 중심으로 재 확산되었습니다. 우리 동네까지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학교도, 교회도, 직장도 다 비상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불안한 모습들, 급변하는 모습들, 경제 침체, 불길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기도하고서도 내 중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한 사람답게 그 후에도 내 모든 관심과 마음, 정신, 영혼을 하나님께 집중했어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곤 결국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메라를 처음 구입하여 사진을 찍으면 익숙지 않아 손이 떨려 사물이 깨끗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초점을 잘못 맞추어, 찍으려고 한 것은 흐리게 나오고, 도리어 그 뒤의 배경은 더 선명하게 나옵니다. 어떨 때는 ‘아니 거기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뜻밖의 배경이 더 선명하게 찍힌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게 신앙의 안목입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부족한 신앙입니다. 참 신앙은 불신의 세상에서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어’라고 하는 데도 자신은 자신만의 미소를 지으며 분명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곤 그 믿음 위에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합니다. 그게 참 신앙입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신앙의 안목에 노안이 왔는지 자꾸 그 뒤의 배경, 불안한 현실, 애매모호한 현장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보이면 좋겠는데, 부정적인 것들이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신앙의 초점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내 안목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초점에 들어와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흔들리고, 영혼이 흔들립니다.
 
    뜻밖의 역사를 보고 베드로는 놀랍니다. 왜 놀랐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설마하니 정말 그렇게 될까 싶었는데, 아니 설령 그렇게 되어도 좀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 당장에 예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을 보고 너무 놀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랬다 치더라도 왜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보시고 대뜸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4.
    베드로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수제자임에도 그에겐 믿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 반석이란 별명 까지 얻은 그이지만, 이름과 같은 반석 같은 믿음이 그에겐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상식을 믿었습니다. ‘주여, 주여’하면서도 그에겐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조차 자기 상식 안에 가두어 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상식 안에 가두어 둔 이에게 어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상식적인 일밖에 더 일어날 게 없습니다. 그에겐 기적이란 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에의 믿음을 가지라”는 강조형입니다. 하나님에의 믿음! 어떤 믿음인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께서 보고 계시는 산은 감람산입니다. 예루살렘 동편 산, 즉 앞산이니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바다는 우리가 사해(死海)라고 부르는 바다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추상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감람산, 구체적인 바다, 사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감람산에게 명하기를 저 사해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또 그렇게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그런데 이게 과학적인가요?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될 일인가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말이죠,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이고, 그래서 그렇게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한 이가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상시 상식으론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분명 하나님의 심오한 뜻이 있고, 그 뜻을 위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지라도 분명하게 산더러 바다로 던져지라, 옮겨가라 하고 명하고, 실제로 그렇게 될 줄 믿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렇게 된답니다. 이게 믿어지는가요? 안 믿어지는 이가 많죠?
 
    안 믿어지는데 억지로 믿을 필요도 사실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안 믿을 줄 아신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정도쯤 되면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역사의 주인, 이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이런 소리 했다면 웃긴다고 했겠지만, 이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게 그만한 능력이 있어서 내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3-14)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요, 그러면 창조주 주님께서 당신의 선한 뜻 안에서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데도 불구하고 뭔가 되어 가는 이유는 뭔가요?
 
    그건 누군가가 그렇게 될 줄 알고 여전히 믿음으로 간구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 명이면 백 명 다 그렇게 믿음으로 간구하고, 백 명 다 믿음으로 기다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백 명 속에서 한 두 명이라도 분명 참된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그 믿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면 그 공동체는 분명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아니라 누군가 참된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간구하며, 기다리는 그런 이 덕분에 응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인 나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문의 기사를 더 믿었지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면 베드로처럼 ‘우와, 정말이네!’하며 감격해 하고, 오두방정을 떠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예수님 심정은 착잡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이 아플 정도로 내게 들어온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얼마나 나에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주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 말씀이 내 눈에 확 들어오게 하셨을까!
 
    "하나님을 믿으라!" 초신자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불신자에게 한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하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으세요! 장로님, 하나님을 믿으세요! 권사님, 예수님을 믿으세요! 집사님, 성령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정부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사장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직장 상사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증권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죽은 이라 할지라도 살려야겠다면 살려내시는 권능의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믿음 갖고 더욱 기도에 힘을 씁시다. 그러면 비록 태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저 바다에 빠져라 하는 명령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7a) 믿음의 사람, 스룹바벨 앞에서 큰 산도 평지가 된다고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믿음의 사람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이 믿음의 권세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