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편 119:105-112)

1.
지난 IMF 때 대량 해고 사태가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그때 교우 중에 구조 조정으로 갑작스레 가장(家長)이 직장을 잃은 가정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싶어 몇 분이 정성스레 손길을 모아 그 가정을 방문하여 사랑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가정에서 어떤 반응을 보인 줄 아는가요?

교우들이 찾아가 사랑을 전하자,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더니 잠시 후 감격하는 게 아니라, 분노를 터뜨립니다. “우리를 어떻게 보고 이러시는 거예요? 우린 아직 이런 도움을 받고 살 정도는 아닙니다.” 정색을 하고 언짢음을 표현하는 집사님을 보고 찾아갔던 이들이 무안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자기는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으면 살았지, 남의 도움은 받지 않는다는 자세로 살았는데, 생각지 않게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이 찾아오니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고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자기 혼자 꼿꼿하게 서서 살겠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우아하게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2.
그런데 말이죠, 성경은 뭐라 하는지 아는가요? 롬 13: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이 말씀은 뒤집어 보면 사랑의 빚은 지라고 하십니다.

남에게 신세 안 지고, 혼자 고고하게 사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랑의 빚을 지십시오. 때로는 언제나 꼿꼿하게 서 있으려고 애쓰지 말고, 허리를 숙이고 사십시오. 앓는 소리도 좀 하고, 아쉬운 소리도 좀 내면서, 서로가 서로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그런 삶을 사십시오. 그게 사랑의 빚입니다.

늘 건강해 보이는 이는 사랑받지 못합니다. 늘 부유해 보이는 이도 사랑받지 못합이다. 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늘 충만한 듯이 말하는 이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 보이십시오. 그건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사도 바울도 치유되지 않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완벽해 보이려고 피곤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때로는 나의 약함이 하나님의 권세와 사랑과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임을 아십시오. 괜히 집에서 완벽한 가장으로만 보이려고 뻔한 고생하지 마십시오.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철인 엄마로 보이려고 괜한 마음앓이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서로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을 보이면서, 그것 때문에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이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서로를 더욱 사랑해 주고, 덮어주고, 감싸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완벽해서 이곳에서 목회하는 게 아닙니다. 내 허물을 여러분이 감싸주기에 목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벽한 교인이라 그런 것도 사실 아닙니다. 서로에게 있는 허물과 부족함을 감싸주기에 사랑의 공동체 왕십리중앙교회는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꼿꼿한 인생으로 살지 말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허리 숙인 인생으로 삽시다. 오늘 성경 본문도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3.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떨 때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요? 107절,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고난이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거의 죽을 지경입니다. 고난이 얼마나 심한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109절에 보니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항상 위기이니 얼마나 불안한가요? 그야말로 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습니다.

그것도 모자란 지 110절,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해치려고 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내 잘못으로 인한 어려움은 물론이고,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른 게 없습니다. 반복되는 주제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말씀이 그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그를 살아나게 하고, 바른길로 인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는 돈이 없는 이가 아닙니다. 건강이 없는 이가 아닙니다. 말씀이 없는 이, 그때에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이가 가장 불행한 이입니다. 물이 없어 갈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갈하다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이 맞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이는 넉넉히 이겨갑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는 인생은 하찮은 고통, 별것 아닌 고난이 찾아와도 무너지고 맙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은 물질 축복 많이 받은 이가 아니라 말씀의 축복을 많이 받은 이입니다.

105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합니다. 등, 빛, 왜 필요한가요? 그만큼 현실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말씀이 있을 때 그것이 등이요 빛으로 내 삶을 인도합니다.

사업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이가 성경을 뒤적이는 것, 바른 자세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이가 성경 말씀에 눈을 고정시키는 것, 바른 자세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대체 어떤 길로 끝날지, 아니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 몰라 하는 이가 성경에 밑줄을 그며 읽어가는 것,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 인생길에 등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등과 빛이 또렷한 이들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비록 어려움 속에 있다 하더라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나 완전 실의에 빠진 이와 상담할 때 이렇게 독백하던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목사님, 완전 막혔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한탄인가요?

그러나 여러분, 말씀이 있는 자는, 그 말씀이 길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마지막 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마음을 기울였답니다.

말씀으로 내 삶의 중심이 이동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향해 내 몸의 축이 그리로 기울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먹고살기 어려워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말씀대로 살려고, 그것이 참된 인생길이라고 여겨, 자신의 마음을 주의 말씀에 기울여야 합니다.

4.
기울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요?

기울인다는 것은 사실 불안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인생, 주님께 기울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받쳐주지 아니하시면 자기는 넘어지고 만다는 결단입니다. ‘어차피 힘든 인생, 주님께 기울입니다, 주께서 받쳐주시면 넘어지지 않을 것이요, 주께서 외면하시면 내 인생은 쓰러지고 맙니다’ 하는 절대적인 주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109절,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항상 위기,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그대로 놔두면 쓰러지고 마는 지경입니다. ‘이토록 위험한 지경에 있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 그 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기대감과 믿음이 그에게 있습니다.

어려우시죠?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십시오. ‘내 인생을 바쳐주리라’하는 믿음으로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붙드실 것입니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22:5)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는 자, 주님의 도움을 바라는 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아멘!

아울러 기울인다는 것은 곧 자기를 비우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다 쏟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의 욕망을 비우고, 감정을 비우고, 사리사욕을 비우고 공허함이 됩니다. 자기를 기울여 안에 있는 추한 것들, 세상 것들을 다 쏟아 내어 허전할 정도로 만듭니다.

왜? 그리하면 그 빈 마음에, 빈 인생에, 빈 창고에, 빈 지갑에 주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ㄴ이다. 111절,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내 마음을 비울 때, 내 모든 것을 비울 때, 주께서 바로 나의 기업, 재산이 되어 주십니다. 곧 나의 힘이요, 내 생활이요, 내 즐거움이 되어 주십니다.

어려울 때 마음을 비우십시오. 욕심을 버리십시오. 꽉 쥐고 있는 아집을 버리십시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기울이며, 눈물과 아픔으로 모든 쓸모없는 것들, 세속적이고 썩어질 것들을 억지로라도 토해 버리십시오. 그리하면 주께서 채워 주십니다.

그리고 기울인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을 주님께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 내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기분, 내 감정, 내 지식, 내 의지가 중심이었습니다. 어딜 가고 안 가고도 내 기분에 달려있었습니다. 누굴 돕고 안 돕고도 내 취향에 달려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고프면 하고, 말고프면 아무리 상대방에게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라도 안 했습니다. 늘 자기가 왕이었고,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로 기울인다는 것은 이제 내 삶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취향대로 가고 안 가는 게 아닙니다. 신앙심으로 가고 안 가고가 결정됩니다. 내 감정대로 돕고 안 돕고가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내 믿음의 정도에 좌우됩니다. 이제는 내 모든 삶의 중심은 주님이십니다. 삶의 중심이 옮겨간 것입니다. 이제야 명실공히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주님께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오직 주께만 구원 있네. /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여전히 내 삶의 왕좌에 자신이 앉아 있는 이는 이 찬송, 이해 못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삶의 주인 자리를 내드린 이는 이 찬송 구절구절이 은혜 덩어리입니다.

5.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는 사실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웠듯이 지구는 23.5도 기우뚱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기울지 않는다고 큰소리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 자체가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기울어진 영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재미있게도 한문입니다. 한문의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입니다. 각각 기울어져 쓰러지기 직전인데,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고 지탱해 주는 모습입니다.

우린 서로에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서로를 의지하지 않고는 못 삽니다. 서로를 돕지 않고는 못 삽니다. 서로의 허물을 보고 웃지 마십시오. 서로의 부족함을 보고 비웃지 마십시오. 그게 서로를 긍휼히 여기게 하는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담임목사와 함께 하는 중보기도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누군지 서로 잘 모릅니다. 연초에 중보기도 사역자로 신청을 받아 내가 관리하기에 서로 잘 모릅니다.

성도들의 긴급하거나 절실한 기도가 발생하면 그 즉시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간에 내가 일일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여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사역자들입닝다. 몇 명일까요? 우리 교회 성도들의 십일조, 총 교인수의 10%입니다. 참 묘합니다. 이건 자발적인 건데 중보기도로 어려운 일을 당한 교우들을 위해 중보하는 기도대가 우리 교회의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종종 이런 감사의 전화를 받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교우들의 중보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무슨 소린지 아는가요?

우린 서로 기도해 주지 않고는 못 삽니다.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부족과 허물을 덮어주며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사랑의 빚을 지는 것입니다. 우린 서로에게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기 인생, 자기 것이라고, 자기가 책임질 것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하나님께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연스레 우리 입에선 ‘아이구 하나님!’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사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울어져 다가오는 이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따뜻한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거나 머리를 기울여 기대어 있는 모습. 한쪽이 슬쩍 비켜서면 다른 한쪽은 꽈당 쓰러질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지탱해 주며 기대어 있습니다. 서로를 무한 신뢰,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에선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서로를 신뢰하고 기울여 기대어 사는 모습.

기울어진 영성으로 삽시다. 꼿꼿한 영성으로 자기 혼자 스스로 살다 가겠다고 하지 말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기울어진 영성으로 삽시다. ‘장로님, 기도해 주세요. 집사님, 권사님 기도해 주세요.’ 서로에게 기도의 빚을 지며 삽시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내게 기대어 오십시오. 기도로 도와주겠습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마음과 영혼을 주님께 기울입시다. 왜?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30:18a)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이토록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영혼을 기울이십시오. 주님께서 받아주시고, 지탱해 주시고, 세워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삶의 중심이, 마음이 기울어진 성도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꽈악 붙잡으시고 도와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