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선교편지

비자를 받고 있는 기관의 현지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어느 클리닉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냐고 특수경찰이 물었다는 것이다. 일하고 있는 엔지오 클리닉 이름을 말해 주었더니 ‘그 클리닉이 정부의 인가 하에 있다는 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클리닉에 상황을 설명하고 병의원 인허가증 복사본을 부탁했다. 그런데 클리닉은 인허가증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황스러웠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게다가 이곳에서 일한 시간이 어언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미국에 있는 엔지오 디렉터에게 편지를 썼다. 곧 답장이 왔다. ‘당신과 우리는 어떤 공식적인 관계도 아니기에 아무 서류도 줄 수 없다’는 요지였다. 당황이 황당으로 바뀌었다. 이 우스운 상황 하나로 이 땅에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일하고 있는 (엔지오)클리닉의 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 현지정부에 작정한 듯 엔지오들를 옥죄며 쫓아 낼 구실 찾는데 혈안이 된 듯하다. 일하던 (엔지오)클리닉도 외국인이 일한다는 사실이 어떤 빌미를 줄 수도 있어 두려워했던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시쳇말로 ‘손절’을 당한 것이다. 9년 전 클리닉은 존폐의 귀로에 서 있었다. ‘제발 클리닉에 와서 얼굴만이라도 비춰 달라’던 그 때와 현재가 씁쓸하게 교차된다. 하지만 배신의 쓰라림을 곱씹으며 낭만을 부릴 여유가 없다. 과연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가?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창23)’

2년 만에 다시 ‘뽀’ 땅을 방문했다. 착잡한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좌우 가득한 녹음들은 반가움에 허리춤이 한창이다. 그렇게 우리는 ‘뽀’ 땅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땅을 받아들고 4년이란 굴곡과 기다림을 지나 광야의 끝자락 드디어 모압 평지에 이른 것이다. 짧지 않았던 시간, 지난 세대는 가고 새로운 팀도 생겨났다.

어느덧 ‘뽀’ 땅이다. 이전에 그렇게 호의적이던 정부 관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반복되는 부정적인 반응에 지난 기억들이 무색해진다. ‘이 땅 사람들은 과연 우리를 환영할까’ ‘우리는 과연 여기서 일을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특수경찰들의 공격은 더욱 집요하고 거세어 비자를 받고 있는 기관의 존립뿌리마저 휘청거린다. 상황이 거듭될수록 확실해 지는 것은 ‘불확실함’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오후 내내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앞으로 살 집들을 계약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달이 떠오르면 요단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때 마침 9년의 공사 끝에 ‘뽀’로 향하는 긴 다리하나가 개통되었다. 이 다리를 통해 남쪽 곳곳의 불모지에 좋은 씨앗들이 뿌려지리라. 앞서 길을 여시는 ㅎㄴ님의 미소를 보았다. 뗏목(페리)를 기다리던 지친 줄은 이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의 힘겨웠던 시간 또한 그렇게 추억으로 남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막벨라 굴을 계약하고 돌아왔다. 당황해 하는 적들의 모습을 본다. 후진하란 압박에 전진한다. 포기하란 겁박에 비웃는다. 주저하란 신호에 결단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시60) 지들이 무엇을 어찌하랴!!’

2021년 11월 아름다운 하늘 나라 보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