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평화나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육성 녹취록을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와는 별개로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와 주술에 의존하는 무속인들이 윤석열 후보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가 때아닌 ‘무속 논쟁’에 휩싸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자는 대선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행사를 앞두고 무속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21세기 한국 사회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정치적 영역에서 무속의 문제는 가볍게 외면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무’(巫) 혹은 ‘무속’(巫俗)은 무당(巫堂) 혹은 박수(博數)와 같은 ‘샤먼’(shaman)를 통해 나타나는 종교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975년에 유동식 선생은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에서 이를 ‘무교’(巫敎)라 부르며 한국적 민간신앙의 기본 요소로 재평가하였다. ‘민간신앙으로서 무교’와 관련하여 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9)를 참조하라.

하지만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 용어는 미신(迷信)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무속에 대한 접근은 한국인의 전통적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민간신앙으로서 무교에 대한 이해와 주술에 의존하여 개인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조종하려는 왜곡된 신앙체계로서 주술적 무속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민간신앙으로서 무속은 기본적으로 다신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생활이나 생산 혹은 재물 등과 같이 구체적인 역할을 하는 신들을 그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과거 무속은 개인적 신앙보다 지연이나 혈연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의 신앙으로 작동했다. 그러므로 일정한 폐쇄성을 띄었고 그 생활공동체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배타성을 표출했다. 무속에 기반한 신앙은 구체적인 생사화복(生死禍福)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만큼 근대적 의미의 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로 인해 근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무속의 영향은 사적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둘째, 현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점이나 부적과 같은 주술을 통해 개인의 길흉화복을 조종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주술적 무속은 민간신앙으로서 무속의 극단적인 변형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치를 내세우지만 각각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와 같이 개인주의와 결합한 주술적 무속은 현대 사회에서 생활공동체의 신앙으로서 성격을 완전히 상실한 채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주술적 무속의 위험성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종교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은 언제나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야기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이명박 정권을 통해 기독교의 도구화를, 박근혜 정권을 통해 주술적 무속에 물든 비선 정치로 인한 국정농단(國政壟斷)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선 정국은 어디에서도 기대했던 정책 선거를 찾아볼 수 없고 유권자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정책 선거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언론들마저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 대선 정국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비선 정치의 위험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국민의힘의 공식적인 대선 조직인 선거대책위원회보다 윤석열 후보에게 더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당내 조직에 속하지 않은 측근들, 즉 소위 ‘윤핵관’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김건희 씨와 주술에 의존하는 무속인들은 비선 조직을 통해 캠프 인사를 비롯하여 언론관리 및 집권 후 계획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해 왔다. 비선 정치의 핵심 고리로서 김건희 씨와 주술적 무속인의 영향력은 ‘왕(王)’자 논란과 주요 언론들을 통해 터져 나왔던 국민의힘 선대위 내 무속인 ‘건진법사’ 활동 논란을 통해 분명해졌다. 이는 비선 실세와 정치권력과 야합하는 무속인의 결합은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을 떠 올리기에 충분하다.

2016년의 촛불혁명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박근혜 정권이 비공식적인 업무 관계에 있던 최순실이라는 실세에 의해 좌지우지된 국정농단과 비민주적인 통치 방식에 대한 저항이었다.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적 정치권력으로의 전환을 이루어 낸 촛불혁명은 비선 정치에 매몰되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통치자가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교훈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 촛불혁명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국정농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부족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정치 개혁의 속도는 촛불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고 개혁의 대상이었던 적폐 세력은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다. 정치적 지향과 대선 정국의 특수성으로 인한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의힘 선대위와 윤석열 후보는 주술적 무속과 결합한 비선 정치의 부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미가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을 선포한 후 이스라엘 자체의 정화로 화제를 전환한다. 이스라엘의 정화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미가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미 5:12~13) 구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복술”이나 “점”과 같은 주술을 분명하게 우상숭배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주술적 무속에 의존하는 비선 정치가 다시금 부상하는 작태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기독교 정치 윤리에 기반하여 비선 정치가 횡행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비판해 나가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정치신학연구소 교회와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