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 진단 - 나의 말 실력을 평가한다

말하기 실력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두 단어가 떠오른다.

-달변(達辯): 능숙하여 막힘이 없는 말.
-눌변(訥辯) : 더듬거리는 서툰 말솜씨.

그러나 이 세상에 달변과 눌변만 있는 게 아니다. 달변 같지만 말 속에 내용이 없는 수다쟁이, 즉 허언가(虛言家)가 있는가 하면, 눌변 같지만 얼마 안 내뱉는 말 속에 엄청난 내공이 있는 실변가(實言家)가 있는 셈이다.

저와 당신이 함께 갈 종착점은 ‘달변가’이다. 뼈와 살이 충만한 말로써,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저는 단순히 화술의 방법만 일러줄 생각은 없다. 소통이 있는 대화, 뼈대가 있는 내용 이것을 겸비한 ‘알찬 말하기’ 방법을 일러드릴 것이다. ‘how'도 있지만 'what'도 선사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의 실력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세 분류이다.

1항. 쌍방향성 갖추기

이제 다음 보기를 읽고 ‘예(3점)’, ‘보통(2점)’, ‘아니오(1점)’로 답해주세요.

1. 남의 이야기가 5분 이상 이어질 경우에도 경청한다. ( )
2. 영화과 소설을 접하고 1~2분 안에 요약, 설명할 수 있다. ( )
3.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 )
4.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 )
5. 상대의 이야기가 타당할 경우 수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

2항. 소신 지키기

6. 어떤 사안에 대한 나의 의견을 세 문장 이내에 표현할 수 있다. ( )
7. 견해가 다른 양측의 주장을 충분히 청취하고 내 입장을 정한다. ( )
8. 반대 의견 가진 이들의 기가 세더라도 휩쓸리지 않는다. ( )
9. 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 또는 예화가 충분히 있다. ( )
10. 자신이 펼쳐온 주장과 모순된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 )

3항. 표출 능력 갖고 있기

11. 정해진 시간이 짧건 길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말할 수 있다. ( )
12. 듣는 이들의 연령, 학력, (주제와의) 연관성에 맞춰
눈높이를 맞춰 (쉽고 재미있게) 말할 수 있다. ( )
13. 어떤 상황을 묘사해 설명할 때에 때론 연기도 할 수 있다. ( )
14. 청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
15. 했던 말 또 하지 않는다. ( )

이 테스트를 통해 다음의 처방을 내리겠다. 진단에 따라 행하라.

□ 이 글 더 이상 볼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달인입니다.
= 총합 40점 이상인 분.

나머지는 이 글을 열심히 봐야 할 경우인데, 자신에 대한 진단, 새겨두고 공부하라.

□ 1항이 약한 경우

○ 1항 총합 < 2항 총합
독불장군 소리 많이 들으시죠?
자신은 대화한다고 하지만 상대는 통보 당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듣는 훈련을 키워야 합니다.

○ 1항 총합 < 3항 총합
‘마이크 체질’이시죠?
말하기를 파이에 비유한다면
그 파이를 나누지 않고 모두 독식하려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 있다는 점, 생각해보셨습니까?

□ 2항이 약한 경우

○ 2항 총합 < 3항 총합
갈대와 같은 당신, 정말 걱정입니다.
혹시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라는 이야기 많이 안 들으십니까?
말은 많이 쏟아내는데
상대에게서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지요.

○ 2항 총합 < 1항 총합
‘허당’ 소리 많이 듣겠어요.
남의 입장은 열심히 듣는데 자신의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무색무취하다’라는 평가는 곧 ‘맹물 같다’라는 말입니다.
남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3항이 약한 경우

○ 3항 총합 < 1항 총합
‘휴식 같은 친구’라는 소리 많이 들으시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 그럴 겁니다.
그런데 마냥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라면 문제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 3항 총합 < 2항 총합
혹시 ‘말’의 가치와 힘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이 듣기 좋게 풀어서 내놓는 것,
설득하세요.
이것이 상처 없이 본인의 입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2) 한국인과 말

화병이라고 들어보았나? 열 불 나는 병이다. 열 불 나는 일을 당한 사람은 모두 화병이 생길까? 그렇지 않다. 그 열 불 나는 마음을 풀지 못하고 응어리로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병이 커진다.

이런 통계가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 1세들의 화병 발병률이 12%였다고 한다. 반면 미국 이민 2세대에게는 화병이 거의 없단다. 왜 그럴까? 혹시 말이 통하고 안통하고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사실 이민 1세대들의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의 사연은 눈물 없이 듣기 힘들다. 인종 차별에 눈물 한 번, 말이 안 통해 구박받는데서 눈물 한 번, 고향 떠나 고생하는 설움에 눈물 한 번. 물방울 하나하나가 바위를 뚫는다고,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미국 땅에서 성공 하겠다’던 굳은 심지, 굳은 가슴이 뚫리고 말았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한국 사람들, 하지만, 돗자리를 펴주면 일단 동공이 확장된다. 긴장하는 것이다. ‘상한 감정에 대해 토로하라’고 해도 소극적으로 나온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감각이나 감정을 멀리하고 인격과 규범을 중요시했다. 한마디로 금욕적인 인간완성을 추구한 것이다.

수다스러운 모습으로 남에게 첫 인상을 남기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단 처음 대면은 과묵한 모습으로 해야 그 관계가 지속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냥 삼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혹시 표현을 기피하는 관습이 소통 문화가 미약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말하기의 고수’로 가기 위해 버려야 할 짐들

그래서 하는 얘기이다. 체면 차리는 것이 선(善)인양 비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고. 다행히 우리 사회도 변화의 기류 속에 있는듯 하다. 여기저기서 ‘지금은 자기PR시대’라고 하니 말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강요된 과묵증은 어느 정도 퇴조하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표현하기 습관이 속도를 내는 것도 아니다. 효과적인 자기 입장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하는 장애물이 적잖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① 서로 믿지 않는 본성이다.

남에게 사기당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사람들, 겉으로는 걱정해주는 척 하지만 십중팔구 속내는 ‘비웃음’ 어린 동정일 것이다. 나는 이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비웃으려면, 믿어준 상대방의 발등에 도끼를 내리 찍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믿다 속은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불신의 풍조가 ‘첫 인상은 탐색전이다. 말을 삼가라’는 처세술을 만들었고, ‘첫 대면하는 사람의 아래위부터 훑어보는 것’을 ‘지혜’로 규정케 했다.

이러다보니 처음부터 나서거나 많은 말을 하면, ‘가벼운 사람’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다. 첫 대면 자리에서는 다들 말 가리거나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침묵의 문화는 불신의 단면이다.

② 자신의 신비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표현을 하면, 나에 대한 상대방의 신비감이 줄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르는 단견이다. 표현을 자주할수록 신비감은 사라질지 몰라도 친밀감이 커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신비감과 친밀감을 같은 반열에 놓고 대조하라. 인간관계에 있어 어느 것이 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지.

개그맨 박경림 씨가 처음 데뷔하던 1998년, 많은 이들은 그녀의 연예계 조기하차를 예견했다. 왜냐. 사각이 돋보이는 두상도 그렇지만 짙은 허스키 목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년째 TV에서 롱런하고 있고, 소리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의 DJ도 하고 있다. 그것은 박경림 개인의 인간승리이면서도 친밀감의 힘이다.

③ 거절 또는 외면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누구나 이 두려움은 있다. 뭔 이야기나 제안을 했을 때, 상대방이 비웃거나 시큰둥해 하면 참 민망하다. 그래서 개중에는 거절당한다는 것을 불신의 표시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십중팔구 나에게 원인이 있다. 일방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입장과 처지, 분위기를 충분히 고려해주지 않은 잘못이 있다는 얘기이다. 예컨대, 상대방이 지금 화 나 있는데 가서 ‘물건 사달라’고 하면 어디 팔아 주겠나.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장치부터 마련하고 표현해야 한다. 아부를 하던지 혹은 ‘옵션’을 제시해 구미를 당기게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로 하여금 ‘사야할 제품의 필요성’을 촉진시키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거절당하면 적어도 속 쓰림 또 앙금만은 없다.

남 몰래 ‘짝 사랑’하는 사람이 속 앓이 하는 이유. 뭐일까. 표현을 못해서이다. 그는 왜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지 못할까. 위에 적시한 세 가지 이유에 다 들어있다. (상대에게)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까, 신비감 없게 비춰지지 않을까, 거절당하지 않을까 걱정함 때문이란 것이다.

이걸 극복하는 이는 배반 때리든 말든 관계를 주도해 나가거나, 신비감을 포기하고 친밀감을 승부하는 악착같은 자세를 연출하거나, 거절할 틈을 주지 않으며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재기를 보일 것이다. 적극성이 단초이다. 자, 불신, 신비감 유지, 두려움의 부담부터 털자. 이것이 ‘말하기의 정상(頂上)’으로 가는 길에 버리고 가야 할 짐들이다.

/ 국민대학교 루터대학교 '스피치와 토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