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대리운전

경기도 부천에 사는 신현철 씨의 일기 내용이다. "대리운전 기사는 늘었으나 손님이 크게 줄었음을 피부로 느낌. 상동 유흥가 인근에서 다른 여성 대리 기사에게 손님 양보함. 낮에 중동주민센터에 들러 도움을 바라는 어려운 가정 있는지 알아봄." 2009년 2월 10일. "만취한 40대 여성이 '대리기사가 거스름돈도 안 갖고 다닌다'며 5000 원짜리를 던지고 차 문을 쾅 닫음. 중동주민센터 기부함에 1만2000 원 넣음." 2008년 12월 16일. 한 달에 20일 정도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부천·인천을 누비며 버는 돈은 전화료·콜비·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하루 2만 원 정도. 신현철 씨는 이 돈을 모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쓴다.

주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대리운전 기사일 텐데, 어째 수익을 모두 기부할까. 부천에서 10년간 초·중등학생 대상 학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 운영이 힘들어졌다. 작년 수소문 끝에 상조회사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해 남을 돕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밤에 대리운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부인과 중학생 자녀를 뒀지만, 자기 식구들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대리운전을 시작한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50여만 원을 전달했다. 습관이었다. 2000년 어느 날 가정형편이 어려운 초등학생 2명을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졸업할 때까지 급식비·학용품비 등으로 매달 4만~5만 원씩 후원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남겼다고 한다. "남이 있어야 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세상에 추악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불우 외국인 돕는 정형외과 원장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있는 고려한사랑정형외과 최용경 원장 이야기이다. 입원 중인 레이나라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레이나 몸은 좀 괜찮아졌어?" "예. 선생님. 저 이렇게 오래 입원해 있어도 되나요?"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얼마든지 있어도 되니까 염려마." 최용경 원장은 병원비 걱정을 하는 레이나를 안심시키며 미소를 지었다. 레이나가 이 병원에 온 것은 지난달 28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 지역의 외국인과 고려인들을 위해 활동하는 한 목사로부터 최용경 원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해 12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레이나가 시내 대형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의 절단 수술을 했는데 비용 때문에 오래 입원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최용경 원장은 "레이나를 우리 병원에 입원시키자"며 흔쾌히 허락했다. 이후 레이나는 최용경 원장의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최용경 원장은 다리 치료하는 것 외에도 레이나가 입은 마음의 고통까지도 같이 돌보고 있다. 6년 전 한국 남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레이나는 남편의 구타로 파경을 맞았다. 법원은 레이나에게 자녀양육권을 줬으나 자립능력이 없어 경제력을 갖추면 아들을 되찾겠다고 합의하고 남편에게 아들을 맡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들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결국 아들을 잊지 못한 레이나는 자살까지 시도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최용경 원장은 레이나가 심리적 안정을 위해 통역을 불러 대화를 많이 나누고, 웃음으로 대하고 있다. 그런데 최용경 원장의 이번 선행은 빙산에 일각이었다. 2001년 은평구 갈현동에 처음 병원을 차리고 200여명의 외국인을 치료했다. 그가 치료해준 외국인은 돈이 없어 치료조차 못 받는 이들이었다. 왜 이런 선행을 할까. "지금 하는 일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내 능력을 이용해 남을 조금 돕는 건데, 이 일을 계속하면 되겠죠."라고 했다.

○…소년교도소의 학사모

방송통신고를 통해 중도포기 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한 천안소년교도소 원생 5명 이야기이다. 이들은 어제 졸업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출장수업을 해 온 천안중앙고의 김광희 교장, 생애 단 한 번뿐인 고교 졸업식에서도 푸른 수의(囚衣)를 벗을 수 없는 이들의 딱한 처지를 배려해 학사모를 씌워줬다. 모범상을 수상한 김철민 씨. 고1 때 부모가 이혼한 뒤 방황하기 시작했다가 고3 때 성폭행을 저질러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절망 속에 빠졌다. 그러다 지난해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천안중앙고 부설 방송고 3학년에 편입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남은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8월 출감하면 내년 대학 입시에 도전할 생각이다.

열다섯에 살인죄로 15년형을 받은 서 모 씨는 앞으로도 11년 9개월을 담장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서 모 씨는 어제 졸업식을 찾은 홀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래 희망을 얘기했다. 당장은 어렵지만 출소 전에 대학에 입학해 졸업까지 한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소년원에서 일반교도소로 이감되더라도 작업을 통해 적으나마 돈을 벌 수 있다. 어머니 도움을 받지 않고 학비를 벌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션모델이 꿈인 박 모 씨는 TV에서 본 패션쇼의 모델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강당 마룻바닥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는 "잠들기 전 대여섯 뼘 남짓한 좁은 통로를 돌며 휘황찬란한 조명이 나를 비춰주는 광경을 상상하곤 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