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덮친 삼복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찾은 남가좌동 모래내 시장도 무더위에 늘어진 상인들의 긴 하품에서 느낄 수 있 수 있듯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선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밥 집으로 들어섰다. 역시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주인 여자와 종업원 두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멀거니 바라본다.

국밥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며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손님이 없다"고 말하자, "점심시간이 지나서이기도 하지만 손님은 저녁시간에 많다"고 한다.

장사가 어떠냐고 물으니 괜찮단다. 요즘 듣기 어려운 반가운 소리여서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장사가 잘되느냐고 다시 물으니 이렇게 손님이 없다가도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들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럼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하여 매출이 얼마나 늘었느냐고 묻자, 그렇게는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본래 그릇가게를 했었는데 장사가 너무 안 되어 금년 2월에 음식점으로 업종 변경을 하였고, 그때부터 장사가 제법 쏠쏠하다는 것이었다. 재빠른 변신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리라.
 

찾는 손님들은 당연히 시장상인들이려니 했지만 뜻밖에도 대부분 손님들은 외부사람들이란다. 장사가 시원찮아 외식이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인근에 사는 상인들이 많아 대개 집에 가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시장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원래의 시장터가 아닌 거리시장의 길이가 훨씬 길어진 것을 빼고는, 꿋꿋하게 전통을 지키고 있다. 어느 가게에서는 엄청난 할인가격표로 수북하게 쌓인 물건들이 오고가는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지만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난히 많은 제과점과 옷가게에서도, 한약재 상자와 나란히 놓여 팔리기를 기다리는 고양이 형제들의 모습에서도, 70~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서북지방에서 가장 활기차고 값싸고 번창했던 시장이라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염으로 시들어버려 값이 치솟고 있다는 야채가게에 쌓인 배추와 열무들을 뒤로 하고 일산시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산시장은 모래내시장 안에 있는 시장 속의 또 다른 작은 시장 이름이다. 옛날에는 서울 북쪽의 능곡 백마 일산 파주 지역의 농민들이 직접 경작한 농산물들, 특히 야채들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지고, 경의선 열차를 타고와 가좌역에 내려 모래내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팔던 곳에 '일산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일산시장은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하는 만큼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아 농민들과 주민들 간에 단골 거래관계가 형성되었다. 또한 단순한 거래관계를 떠나 인간적인 유대관계까지 생겨 여느 시장과는 다른 정겨운 풍경들이 많았었다. 그런 풍경들을 상상하며 물어물어 일산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을씨년스럽게 퇴락한 공간에 할머니 두엇이 시들어 비틀어진 야채 몇 단을 늘어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잘못 찾아왔나싶어 몇 번을 물어봐도 틀림없이 일산시장이란다.
 

상인 한 사람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아예 좌판 옆에 길게 누워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내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시장 관계자인 듯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누구를 찾느냐”고 묻자, 나는“야채를 팔러오는 농민들은 다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웃기부터 한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80년대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주변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농민 야채상들이 언제부턴가 아주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한 명도 없느냐는 질문에 어쩌다 한두 명 나오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자기 땅에서 농사지은 농민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실망하는 눈치를 보였는지 그는 “재래시장의 요즘 경기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시장 기능도 단순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기능을 넘어 “쇼핑” 이라는 말의 뉘앙스처럼 보고 즐기는 기능까지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재래시장이 더욱 사양화 된다는 것이었다.

“왜 이 시장은 다른 재래시장보다도 더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자, 재개발 조합까지 구성되어 있지만 수많은 영세상인들이 얽혀 있어 사업시행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건설업체에서도 별 매력이 없는지 나서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일산농민시장의 싱싱한 야채와 훈훈한 인심을 기대하며 찾아갔으나 날씨와 가라앉은 시장의 경기 만큼이나 무겁고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 나오다가 큰길가에서 한 할머니에게 발길을 붙잡혔다.
 

할머니는 구불구불 볼품없는 대파 세 무더기를 벌여놓고 뙤약볕 아래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수건까지 두르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작아 어린아이인가 착각할 정도였으나 얼굴이 쪼글쪼글한 할머니였다.

상품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파 세무더기와 작고 초라한 할머니의 모습이 내 눈길을 잡은 것이다.

파 한 무더기에 얼마씩에 파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대뜸 한 무더기에 천원씩인데 세 무더기를 2천원에 줄테니 사가란다. 지금 일하는 중이어서 살 수 없다고 하자, 지금 목이 말라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다며 그럼 한 무더기만 사라고 사뭇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능곡 행주산성 부근에 사는데, 텃밭에서 농사지은 파란다. 일주일에 한두 번 풋고추나 가지, 오이, 부추 등 조그만 텃밭에서 가꾼 야채들을 가져다 판다는 것이었다.

체구는 작아도 아주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는 올해 86세라고 했다. 30대 후반에 홀로된 할머니는 6남매를 어렵게 키워 출가시켰으나 모두들 사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모두 착하고 효성은 좋은 편이나 사는 형편이 어려워, 용돈을 주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텃밭에서 가꾼 야채들을 모래내 시장에서 팔아 막걸리도 사먹고 소소히 들어가는 푼돈도 쓴다는 것이었다. 모두 팔아야 만원어치도 되지 않는 야채 무더기가 불볕아래 처연하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바로 옆의 간이매점 주인인 듯한 남자가 나와 자기네 매점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며 당장 저쪽으로 가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조금 있다가 그늘이 지면 옮기겠노라고 사정하는 할머니가 눈물겹다.

인근의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사다주자, 고맙다며 연신 치사를 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모래내 시장을 떠났다.

어느 좌판 아주머니는 “우리같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대통령을 뽑아줬는데, 요즘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은 외국에 나가 쓰고, 외국으로 돈 빼돌리고 국내에서는 돈을 쓰지 않으니 경기가 풀리지 않아, 서민들은 살아가기가 너무 팍팍하다”고 말했다. 그 아주머니의 푸념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