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상황을 보면 조직이 망해도 이렇게 재미지게 망할 수 있구나 싶다. 명태균이라는 브로커가 보수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철없는 오빠, 무식한 오빠, 심지어 배 나온 오빠까지 등장했다. 

나는 사람을 외모로 절대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외모 비하는 단호히 근절해야 할 악습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돼지에 비유하던데,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 나온 오빠’ 같은 표현도 그렇다.

나는 일단 오빠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배 나온’이라는 표현도 전형적인 외모 비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단계가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공당의 대변인이 대놓고 “배 나온 오빠” 운운하고 친윤계 의원들이 “대통령을 비꼰 것이냐?”며 발끈한다는데 이 지경에서 “외모 비하하지 맙시다.”라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멍멍이판을 만든 주인공은 선거 브로커 명태균이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그가 공개하는 카톡 한 줄이 정치판을 뒤흔든다. 정치와 선데이서울이 거의 물아일체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왜 한낱 정치 브로커 따위가 집권 여당을 뿌리부터 뒤흔들 파워를 가졌느냐는 점이다. 

정보경제학에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problem) 이론’이 있다. 대리인을 에이전트(agent)라고 표현하는데 이게 바로 브로커의 역할이다. 에이전트의 역할이 뭘까? 주인을 대신해서 주인의 이익을 높이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주인과 에이전트 사이에 정보가 균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이유는 그가 그 문제에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고용주인 주인은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호인을 고용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변호인은 에이전트고 고용주인 내가 주인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나는 돈을 들여 에이전트를 고용하는가? 내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각한 정보불균형 상태가 시작된다. 정작 돈을 낸 고용주는 에이전트가 유능한지, 무능한지, 성실하게 나를 위해 일할 사람인지를 판단할 길이 없다. 반면 에이전트는 자기가 유능한지 무능한지, 그리고 성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런 정보불균형 상태에서 계약이 맺어지면 그때부터는 에이전트의 세상이 된다.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고용주는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전트는 고용주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기 일쑤다.  

명태균에게 속은 사람들도 다 이런 주인-대리인 문제에 걸렸다. 특히 김건희가 그렇다. 김건희는 정치를 개뿔도 모른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인 남편은 철없고 무식한 오빠다. 이때 브로커가 와서 “저를 믿으세요.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유혹한다. 정보가 없는 김건희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간도 쓸개도 다 빼준다. 

하지만 브로커는 김건희에게 충성할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그 브로커의 농간에 김재원, 홍준표, 안철수 등 나름 정치 좀 안다는 사람들이 죄다 걸려 있는 것도 코미디다. 정보불균형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이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해법은 두 가지다. 그런데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듯 두 해법 모두 효과가 시원찮다는 점이 문제다. 첫째 해법은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라는 것이다. 이러면 대리인이 주인을 배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보를 독식한 대리인의 욕심이 주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김건희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멍청한 오빠가 대통령이 되면 한몫 챙겨줄게요!” 이러면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에이전트 명태균이 원한 것은 한몫보다 훨씬 컸을 가능성이 있다. 뭔가 불만이 터졌으니, 명태균이 지금 저 난장을 부리는 것 아니겠나? 

두 번째 해법은 대리인을 끝없이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다. 고용했어도 믿고 맡기면 안 된다. 법을 모르면 법을 공부해서라도 대리인이 지금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지 감시하고 경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게 하려면 너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거 귀찮아서 돈 주고 맡긴 건데 대리인 감시하기 위해 공부까지 해야 해? 이런 성실성을 주인이 갖추기는 쉽지 않다. 김건희는 그렇다 치고 날고 긴다하는 정치인들이 명태균에 놀아난 이유도 아마 이런 불성실함에서 연유됐을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보면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는 것이 유권자와 정치인의 관계다. 유권자는 말 그대로 주인이다. 정치인은 주인을 대신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인 우리는 대리인(정치인)이 나를 진심으로 대리해 줄 사람인지 혹은 전문성은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정치인은 스스로를 잘 안다. 지가 성실한 정치인이지 야부리만 터는 야바위꾼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정보를 독식한 정치인은 주인에게 진실을 고하지 않는다. “뽑아만 주시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라는 달콤한 말로 정보를 차단한다.

그래서 엄청난 이득을 누린 대표적 대리인이 윤석열이다. 검찰 출신에 엄청 공정한 줄 알았는데, 뽑아보니 할 줄 아는 게 어퍼컷뿐이다. 자기도 지가 그런 수준의 인간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김건희한테 “철없고 무식한 오빠” 소리나 들었겠지. 이런 이들이 대리인이 되는 참상을 막기 위해 우리는 강력한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됐어도 언제이건 “대리인인 네가 우리를 속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계약을 철회하겠다.”라는 으름장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대리인이 독점한 정보로 주인을 속이지 않는다.

윤석열을 고쳐 쓰는 것은 한참 전부터 글렀다. 그렇다면 주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차기 대리인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저따위로 굴면 계약 파기다, 우리는 대리인으로 너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의지가 있다는 경고가 필요하다. 

윤석열 탄핵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법과 정치적 식견이 짧은 나는 윤석열을 현실적으로 탄핵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을 능력이 없다. 하지만 정보경제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설혹 윤석열 탄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라도, 이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한다. 그게 주인이 대리인을 견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 다음 대리인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의 소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