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 일간 계속되던 장마비가 잠시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모처럼 내리쬐는 햇빛이 반갑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아서 끈적거리는 느낌이 개운치 않은 오후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용답시장을 찾은 것은, 주부들이 한창 저녁거리 장보는 시간을 맞춘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는 것이 전에 왔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입구에서 처음 마주친 상인은 리어카에 생선을 진열하는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상인이었다. 오징어, 임연수, 고등어, 부세 따위를 상자에서 꺼내 진열하고 있던 그는 아직 마수도 하지 못했다며 입맛을 다신다.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서인지 가락수산시장에서 받아오는 값이 우선 비싸니 싸게 팔 수도 없고, 값을 물어본 주부들이 망설이다가 돌아서곤 한다는 것이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요즘은 겨우 세 식구 먹고살기에 바쁘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조금 더 들어가다가 만난 곳이 찹쌀 순대 집, 사 오십대 아주머니들 서너 명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러나 주인 아주머니는 펄쩍 뛴다. 신문에 나오는 것이 영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장사는 어떠냐고 묻자, 주인은 말이 없고 손님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직접 만들어 파는 주인이 솜씨가 좋은 데다가 또 깔끔하여, 인근에서 알아주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괜찮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 자신을 육십대 중반이라고 소개하며 답십리에서 이곳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찹쌀순대를 먹으러 왔다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여자 손님이 걸쭉하게 웃는다.

옛날 같으면 이 시간쯤, 북적북적 소란스럽고 활기차던 시장이 조용하기만 하다. 인근에 사는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승용차와 작은 트럭들이 한가하게 지나다닐 뿐,

맛깔스럽게 생긴 반찬들이 잘 진열된 반찬가게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가게도, 없는 것 없이 가게 밖에까지 가득하게 쌓여있는 만물상에도. 먹거리는 모두 있는 듯한 몽땅 먹자 집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뜸하고, 상인들의 눈길만 오가는 주부들의 뒤를 좇고 있었다.

시장 한 복판에서 작은 손수레에 개미 바퀴벌레 약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햇빛가리개 모자를 깊게 눌러써 나이가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올해 58세란다, 작년에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에 눌러 앉은 남편 대신 장사에 뛰어든 것이 이 장사란다.

하루종일 작은 손수레를 끌며 장사하는 것이 고달프긴 하지만, 밑천 별로 안 들이고 그래도 한 달에 백여만원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장사를 한단다. 아파트는 용역구충을 하기 때문에 단독주택 사람들이 주고객이라며 특히 장마철이 많이 팔리는 기간이란다.

부근에서 핫도그와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는 장사가 영 안 된다고 울상을 짓는다. 이런 장사도 불경기를 타느냐고 묻자, 이런 장사일수록 더욱 심하게 불경기를 탄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핫도그나 옥수수를 사먹는 사람들이래야 대부분 어린이, 청소년들이나 장보러 나온 주부들인데, 주머니 가벼운 가난한 서민들이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런 군것질부터 줄인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하루 단돈 만원, 2만원어치 파는 것도 어렵다며 한숨을 짓는다.

갑자기 시장골목입구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골목 입구에 자리잡은 할머니 노점상 때문이다. 차는 조심조심 빠져나가고 할머니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좌판도 없이 길바닥에 야외용 돗자리 위에 햇콩 두 가지와 고추 그리고 마늘을 펴놓고 팔고 있었다.

올해 78세라는 할머니는 아침에 경동시장에 가서 물건을 받아다가 낮부터 저녁까지 판다는 것이다. 햇콩과 마늘은 깨끗이 까놓고 울타리콩 한종기에 2천원, 강낭콩은 1500원, 마늘은 작은 바구니에 담아 2천원, 꽈리고추도 2천원, 매운 고추는 1천원, 그렇게 팔아서 하루에 돈 만원씩 벌 때도 있고, 어느 때는 5천원도 번단다.

이렇게 장사해서 번 돈을 어디에 쓰느냐고 묻자. 싱거운 표정을 지으며 모른단다. 옆에 와서 같이 앉아 있던 친구로 보이는 할머니가 나섰다. 영감님 용돈도 주고, 손자들 과자 값도 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또 두 명의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81세, 80세와 76세의 할머니, 모두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들이다. 사는 얘기를 시작하자, 모두 한 마디씩 거든다.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시켜 지금도 미안하단다. 그래서인지 사는 것도 대부분 어렵고….

장사하시는 할머니만 남매를 두었고, 나머지 할머니들은 대부분 7남매, 8남매씩 두었단다. 그 어렵던 시절에 그 많은 자식들 어떻게 먹이고 입히며 키웠느냐고 묻자, 그래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버둥거리다 보니 교육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야 어디 지금처럼 교육열이며 치맛바람이 있었겠는가, 그저 죽지 않고 연명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옛날을 회상하며 할머니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할아버지들은 계시느냐고 묻자, 역시 장사하시는 할머니만 영감님이 계시고 모두 혼자라며 쓸쓸한 표정들이다.

자식들의 효도얘기를 꺼내자 갑자기 말을 아낀다. 모두 괜찮다고, 잘한다고 하면서 특히 장사하시는 할머니를 가리키며 용돈이 제일 넉넉하다고 부러워한다. 용돈도 넉넉한데 왜 장사를 하시느냐고 하니, 집에 그냥 있으면 심심하고 이렇게 나와야 친구들도 모여들어 어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두 명의 주부들이 콩과 고추를 사간다. 그 중에 한 주부는 일부러 할머니한테 물건을 사러 온 듯, 할머니 또 나오셨느냐고 인사까지 건네는 것이었다.

요지마다 들어서는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잃고 점점 퇴조해 가는 재래시장, 그러나 그 재래시장에는 따뜻하고 정다운 우리의 이웃들이 삶은 힘겹지만 풋풋한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