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기습 상정 때문이다. 정국의 시계는 제로 상태이다. 다음은 필자와 부산MBC라디오 <아침의 발견>이 2월 27일 오전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 한나라당이 언론관계법을 기습 상정한 이후, 우려했던 국회 파행이 현실화되고 있는데요. 상임위 파행이 계속되고 있죠?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만이 아니다. 여야의 대치는 전 상임위원회로 번졌다. 민주당은 미디어법 상정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면서 이틀째 문방위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금산분리 완화, 국정원법 개정안 같은 핵심적인 쟁점법안들이 계류된 상임위원회석도 민주당 의원들이 장악했다. 상대적으로 쟁점이 덜한 기획재정·보건복지·지식경제·농수산식품·교육과학기술위원회같은 비쟁점 상임위원회들도 회의가 열리지 못하거나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하는 ‘반쪽 회의’로 잠시 진행되다 산회했다.

▲ 2차 입법전쟁이 시작이 됐는데, 지난 1차 입법전쟁 때와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는 듯 합니다. 닮은 점과 차이점, 어떻습니까?

=우선 공통점부터 보자. △ 똑같은 법안, 똑같은 쟁점을 갖고 쟁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 여야 사이에 타협점을 찾기 보다는 피차 물리적 압박을 가하고 또 여기에 저항하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 △ 대통령 형을 비롯해 권력 핵심부 인사들의 강공 드라이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 언론노조 같은 이해집단의 반발 기류고도 거세다는 점이 있다. 연말연초 국회 때 벌어졌다 그친 1차 입법전쟁. 그것이 말 그대로 휴전이었음을 보여준다.

차이점도 있다. △ 미디어법안의 경우 과거엔 상정조차 못했는데 이번에 우격다짐 속에 성사시켰다는 점. △ 1차 때와는 달리 이번엔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가능성을 강력하게 흘리고 있는 점. △ 여당 내부에서 온건론, 강행 처리 불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터라 이번에 기선을 빼앗기면 정치적 타격이 크다는 압박이 양당 모두에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생결단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2월 임시국회 종료를 불과 나흘 남겨둔 상황에서 민주당도 뾰족한 저항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이는데요. 민주당 내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영화 제목 중에 이런 게 있지? ‘주먹이 운다’라고. 민주당이 이 상태이다. "국회의장이 날치기를 하려 한다면 뭐라도 잡아서 막아야 한다"는 등 거친 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이 직권 상정하던 날에는, 한승수 총리가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부탁하며 정세균 대표를 예방한 날이었다. 또 저녁에는 쟁점 법안 처리와 관련해 정책위의장 회동이 약속돼 있었다. 적어도 그날에는 상정안 할 것이라고 믿었던 터였다. 그런데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상정된 게 아니다"에 방점을 찍었다. 법적 미비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나라당 지도부 그리고 정부 일부 관계자들이 합작해서 처음부터 치밀하게 사기극을 벌였다"고 주장하면서 여당을 더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여당의 유감 표명정도는 있어야 민주당이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은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인데요. 미디어법의 상임위 상정에 이어 한나라당이 곧바로 본 회의 직권상정을 거론할 수 있을까요, 2월 임시국회 처리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다고 여당이 고개 숙이고 원점으로 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 사이에 협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딱 한 사람, 김형오 국회의장의 역할만 남았다. 여야 원내대표들을 잇따라 만나면서 의견 조율에 나선 김형오 의장, 하지만 현격한 인식차이만 확인한 상태이다. 때문에 김형오 의장이 여야 사이에 이견이 큰 미디어 관련법을 제외하고 은행법 같은 민생관련 법안을 직권 상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직권 상정할 수 있다’는 정치적 권위를 보여주되, 쟁점법안은 피함으로써 야당에게 인심을 잃는 일은 피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만약 우여곡절 끝에 여야 간 대화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추경과 관련해 여당이 한 수 꺾고 야당을 달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법안의 경우, 일단 상정은 됐으니 논의시기를 4월로 미루는 식으로 해서 민주당과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루는 것은 말 그대로 미봉책이다. 민주당이 말 뿐인 회유에 넘어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 한다’라는 말 대신 확실하게 ‘합의 처리 한다’라는 약속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여당이 응할까. 응한다면 절충점을 찾을 것이다. 확실해 지고 있는 것은 남은 일주일 안에 미디어법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 이런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이 "자신에게도 원칙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발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어떤 뜻일까요?

"이 시점에서 국회의장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는 역사와 국민,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을 고민 끝에 하겠습니다." 어제 한 말이다. 이 말은 김형오 의장이 여야 사이에 이견이 큰 미디어 관련법을 제외하고 은행법 같은 민생관련 법안을 직권 상정하다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일괄상정을 기대하고 있고, 민주당은 직권상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 중간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김형오 의장이 정치적 모험을 불사하고 한쪽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미약해 보인다.

▲ 민주당은 미디어법 상정시도와 관련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로 나섰는데요. 이렇게 되면 민생법안 발목이 또 잡히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얘기하면 민주당 탓만 할 수밖에 없는데, 우선 민생법안부터 처리한 다음, 미디어법과 관련한 쟁투를 벌이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시작부터 야당의 굴복을 강요하며 힘의 논리로 맞서는 여당의 처신도 참으로 문제이다. 민생법안 처리가 표류하게 된 점,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다. 문제는 민생 경제법안 뿐만 아니라 당장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될 추가경정 예산안이다. 사실 이제 회기연도가 시작된 지 두 달 지났는데 또 추경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과거 야당일 때 한나라당은 추경을 비난하던 입장이다. 그런데 이제는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우선 사과부터 하고 추경 논의를 시작하자”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법안 통과의 키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이한구 예산결산 위원장도 반대 입장이다. 민생 챙기기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