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난 29일 밤에 일어나 이태원 압사 참사로 153명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예정했던 설교를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설교를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알려진 압사 사고의 유형은 대개 건물의 붕괴나 혹은 많은 사람이 모인 경기장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뜻하지 않게 좁은 골목길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 명의 목숨을 잃은 아픔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 다시 이런 대형참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요? 아침에 일어나 이 속보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슬픔을 당한 가족들에게 큰 위로로 함께 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사건을 만나면 여러 가지 반응과 해석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가장 흔한 반응은 죽은 사람들을 탓하는 것입니다. ‘무어 볼 것 있다고 그곳에 갔느냐?’ ‘그렇게 놀기만 좋아하니 우리 사회 미래가 암담하다.’ 혹은 ‘미국의 귀신 쫓는 축제에 혹해서 그렇게 그렇게 바보처럼 몰려가니까 하나님이 벌주신 것 아니냐?’ 등등으로 거기 간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아주 잘못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 때는 그야말로 죽어라 공부하고 죽어라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그런 때에는 노는 사람이 죄인이고 공부 안 하는 학생이 나쁜 놈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해외여행을 뻔질나게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당연히 그들의 정열을 발산할 곳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곳이 홍대 주변 거리요, 이태원 거리입니다. 그런 곳에서 파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노인네들은 그런 젊은이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지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정말 그들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 저들이 저렇게 밤새우며 떠도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이들을 얼마나 억압하여 가두고 키웠습니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영어도 가르치고 온갖 것 다 가르치려 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새벽부터 밤중까지 우리는 그들을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게 몰아갔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공부에서 해방이 되어 그동안 억압되었던 온갖 울분과 스트레스를 밤새워 쏟아내곤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가 하면 우리 정치가 이 젊은이들을 뒷받침해주고 직장도, 결혼도, 집도 마련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텐데, 밤낮 싸움질만 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해 주지를 못합니다. 답답한 사회 현실에 불만이 가득한 젊은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할러윈 데이, 발렌타인 데이, 빼빼로 데이 같은 축제를 만들어내고 상술이 여기에 더하여져 광란에 가까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이게 그들의 잘못일까요? 저들이 철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이게 죽임을 당해야 할 만큼 큰 죄일까요?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 둘이 예수님께 찾아와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고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말하는 뜻을 짚어 되물었습니다. “이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이 질문을 통해 보면, 저들이 예수께 답을 구한 것은 저들의 죽음이 죄 때문인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이 오늘날까지 우리 기독교 안에도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근본주의신앙을 가진 팻 로버트슨이라는 목사는, 2010년 1월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22만 명이 숨진 대지진을 두고, ‘악마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이티가 부두교란 무속신앙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조용기 목사는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대크기의 감리교회를 일군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는 하나님을 안 믿은 결과라는 내용의 설교를 해 물의를 빚었으며, “미국 뉴올리언스에 몰아닥친 카트리나 허리케인 대참사는 동성연애 호모섹스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와 심판”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라고 묻고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망대가 무너졌다는 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일어난 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망대가 무엇인가요? ‘망대’(望臺)란 성이나 목장, 포도원, 농장 같은 것에 세운 감시탑을 의미합니다. 성 사방에 망대를 높이 세우고 거기에 파수꾼을 배치하여 성 내부를 감시하기도 하고 성 밖을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망대는 그 크기가 다양합니다. 성에 세워진 망대는 든든한 요새처럼 만들어 적군의 침략 때에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도 합니다. 망대는 성의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망대의 파수꾼이 졸거나 한눈 팔면 한순간에 성이 침략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 망대가 무너졌다면 안보에 구멍이 났음을 뜻합니다. 한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면 그 성의 안전이 흔들리면서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애꿎게도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소수자들, 장애인들, 노인들입니다. 이번에 일어난 이태원 압사 사고를 보면, 망대가 무너져 그 젊은이들이 죽은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이태원역 전철에 타고 내린 사람들 통계를 보면 13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보통 토요일보다 3만여 명이 더 왔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상태에서 당연히 사람들이 더 모일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나 용산구청 혹은 서울시가 아무런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끝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전 정권 탓을 많이 하면서 왜 전에 하지 않았던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요? 그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사건 이후 이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웠습니다. 주최자가 없다는 것, 공식적인 축제가 아니라는 것, 집회신고가 없었다는 것 등등입니다.

사실 경찰이나 공무원들은 규정이나 지침에 없는 것은 절대로 스스로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세밀하게 법규를 만들고 지침을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거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니 그런 어떤 법규나 지침에 없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지난달 15일 부산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는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BTS 단독콘서트 개최로 관람객과 외부 인파 등 5만 5,000여 명이 몰렸습니다.

당시 콘서트장에는 주최 측이 고용한 보안요원과 자원봉사자, 지자체 공무원, 소방, 민간단체 등 2,700여 명이 배치돼 행사장 안전관리와 질서유지에 나섰고, 부산경찰청도 교통경찰 600여 명, 기동대 8개 중대(400여 명), 일선 경찰서 경찰관 240명, 경찰특공대 등 1,300여 명을 배치해 공연장 외부 질서유지와 교통혼잡 등 공공범위의 안전관리를 펼쳤다고 합니다. 의료지원팀은 대규모 관람객 운집에 따른 압사 등 인명사고와 탈진 등 부상자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공연장마다 현장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지역 응급의료기관(28곳), 권역외상센터와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고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여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부산의 10분의 1만이라도 안전대책을 세웠다면 대형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요? 하나는 관이 주도하는 큰 행사요,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큰 목적이 있지만,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돈 안 들이고 즐기는 축제입니다. 그러나 관이 주도하든 민중이 자발적으로 모이든 다 같은 국민이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의 귀중함을 돈으로 계산하면서 어디는 온갖 것 다 동원하여 안전을 확보하려 하고 어디는 방치하여 죽거나 말거나 내 버려두는 것입니다. 망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가치관이 무너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망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화해로 문제를 풀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망대가 무너진 것이지요.

그 피해를 누가 볼까요? 기후 위기가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망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경주 월성원전 1호기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 하부에서 고농도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새어 나온다는 조사 결과도 숨겨 오면서, 핵발전소를 계속 세우려 합니다. 핵폐기물이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좀 먹는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망대가 무너진 것입니다.

평등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세상과 자연을 다시 보게 하고 이웃을 다시 볼 수 있게 하여야 할 텐데, 이런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망대가 무너지고, 경쟁을 강화하여 우수한 놈, 강한 놈만 살아 남게 하는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태원 압사 참사는 정상사고(正常事故, normal accidents)입니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망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란 뜻입니다. 기후의 변화가 위기라는 의식의 망대가 무너지면 온갖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일어나는 것은 정상사고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망대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뜻과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망대, 기후 위기가 우리의 종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랑의 망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증오하고 적대시하기보다는 화해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야겠다는 평화의 망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회개가 무언가요? 돌이킴 아닙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반대로 가야합니다. 성장 지향보다는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 회개하는 길이죠. 저주하고 증오하는 데서 돌이켜 사랑하고 용서하고 함께 보듬는 생활이 회개가 아니겠습니까? 망대를 무너뜨리고 세울 줄 모르는 정치가들을 꾸짖고 저들을 바로 잡아 주는 일에 헌신하는 것도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망대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특별히 죄 없는 젊은이들이 죽고, 가난한 사람들이 죽고, 늙은이들이 자살합니다. OECD 회원국의 노인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명) 평균은 17.2명인데, 한국은 46.6명(’19년)으로 1위입니다. 금년에 집이 없어 반지하 방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년 예산에서 임대주택 사업 예산을 6조 3,000억원이나 줄였습니다. 반지하 방을 없애겠다고 하더니 오히려 임대주택 예산을 뭉텅이로 없애니 내년에도 가난한 이들이 반지하 방에서 또 죽어 나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 회개하고 바르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너져 내린 망대에 깔려 죽지 않도록 서로 이웃을 돌아보고 우리의 주권으로 이 나라를 바로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창창한 미래를 꿈꾸던 젊은이들이 153명이나 하룻저녁에 무참하게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주님, 슬픔을 당한 가족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저들을 붙들어주시고 저들의 슬픔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는 행정, 주권자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 위기를 내다 보지 못한 채 오늘의 권력 다툼에만 혈안이 된 자들을 심판하시고 다시는 이 땅에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보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