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주 전의 일입니다. 그날 저녁 저는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주일찬양예배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정리 한 뒤 퇴근을 하려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날(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의 전화였습니다. 자신의 부친이 어제 결혼식을 주례해 주심에 대한 감사인사로 우리 집을 방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결혼식을 치르느라고 부모님 모두가 아주 지쳐 있고, 특히 모친은 몸살까지 나서 결혼식 날도 힘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피곤한 몸을 무릅쓰고 주일 오후에 틈을 내어 인사차 방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피곤하여 쉬고 싶었지만 감사한 마음을 헤아려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좀 멀리 살고 계신 분들임에도 그 부모님 내외분은 약속시간에 정확히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셨고, 반가이 맞았습니다. 그날 주일예배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신 분이기에 목사와의 대면이나 목사관을 방문하는 일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분들은 최고의 감사의 마음으로 저를 방문하셨고 잠간의 인사를 나눈 뒤에 우리 내외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매우 피곤해 보이셨고 폐를 끼치는 것이 나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분들의 너무 진지한 태도를 거절하기 힘들어서 우리는 함께 가까운 식당가를 찾았습니다. 저는 비록 조촐한 식당에서 그리 화려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로 대화가 간간히 끊어지기도 했지만 저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는 그 어른들의 진지한 태도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함께 나눈 식사를 내가 받은 최고의 저녁식사로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과 뿌듯한 보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미 식장에서 감사인사를 나누었기에 꼭 해야 하는 대접도 아니었고, 또 결혼식으로 인해 심신이 피곤하실 텐데 교회에 출석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최고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그분들을 보면서 저는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다할 때 사람됨의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생존 그 자체에 의미를 갖는 존재는 아닙니다. 동물들은 생존과 번식을 통한 그 종(種)의 계승이 존재의 목적일 수 있지만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안전하기만하면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좀 더 나아가서 자기 가족 잘 챙기고, 자기 자식 잘 보호하고, 잘 키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넘어서서 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에겐 풍부한 생존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를 우리는 사명이라고도 하고 도리(道理)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해야 할 도리가 있는가 하면 자신과 가족 친지들을 위하여 해야 할 도리가 있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해야 할 도리가 있는 존재입니다. 사실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가지는 중요한 원인은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 때문입니다. 가장으로서의 가족으로서의 자식이나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에 가족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를 바로 행하지 못하는 도리 행함에 해태(解怠)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합니다. 사람들이 마땅히 행할 도리는 방기(放棄)하고 자신의 지위나 능력을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함으로 삶의 현장을 삭막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요즘 바깥일을 많이 한답시고 가족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마땅히 행할 도리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도리는 다하지 못하면서 자기 욕심만 챙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도리를 다 하는 이상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꿈을 꿉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