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경인방송 라디오(FM 90.7MHz)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의 목요일 고정코너 '정치전망대' 원고입니다. 출연에는 김용민 시사평론가입니다.

▶ 메가톤급 돌발 변수에 정치권이 큰 충격에 빠졌지? 우선 한나라당 표정부터 짚어 달라.

당이 어수선하다. 소위 ‘MB입법’을 관철하지 못해 당이 이완돼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보란 듯이 당을 철저히 배제하고는 개각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번 용산 철거민 참사 사고가 발생한 상황에서 이 사고를 어떻게 규정하고 해법을 무엇으로 내세울지 지도부선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있다. 'MB입법'건과, 개각 그리고 철거민 참사 사고에는 관통하는 뭔가가 있다. 바로 ‘강행’이다. ‘반대세력 무시하고 무조건 밀고 간다’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청와대의 정서라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다보니 당에서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우리가 청부 여당이냐”라는.

▶ 우선 ‘문책이냐’, ‘진상규명이냐’를 두고 이견을 노출하고 있는 지도부 갈등상부터 짚어 달라.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는 ‘선(先) 진상규명’을 당론으로 정했다. 책임자 문책론은 진상규명 뒤에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이 발언의 배경에는 시위대가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홍준표 원내대표와 소장파는 책임자 문책을 통한 조기 수습론을 주장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번 개각을 청와대가 상의 없이 한 점에 가장 흥분해 있는 당사자이다. 말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타박이지만, 속내는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자, 그런데 어제 한나라당 기류는 ‘진상파악’쪽으로 기울었다. 사고의 책임이 화염병을 이용해 과격시위를 한 시위대에 있다는 정서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 한나라당이 어제 홍준표 원내대표 없이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불참한 것이 아니다. 회의를 주재한 박희태 대표가 홍준표 원내대표를 배제했다. 중요 회의에 원내사령탑을 뺀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먼저 문책해야 한다’는 쪽에 서 있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목소리를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같은 맥락이다. 홍준표 원내대표, 어떤 입장일까. 당연히 당혹감과 불쾌감을 표시했다. 더불어 소속 의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TV토론에도 일절 나가지 말고 언론 인터뷰도 당의 사전 허가를 얻도록 했다.

▶ 그런데 한나라당이 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익명을 요구한 한 한나라당 초선의원이 인터넷신문 <뷰스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그대로 소개하겠다. "정말 상황이 어디까지 번질지 걱정이다. 여권의 권력구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일대 사건이다"라며 극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어제 신지호 의원을 비롯한 일부 초선의원들이 '도심에서 테러가 발생한 것 아니냐' '폭력단체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는 "지금 돌아가신 분들 앞에서 잘잘못을 그렇게도 따져야 되겠나? 부관참시 아니냐. 정무 감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분위기 파악이 그리도 안 되나?"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이 신문과 인터뷰한 이명박 직계의 의원, 대구-경북의 한 중진의원, 친박 핵심 의원도 한 목소리로 성난 민심을 하루 속히 달래야 한다며,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문책을 요구했다.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지만 안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한 상황이다.

▶ 한나라당으로선 2월 임시국회에서 어떻게든 쟁점법안을 처리해야 할 텐데 가능할까?

<뷰스앤뉴스>와 인터뷰한 한 3선의 영남권 의원의 말이 이랬다. "2월 임시국회는 물 건너갔다. 우리가 원하는 소위 쟁점법안은 밀어 붙이자마자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서울의 한 의원도 "진상조사와는 별도로 당장 2월 인사청문회에서 경찰청장이나 국정원장을 상대로 이 문제에 대한 집중 추궁이 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시위진압 강화법을 한쪽에서는 밀어붙인다? 이건 자살행위"라며 집시법 개정이나 사이버모욕죄 신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직 고위당직자 출신의 중진 의원은 "벌집을 쑤셔 벌에 쏘여 본 경험들이 없는 사람들이 정국을 쥐고 있다. 오로지 벌집을 발로 차는 데에만 익숙해져있던 사람들이 지금의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쟁점법안 처리, 더 높은 옹벽을 만난 상황이다.

▶ 일단 청와대는 김석기 경찰청장 경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지?

그렇게 ‘정리해야 한다’며 시장이 애원하다시피 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교체 결정. 수개월 지나서 이뤄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만수 장관에 대한 강력한 애정 표시 때문이었다. 지금도 아쉬워하는 눈치라고 한다. 일단 신임한 인사에 대해서는 끝까지 믿고 함께 가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 스타일이다. 게다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같은 경우, 촛불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해 신임을 하고 있는데다, 대통령과 같은 고향이고, 대통령의 작은 형님이다시피 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고등학교 후배라, 발탁이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마 오늘쯤 사표를 낼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가 촛불집회가 다시 살아난 점에 크게 우려하고 있는 눈치이지?

그제 서울 도심에서 경찰 진압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시민 수천여 명이 순식간에 참여한 ‘촛불집회’가 벌어지자 청와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한 핵심 관계자는 “사태 추이가 예사롭지 않다”며 “조속하고도 과단성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결국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조기 사퇴로 가닥이 잡힌 원동력이기도 하다.

▶ 야권 반응도 종합해볼까?

어제 국회행정안전위원인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꼼짝 못하게 한 문건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1.20 전국철거민연합회 한강로 3가 남일당빌딩 점거농성장 진입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공개된 진입계획 문건에서는 전국철거민 연합회 상공철대위 30명의 인원이 장기적 농성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강경 진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30명의 인원은 진입작전이 있기 하루 전인 19일 5시 30분부터 용산 남일당 빌딩 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개요에는 시위대 측이 보유한 위험물을 “대형 쇠파이프 염산을 담은 박카스병 신나 새총 화염병 5박스 철근 벽돌 작업공구 등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다시 정리해보자. 이건 화염병 시위를 벌이기 전부터 경찰은 특공대 투입을 비롯한 강경 조치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특공대 투입 건은 차장이 자신에게 보고해서 시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이야기해 본인이 승인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유정 의원이 제시한 문건에는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사인돼 있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토끼몰이식 추궁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이명박식 공안통치가 빚은 예고된 참사’로 규정했다.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82명 의원 전원 명의로 ‘이명박 정부의 용산철거민 폭력살상 진압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민주당은 조사범위로 △진압 과정에서 고위층의 지시가 있었는지 또는 개입했는지 여부 △진압 결정과 집행 과정 전반의 사항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이나, 진압 때의 절차 또 훈련 내용이 적절한지 여부 △서울시와 용산구청 등의 도심재개발사업 추진과 철거 집행과정 전반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민주당이 요구한 국정조사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조사계획서가 제출돼도 재적의원의 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는데, 전체 재적의원의 2/3가량을 차지하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국조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