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필자(시사평론가 김용민)가 1월 23일 밤 8시대에 YTN라디오(수도권 FM 94.5MHz)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올 설 연휴, 여야의 민심 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명절 민심이 왜 중요할까. 이런 예를 들어보겠다. 국제대회가 열렸을 때 우승하거나 극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실황을 혼자 봤을 때와, 여러 명이 함께 봤을 때의 감동은 천양지차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응원하며 즐길 때 그 감동이 크다. 이걸 시너지 효과라고 한다. 명절 민심도 이렇다. 'A당은 하는 일이 별로야’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친지들 모인 자리에 가서 A당을 비난하는 목소리만 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갖고 있는 A당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순 비판에서 불만과 혐오감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여론 형성 구조를 봤을 때, 이번 설에 어느 당이 가장 손해를 입을까. 현재 각 당의 표정을 보면, 여당은 ‘초조’, 야당은 ‘느긋함’이다. 최근에 연발되는 악재들을 보면, 여당 책임론으로 귀결될 성질의 것들이 많다. 오늘 소개할 빅3 이슈도 이러하다.

■ 설날 빅 이슈 1. ‘용산 참사’

민심을 안 읽는 것인지, 못 읽는 것인지 청와대의 정무기능, 참 딱하기 그지없다. 청와대는 오늘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 요청서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석기 후보자를 그만두게 할 목적으로 안 보낸 게 아니라, 서류가 미비해 못 보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이야기해 김석기 후보자를 서울경찰청장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은 물론,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물론 유임시키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설 이후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설 이후까지 왜 미룰까. 여론이 얼마나 나빠질지 간을 보겠다는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여론의 반발이 잠잠하면 그냥 밀고 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사실 철거민들의 시위, 과격했다. 화염병 투척, 그것을 아름답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 또 보수단체가 아무리 ‘과격 시위 논란’을 부추겨봐야 이런 반론만 샘솟을 뿐이다. “그래, 그렇다 하더라도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사회적 약자를 죽일만한 이유가 되느냐”라는. 한나라당은 그래서 속 탄다. 명절을 앞두고 `용산참사'라는 대형악재가 터져 나왔지만 연휴 코앞까지 이렇다 할 수습책이 나오지 않아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지역구 의원에게 ‘불법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도록 했지만, 지역구 의원들은 마뜩찮아 하는 표정이다.

이번 설 연휴 민심의 향배가 2월 쟁점 입법과 4월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설 연휴가 끝나면 2월이 시작된다. 한나라당은 1월까지 이어진 임시국회에서 쟁점입법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2월에는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여론이 힘을 얻는다면 한나라당은 부담을 하나 더 지게 된다. 어떤 여론이냐? “국회 파행, 방송 파행 게다가 용산 참사까지. 보라. 하나부터 열까지 반대파 의견 하나도 안 듣고 밀어붙이기만 한다.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의견 말이다. 이런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힘으로 수로 밀어붙여 물의를 빚는다면 ‘거대 여당 비판론’이 힘을 얻을 것이고, 이게 또 4월 재보선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을 앞두고 한나라당, 살얼음을 걷는 상황이다.

■ 설날 빅 이슈 2. ‘경제 위기’

지난 연말 정정길 대통령 실장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만나 이런 예언을 했다.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가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해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라고. ‘경제 성장’으로 흥한 이명박 정부, 지금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어제지? 지난 해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건 시작이다.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것이다. 지금 공, 사기업을 불문하고 곳곳에서 구조조정 열풍이 일고 있다. 이렇게 생사람 내보내는 판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나올 60만 명의 취업 준비생들을 품어줄 리 없다. 극심한 취업 또 실업난이 우려된다. 게다가 유동성 위기는 심화돼 돈이 안돈다. 중소기업은 흑자 상태에서 망해버린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속도전’과 ‘돌파’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듣거나 반대세력과 화해하고 타협하는 것을 배제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반대’는 ‘속도전을 방해하는 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 다섯이 숨을 거뒀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변화될까. 변화돼서 국민의 통합된 의지와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세울지. 아니면 지금 기조대로 밀고 나가며 ‘나를 따르라’라는 목소리만 키우며 모세형 리더십만 구가할지.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타당한지를 두고, 이번 설날 사랑방에서 갑론을박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방향이든, 결과가 부진하면, 이 모든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 쏠린다는 점이다.

■ 설날 빅 이슈 3. ‘물난리’

이게 바로 세 번째 이슈이다. 지금 극심한 겨울 가뭄으로 남부 지방 특히 동쪽 지방은 아우성이다. 강원, 충북, 경남·북 등의 내륙지역은 물론 남해안 도서지역까지 제한 급수나 단수 조치가 취해졌다. 전국 15개 다목적댐의 저수율은 40%로 1년 전의 3분의 2 수준이다. 하천 유량이 줄면 수질이 오염되고 하천이 쉽게 얼어붙어 용수난이 커진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로 물을 끌어다 쓰려고 아우성이다. 이러다가 ‘물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낙동강 상황은 최악이다. 대구·경북 일부지역에서는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 농도가 권고치 이상으로 검출돼 취수 중단 사태가 빚어졌다. 가뭄과 무관치 않다. 다이옥산 농도를 낮추려면 낙동강 유량을 늘려야 하지만 상류 지역 안동댐에서는 물을 더 내보낼 형편이 못 된다. 그런데 이 가뭄이 최대 6월까지 간다는 얘기도 있다. 모내기는커녕, 기근이나 안 날지 고민이다.

<세계일보> 칼럼에 실린 내용을 보자.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경문왕 10년 때에 기록된 “겨울, 눈이 오지 않았고 백성이 병에 걸린 자가 많았다”라는 문장이 있다. 왕은 그래서, 이듬해 정월 황룡사 탑을 개조토록 했다. 불력(佛力)으로 재난을 이겨내려는 조치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가뭄이 들면 궁중행사로 기우제를 지내고 죄질이 가벼운 죄수를 석방했다. 하늘을 달래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측우기와 수표를 이용해 강우량과 하천 수위를 정밀 측정토록 한 것은 물에 목말라 하는 민초의 아픔을 헤아린 증표다.” 사실 가뭄이나 홍수는 임금의 성정에 대한 하늘의 평가를 미신 같은 인식도 있다.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정비 사업을 통해 치수사업에 손 댈 움직임이다. 그러나 4대강 프로젝트는 저수용량 확대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준설만 할 뿐이란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목적 댐을 많이 짓는 게 가장 전통적이며 확실한 해법이란 것이다. 그러나 댐 짓는 게 몇 달 안에 될 일이 아니다. 한 10년은 걸리는 일이다. 따라서 물 부족 현상이 자칫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 소지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주의 실종, 경제위기 가중에 또 하나의 이중고를 이명박 대통령이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설날, 이제 밥상 물린 이후의 ‘시사토론’ 자리의 주빈(主賓)이 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평가, 어떻게 귀결될지 정가와 언론계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