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대로 거둔다.”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낯익은 이 관용어구는 성경 갈라디아서(6:7)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인과응보’의 의미로 흔히들 이해한다. ‘나쁜 짓을 하면 훗날 그 악행이 부메랑이 돼 온다’는 뜻으로. 물론 과히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심은 것 그 이상으로 거두려 하지 말라’는 전혀 새로운 해석은 혹 불가한 것일까.

최근의 금융위기를 ‘거품의 붕괴’로 평가하는 이들이 적잖다. 미국이 그 실감나는 예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미국의 재무장관이란 사람은 “정부의 규제가 심하다보니 국제 경쟁에서 미국 금융 산업이 발목 잡히고 있다”며, 금융시장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익과 손실을 내도록 하는 것이 번영의 지름길이라는 믿음, 시장이 과열됐을 때에는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희망, 정부는 게임의 규칙만 정하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곧 미국 경제의 정책 근간이 됐다.

그러나 이는 훗날 ‘아메리칸 스타일 버블’ 붕괴의 필요조건이었다. 과정을 짚어보자. 실물경제의 성장은 없었다. 다만 돈 놓고 돈 먹기만 있었다.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은 막대한 금융 이익을 단시일에 창출했다. 그러나 이는 부동산과 파생금융상품에서 비롯된 이익이란 것이다. 미국 정부는 뭐했느냐. 팔짱 끼고 보기만 했다. 금융시장을 투명하게 가꾸도록 감독 또는 관리 같은 것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꼴을 만났다. 시장이 국가의 개입 없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시장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율적인 기능을 갖췄다는 신자유주의 이론. 그 한계가 역력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물론 다른 한 쪽에서는 ‘제조업 활성화만이 경제 성장의 가치를 독점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을 꺼낸다. 산업혁명을 통해 노동의 가치가 달라졌듯 재테크의 개념도 진화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차곡차곡 예금해 축적한 돈 만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부여한 투자의 원리를 통해 불린 돈 역시 신성하다는 주장이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도한 부의 양산 및 축적이, ‘땀 흘려 일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직한 노력의 대가마저 착취하는 양상이라면 생각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투기성 단타를 잘 해 돈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받나. ‘재테크의 달인’이라며 환대받지 않던가. 반대로 금리 몇 % 안 되는 예금 통장에만 벌어온 돈을 축적하는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나. 미련하다는 평가 안 들으면 다행 아닌가. 그런데 금융위기 한파가 몰아닥친 이 시점에 어떤 식의 ‘재테크’가 국가 경제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경우였던가. 쉽게 돈 벌려는, 또 불리려는 이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이번 경제 위기에 큰 여파를 입는 분위기이다. ‘9월 위기설’이 양력 9월 뿐 아니라 음력 9월인 10월에 이르러도 강하게 요동쳤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남(미국)이 대신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습득한 교훈을 왜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을까. 미국 부시 행정부가 걸어간 패착의 그 행보를 왜 답습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의 뿌리인 ‘대출 완화 조치’를 포함한 각종 규제 완화를 서두르고 있다. 부자들에게만 그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 정책을 과감하게 펼친다. 이게 ‘경제 살리기’의 첩경이라며. 정부가 안면에 철판 깔고 무차별적으로 밀어 제치니 헌법재판관 역시 본인의 이해와 직결되는 문제이면서도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카드를 거침없이 꺼낸다. 필자가 진행하는 CBS라디오 프로그램에 누군가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유전무세 무전유세(有錢無稅 無錢有稅, 돈 있는 사람은 세금을 안 내도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세금을 낸다)’라고. 이 나라는 지금 정상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탄식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통계가 있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전국에 거주하는 중·고등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반부패관련 인식을 조사한 내용 중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응답이 17.7%가 나왔다는 점이다. ‘남 등쳐먹는 일이라도 내 밥벌이가 된다면 가당하다’는 아이들이 10명 중 2명에 이른다는 얘기이다. 이들 뿐인가. 사행성 도박에 빠져 오늘도 대박을 노리는 남자들, 예쁜 몸 덩이로 쉽게 돈 벌려는 여자들이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윤리의식을 강권할 수 있겠나.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24, 마가복음 10:25, 누가복음 18:25)는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부자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요건, 이를테면 사랑, 믿음, 의로움의 가치를 '부자일 경우' 품기 어렵다는 이야기라 판단한다. 장로임을 내세우는 대통령은 연일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드리겠다’며 가당치도 않은, 또 분수에 넘치는 허풍을 떤다. 그러나 설령 100% ‘가능한 일’이라고 치자. 어디 부요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펼쳐지던 경우가 있던가. (전쟁, 차별, 마약, 낙태, 동성애, 이혼의 상징, 미국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알 사람 다 안다.) 국민들이 천국 가는 길을 막겠다는 못된 심보에 다름 아니다. '땀흘려 일하면 정직한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대통령만 보면 실소와 연민의 염을 금치 못하는 필자의 시선이 다소 달라지지 않을까.

글의 갈음이다. “부자가 되자.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땀 흘려 일해서 벌자.” 2008년 금융위기의 해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바르게 풀이한 문장이다. 필자부터 이런 실천에 앞장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