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정치 생태학자이자 기후 활동가인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은 최근 주목을 받는 인류세(Anthropocene) 논의를 비판하면서 과학적으로 더 정확한 용어로 ‘자본세(Capitalocene)’를 제시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여 제안된 지질시대 구분 중 하나입니다. 말름은 인류세 논의가 생태 위기의 원인을 인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이 문제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의 근원인 ‘화석 경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면 말름의 주장에 공감이 갑니다. 사실, 화석 경제는 인간이란 종 전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종 내부의 모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 새로운 지질시대는 인류 전체가 아니라, 화석 경제를 선택한 특정 주체의 이름으로, 곧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라 부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말름의 첫 번째 책인,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두번째테제, 2023)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자본’에 정확하게 책임을 지게 하고, 파국이 얼마 남지 않은 비상사태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戰時 共産主義)’라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위원회’를 꾸려 이 위기에서 벗어날 강력한 생산수단의 통제와 에너지 흐름을 이용하는 전환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전시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연방이 전쟁과 내전에 대항하기 위해 정치·경제·문화에 걸쳐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실시한 비상 정책으로 연방은 군대에 필요한 무기와 식량 공급을 시행하기 위해 ‘전 기업의 당 소유화’, ‘곡물의 당 독점’과 ‘식량 징발’, ‘외국 무역 독점’을 실시한 것을 말합니다. 물론 말름은 민주적인 세계적인 위원회가 연방을 대신하되 강력한 통제와 에너지 정책을 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볼까요? 말름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태양력’, ‘동물력’, ‘화석연료’ 등입니다. 먼저 태양에서 기원한 일부 에너지원은 생물권을 통과하여 흘러가는데, 인간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 ‘에너지의 흐름’을 낚아채 쓸 수 있습니다. 가령 바람, 강의 흐름 등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근육이 지닌 힘의 형태로 생명체에 깃드는데, 이것이 동물력입니다. 세 번째는 아주 오래전 과거에 주어진 태양에너지를 품고 있는 에너지의 재고로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가운데 말름이 지적하는 것은 자본과 자본가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노동자를 공장 속 기계 부품처럼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초 영국은 수력을 활용해 공장을 돌렸습니다. 자연의 흐름을 이용했기에 자연력이 끊이지 않았고, CO₂ 배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로 산골에 있는 수력 작업장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성실하게 일하게 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한, 노동자들 역시 기계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기 어려워했고, 자기 노동력을 제약하는 것 또한 극도로 싫어했기에 일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렴하지도, 또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던 증기력이 등장합니다. 제임스 와트가 고안하여 유명해진 증기기관은 석탄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동성을 큰 특징으로 합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증기기관은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수력에 비하면 노동을 통제하고, 자본(가)이 노동(자)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이동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가령, 수력을 쓰려면 공장을 벽지인 하천 근처에 세워야 했고, 이곳은 노동자를 조달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해 정착촌도 건설해 주어야 했고, 또 가까이 함께 있으니, ‘인간관계’에 묶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증기력을 이용한 공장은 도시 등 인구 밀집지에 지어져 손쉽게 노동력을 조달할 수 있었고 노동자를 공장 속에서 기계 부품처럼 다루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시간의 측면도 중요해졌습니다. 노동시간을 하천의 유량과 유속에 맞춰야 하는 수력과 다르게 증기력은 언제든 자본가가 원하는 대로 공장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증기력은 제조업자인 자본가들에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노동자로부터 해방해 주었습니다. 이제 노동자는 자본가의 손안에서 놀게(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말름은 ‘권력-동력’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렇게 자본은 동력을 통해 권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은 권력 없는 동력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결국, 말름에 의하면 ‘화석 경제’는 결핍을 이겨내기 위한 생산력 고도화 등 에너지원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을 무릎 꿇린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력원의 변화(수력에서 화력)를 통해서 자본은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도시로 작업장을 이동시킬 수 있었으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그저 ‘도우미’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던 노동자들이 공간상으로, 시간상으로 통제받게 되면서 제임스 와트의 발명은 자본가들에게는 축복이 되었고 노동자들에게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이 이어집니다. 이것이 기후 위기까지 연결됩니다. 말름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또 하나의 정리를 덧붙일 수 있다. 자본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배출이 즉시 그 뒤를 따른다. 이게 바로 탄소 누출의 계급적 내용이다. 그러나 노동이 항상 새로운 확장 지역에서 이전 지역에서 만큼의 강도와 열정으로 부활한다는 보장은 없다. 도리어 세계화를 겪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은 구조적으로 약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분쟁과 배출의 역사적 궤적은 서로 갈라지고 있다. 자본이 끝없는 공간적 조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자리를 이탈하고, 세계의 노동계급을 약화하며, 쇠약해진 노동운동의 주변을 돌며 춤추고 있는 동안, CO₂ 배출량은 바로 그 똑같은 동역학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는 세계화된 자본이 더 강력해짐에 따라 CO₂ 배출량의 증가 역시 더 급격해진다(542).”

 

결국, 기후 위기의 시작도 또 그 위기에서 살아갈 힘도 자본이라는 것입니다. 말름의 경고는 그래서 이 자본의 폭력에서 살아가기 위한 노동자들의 합리적인 코스모스 판단력을 가져다줍니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역사학의 대가이자, 지금은 인류세와 함께 역사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책,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에코리브르, 2023)를 ​비판하며 말름은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인류세 시대 인간의 조건을 묻는) 차크라바르티의 관념적 세계에서 나와서 한번 현실 세계를 살펴보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의 흑인과 백인 거주지에서 각각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해수면 상승이 방글라데시와 네덜란드에서 각각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 간접을 불문하고, 기후변화의 모든 충격에 대해 차별화된 취약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사실을 보라. 예측이 가능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도-실은, 지구상에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한-언제나 부유층과 특권층을 위한 구명정은 있을 것이며, 공통의 재앙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계급 격차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누가 허리케인이 접근할 때 도시 밖으로 차를 몰고 탈출할 수 있는지, 누가 몰려오는 홍수를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방벽이나 집의 비용을 지급할 수 있는지(601).”

 

놀라운 것은 자본주의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기에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이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구명정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주어져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특권층은 이러한 위기조차도 이윤을 위한 출구로 이용합니다. 이 불평등한 세계에서는! 말름의 탄식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