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으로부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전군표 전 국세청장

2007년 11월,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변양균 씨와 국세행정의 최고책임자 전군표 씨가 현직에서 차례로 구속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구속수감 되었다는 사실에서, 내가 그들과 한반도에서 동시대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그냥 가십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하다. 투명한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작은 진통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는 사건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진통의 증거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다.

두 사건은 그 출발과 과정이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서 권한을 자의로 남용함으로써 국세를 허투로 쓰게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직원으로부터 인사 청탁 등의 수뢰혐의에서 비롯되었다. 언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의 불법과 부도덕성, 그리고 그 파렴치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을 매도함으로써 도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두 사건이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것은 국가행정의 인사관리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 때문이다. 인사관리의 핵심은 사람을 선발하는 데 있다.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보임할 때는 그 사람의 역량(力量, competency)을 충분히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제대로 검증되지 아니한 변양균과 전군표 같은 사람을 앉혔으니, 지금도 고위직에는 얼마나 많은 변양균과 전군표가 있을지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렇고 그런 수준의 인물들이 죄다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 행정의 경쟁력이 OECD 국가 중에서도 거의 최하위에 있는 것은 고위공무원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의 결여에 기인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점이다 . 앞이 뻔히 보인다. 두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고,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고, 또 다시 변양균과 전군표 같은 인물들을 중용할 것이다.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반성조차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인사관리시스템에 있다. 정부에는 인사관리와 관련되어 녹을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은 아직도 고위직에 임명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히 평가받고 검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이번 사건은 어쩌다 재수 없어서 걸려든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안 된다. 이번 사건은 두 사람이 일으킨 해프닝이 아니다. 이것은 공직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의 원인이 인사 관리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사관리의 근본 틀을 뜯어 고쳐야 한다. 이제 부터라도 늦지 않다 .

그렇다면 인사관리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여기서 인사관리시스템 전체를 설명할 수 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선발시스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선발(selection)이란 채용에서부터 퇴출까지 모든 임용, 승진, 이동절차를 포괄하는 말이다. 승진도 선발이고, 이동도 선발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선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그 직무가 요구하는 성과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직무가 요구하는 성과가 명확해지면, 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competency)이 무엇인지를 요약하여 정리해야 한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역량모델 (competency model)이라고 한다. 역량과 역량모델에 대해서는 역량관리에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어떤 역량이 고위공직자에게 필요한지와 그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 지만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고위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competency)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것은 직무의 종류에 따라 약간 다를 수 있지만, 고위직에게 요구되는 관리의 범위는 그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 때문에 역량요소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나는 이것을 “아이 페이트” (i-fate)라고 부른다. 다음의 다섯 가지 역량요소가 공직자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첫째, 정직성(lntegrity)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역량요소이다. 도덕성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성이란 "자기 자신이 설정한 보편적 가치관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하며, 이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지키고 따르려는 성향”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무능과 비리의 문제는 과거 업무처리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자신의 정직성을 발휘 했고, 지금도 발휘하고 있는지를 전혀 검증하지 않은 채 고위직에 그대로 임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정직성을 무슨 수로 검증하느냐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직성은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투명성으로 정직성을 대신하면 된다. 정직하라고 명령한다 해서 인간이 정직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투명성은 인간의 정직성을 강요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자신이 해왔던 모든 일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면, 상당히 정직해질 것이다. 투명하다고 해서 모두 정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투명성의 3대 영역에서 다음과 같은 원리를 철저히 적용하면 우리사회는 상당히 정직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뢰는 이렇게 쌓여간다.

①권력의 투명성: 기득권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항상 도전받음으로써 기득권자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발휘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권력의 정당성은 그 투명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명성의 확보는 곧 올바른 성과관리시스템과 역량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실행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은 ”성과관리”와 “역량관리”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②부의 투명성: 부 자체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죄악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는 가치중립적인 것이지만, 그 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문제이다. 따라서 축적한 부가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차원에서 정당한 것이라면 존중받도록 만들어야 하며, 비윤리적이고 불법 적인 것이라면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거래의 투명성을 통해서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거래를 투명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과 조건을 만드는 것은 정책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책당국자들과 사법부가 비자금 조성과 그의 용처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거래의 일정부분은 늘 암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③지식의 투명성: 표절이슈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학계와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아주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교육의 최고 책임자들조차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식의 표절은 정신을 도둑질하는 것이므로 부의 불투명성과 함께 매우 엄하게 다스려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자 들은 그것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살아온 궤적의 중요한 고리들을, 특히 거래관계의 투명성 즉, 소득이나 수입과 관련된 모든 계좌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를 말하지 않더라도 권력이나 부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에 따른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만들어야 하며, 그에 앞서 절대로 고위직에 진출할 수 없음을 알게 해야 한다.

둘째,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이다. 미래지향성이란 “미래에 발생 가능한 문제와 기회를 인식하고, 현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대응책을 강구하여 실행하는 성향”을 말한다. 여기서 미래를 어느 시점까지 볼 것인가가 핵심이다. 바로 코앞의 미래에서부터 일생을 마치는 죽음의 순간까지 매우 넓은 시간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코앞의 미래만 보는 사람은 철저히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삶을 살 것이고, 죽음까지의 먼 미래를 보는 사람은 삶이 좀 더 넉넉하고 여유로울 것이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보는 사람과 당장의 손익에 급급한 사람은 그 삶의 양태가 판이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시각(視角)의 스펙트럼도 중요하다. 시각의 스펙트럼은 미래지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먼 미래를 볼수록 주변의 상황을 두루 고려하게 되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할수록 시야가 좁아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future orientation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미래지향성은 고위공직자에게는 꼭 필요한 역량요소라 할 수 있다.

셋째,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이다. 성취지향성이란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직이 요구하는 목표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여 보다 높은 성과를 창출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데이비드 맥클렐란드(David McC|e|land)교수가 1960년대 초에 산업화된 사회의 문명은 제3세계의 가난한 문명과는 어떤 속성의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성취지향성의 차이에 있었다. 성취지향성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뛰어 넘어야 할 기준을 자기 스스로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것을 “레이징 바”(raising bar)라고 부른다. 높이뛰기 선수들이 자신이 넘어야 할 바(bar)를 점차 높이면서 연습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점차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 나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넷째, 팀 리더십(Team Leadership)이다. 팀 리더십이란 “조직 내에서 리더 역할을 맡으려 하고, 조직구성원을 이끌고자 하는 성향”을 말한다. 내가 자문하거나 만났던 고위공직자들 중에는 리더십에 관한 얘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리더십에 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말하는 리더십이 도대체 부하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채, 부하들을 다그치는 상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리더십교육에 대한 부재를 절실히 느꼈다.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은 리더십에 대해 철저한 훈련을 받아야 하며, 팀을 효과적으로 운영하여 주어진 목표를 완수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발전시켜 나가는 내적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위직이 갖추어야 할 이러한 성향 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리더십”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다섯째, 전문성(Expertise)이다. 전문성이란 “직무에 부여된 성과책임을 완순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지식과 스킬 중심의 직무수행능력”을 말한다. 사실 전문성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자격요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 전문성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고위직의 성과를 예측하는 역량 요소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은 순환 보직의 인사원칙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 너무나 무식한 경우가 많아서 큰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가서 일하다 보니 비효율이 생겨난다. 지식의 반감기(半減期)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인 전문성보다는 산업이 처한 상황과 업종의 특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이란 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통찰력 또는 business saavy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전문성 결여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암적 요소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 역량요소를 철저히 검증함으로써, 공직사회가 국민적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다섯 가지 요소는 영문자 첫 자를 따서 아이 페이트(i-fate)라고 했지만, 공직자 각자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국가전체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의 문제는 ”역량관리”에서 다룰 것이다.

아무쪼록 성과관리와 역량관리를 기본개념으로 하는 인사관리시스템이 조속히 정착되기를 바라며, 이런 시스템들이 잘 실행되어 다시는 고위공직자들이 구속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정부 자체가 국민적 신뢰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 서강대 겸임교수, 전 교보생명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