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 합동 추도예배가 있어야 하는
바로 그 날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못 드립니다.
작년에만 해도 2021년 가을부터는
웬만한 것들은 정상화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백신도 나왔고, 거리두기도 잘 지켰고,
그러니 1년만 참으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올해도 합동 추도예배는 못 드립니다.
 
27년 전 왕중교회에 부임하고부터
추석 합동 추도예배는 매우 기대되는 때였습니다.
길 막힌다고 아침 일찍 동산에 가면
이기우 장로님 가정과 천마산 곰탕집에서
걸쭉한 국물의 임금님탕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었다 싶어서 동산에 오르면
일 년에 한 차례 만나는 옛 교우들을 묘소를 누비며
반갑게 인사하고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든 왕중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 후손들이 대답을 하는데
마치 하늘에서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그렇게 예배가 마치면
가족마다 점심을 준비해 와 묘소 앞에서 식사들 하시는데
당시 동산부장 이춘근 장로님 댁에서 제 것까지
점심을 정성껏 준비해 와 소풍 나온 듯이 식사를 하고 있노라면
각 가정에서 준비해온 반찬들과 김밥들을 가져다주십니다.
그야말로 왕중가족 소풍 나온 듯이 교회 동산은
사랑과 정이 가득한 꽃동산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주일 오후에 합동 추도예배를 드리다 보니
도시락 갖고 올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돌아오기 바빴습니다.
아, 그래도 천마산탕 집에서 임금님탕은 꼭 먹고 왔습니다.
......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예배조차 못 드립니다.
다 그리운 일들이 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분들이 많이들 먼저 가셨습니다.
동산에 가면 너무 그리운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게 나를 염려해 주고 사랑해 주던 어른들,
꼭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나고픈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게 왕중가족, 왕중교회의 정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젠 옛 교우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참 오랫동안 이곳에서 사역했네요.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