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 진단 - 나의 말에는 무엇이 있나.

“당신이 수다를 떨면 떨수록 사람들은 그만큼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페네롱

“진정한 웅변은, 필요한 말을 전부 말하지 않고, 필요치 않은 것은 일체 말하지 않는 것이다.” 라 로슈코프

사람은 늘 정장 차림하지 않는다. 집에 있을 때 팬티 차림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말도 마찬가지이다. 때론 별생각 없이 시시껄렁한 말도 한다. 항상 의미심장한 말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미 없는 말을 남발하는 습관은 그리 좋지 않다. 말에도 거품이 있는 것이다.

의미 없는 말과 유의미한 말,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화제(話題)’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즐기는가. 본인이 본인의 선호하는 화제를 가늠할 수 없다. 마치 본인의 입 냄새를 본인이 알아차리기 힘든 것처럼.

당신과 대화를 많이 나눈 친구 혹은 형제 자매에게 다음 설문을 보여주고 해당하는 것에 v표를 하도록 하라.

예 아니오
□ □ 자극적인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 □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발언만 주로 한다.
□ □ 타인을 평가할 때 극단적으로 규정한다. (극호감, 극비호감)
□ □ 판단하는 말 속에 객관적 근거에 의존하는 경우는 없다.
□ □ 지나치게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듯 느껴진다.
□ □ 본인도 잘 모르는 어휘와 관용 어구를 자주 쓴다.
□ □ 덮어놓고 양비론 양시론으로 이어진다.
□ □ 개인의 느낌을 절대시한다.
□ □ 이 사람의 말에 받아 적을 만한 것이 없다.
□ □ 이 사람 이야기 속에 어느 정도 거품이 끼었다고 본다.

진단을 한 번 해볼까? 여기서 ‘예’가 3개 미만일 경우 상관없다. 다만 5개 이상이면, 말을 하면 할수록 밑천이 드러나게 될 경우이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말에 무게가 없는 경우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서 7개 이상이 된다면, 이 사람은 말을 하면 할수록 본인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경우라 하겠다.

말에는 하는 사람의 철학과 근본이 묻어난다. 욕설과 비속어 섞어야만 ‘막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욕설과 비속어가 들어 있어도 사안을 보는 통찰력과 방향 제시가 있다면 그 말에는 권위가 실린다.

‘말 실력의 유무’는 언변, 순발력, 발음능력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성패는 ‘말의 무엇(what)'이 되겠다. 그러려면 질 낮은 말을 도려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2) 해설 - 질 낮은 말은 무엇이며 왜 하는가

질 높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는 말이어야 한다. 질 맞은 말은 반대로 ‘무엇’이 미약하거나, 종속변수가 돼 있거나, 있더라도 그 내용이 오도되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각각 △ 신변잡기 △ 남 흉보기 △ 박약한 지식 및 철학으로 풀이할 수 있다.

① 신변잡기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왜냐. 꺼내는 말의 8할이 여기에 집중된다면 십중팔구 ‘우주의 중심이 본인’이라고 착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인상, 판단이 모든 논리의 근간이 돼 버린다.

물론 같은 신변잡기라도,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다가 잡혀가 고문당하고 사형 판결까지 받다 풀려난 사람, 40년 동안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설렁탕을 만들어 내 세계적 장인(丈人)의 반열에 오는 인사 또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정상에 등반한 사람의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사람들이 하는 신변잡기는 그 자체로 어록이 되고, 무게감 자체가 다를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의 주인공들은 숱한 난관을 거쳐 정상에 오른 이들이다. 관점과 사고의 폭이 장대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신변잡기가 아니다.

신변잡기형 말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실언’ 사고를 많이 낸다. 1995년 6월 초여름 대한민국을 경악하게 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기억하나.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붕괴 참사의 총체적 책임자로 구속된 이모 회장(고인)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재산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번 사고는 단순 과실일 뿐”이라고. 자신의 부실 관리로 1천여 명과 피를 나눈 가족을 황망하게 만든 참사였는데도, 본인은 ‘자기 재산 손실’에만 관심을 뒀던 것이다. 필자는 이분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실언은 아마 매사에 모든 관념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낳게 만든다.

② 남 흉보기

뒤에서 남의 흉을 볼 때, 이른바 ‘뒷다마’라는 말을 많이 쓴다. '뒷다마'라는 원래 당구장에서 쓰던 말이라고 하지? 처음 치려고 했던 대로 맞지 않고 빗나간 공(다마)이 반 바퀴 더 뒤로 돌아와서 맞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럴 경우, 치는 사람은 좋겠지만, 이걸 지켜보는 상대편은 상당히 분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뒤에서 내 흉을 본다면, 심히 불쾌할 것이다. 그래서 ‘뒷다마’라는 말이 비롯된 것 같다.

그렇다. 누군가 뒤에서 나의 신체조건, 행동, 발언, 태도 그리고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할 경우, 아니 이 경우를 알게 될 경우, 민망함과 분노를 감추기 힘들게 된다. 지금은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과거 필자의 직장 부하였을 때 일이다. 하루는 마음먹고, 타이름 반, 경고 반해서 쓴 소리를 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필자에게 문자가 왔다. “지는 뭐 잘났나”라는 문자였다. 후배가 보낸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 후배는 필자를 아는 다른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실수로 필자에게 전송한 것이다. ‘뒷다마’의 대상에게 보낸 것이니 이를 ‘앞다마’라고 해야 할까. 물론 이 후배의 경우, 분함을 표출할 창구를 찾은 경우이다.

문제는 이런 ‘뒷다마’가 만성화, 체질화, 유희화 됐을 경우이다. 사람만 만나면 주변 사람 흉보는데 시간을 대부분 소모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은 같이 맞장구 쳐주는 청중이 있으면 더 고무돼, 없는 얘기 또는 최종적으로 감춰져야 할 얘기까지 꺼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저 사람은 뒤에서 흉 볼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삶이 고단할까’하는.

다시 이야기해 이런 사람들은 남 흉보는 말을 남발함으로써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격하하는 우를 범한다. 이게 무슨 얘기냐. 남의 입장에 반대하는 것, 또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써 본인의 존재 가치를 다 드러내는 경우이다. 싫어하는 상대가 없으면 본인도 없는 그런 꼴이다. 남의 잘못에 너무 기대면 주체성을 상실한다는 지적이다.

정치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10년 동안 집권했던 소위 ‘개혁 성향’의 정권 주도 세력을 보자. 이 정권에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 반대 저지 캠페인을 주로 일삼았던 소장 학자 또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중용됐다. 그러나 이들은 그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관료 또는 자본가에게 포위됐다. 그러더니 침략 전쟁에 파병하도록 동의하고, 경제 종속을 심화시킬 한미FTA 비준을 서두르고, 이미 망조가 들어버린 미국의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을 베낀 금융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려 했고, 공공 서비스의 정점인 의료 분야를 영리화하려는 ‘퇴행성’을 노출했다. 반대만 해 온 이들, 정작 주도권을 쥐는 순간, ‘주체성’ 없이 휘둘렸던 것이다. 이들은 지금, 과거 시민운동 때의 명분과 명성을 다 까먹고 ‘OO 정권 인사’ 또는 ‘OOO 전 대통령 측근’이라는 허울만 안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당인 한나라당은 어떤가. 지난 10년 동안 정말 편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정만 나오면 비난하는 식으로 정국 주도권을 ‘이삭줍기’했기 때문이다. KBS를 나팔수로 전락시켰던 5공화국. 그 5공화국이 만든 민주정의당이 뿌리가 돼 오늘에 이른 한나라당은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KBS 사장으로 선거캠프 특보를 앉히려 하자 ‘KBS의 독립성’ 운운하며 반대했다. 웃음이 나왔지만 여튼 옳은 행보였다. 그런 한나라당은 5년 뒤, 권력의 입김에 의해 KBS 사장이 교체되고, YTN 사장에 선거캠프 특보가 임명됐을 때에는 언급을 아예 회피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적인 예가 됐다. (여담이다만, ‘내가 하면...’ 이 말을 지은 사람이 공교롭게도 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라는 점, 알고들 있는지.)

따라서 남 흉보는 사람들, 대개는 자가당착, 그러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가 많다. 일관성이 없다는 인상을 남기는 즉시, 발언하는 이의 무게감은 확 떨어진다. 꺼내는 말에 권위가 없다 함은 ‘말의 질이 낮다’라고 치환할 수 있다. 이런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말을 가려하라’라는 것이다.

③ 박약한 철학 및 지식

‘박약(薄弱)’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얇고도 약함’이라는 뜻이다. 사전에서 풀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다. △ 의지나 체력 따위가 굳세지 못하고 여림. △ 불충분하거나 모자람. △ 지능 따위가 정상적인 상태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필자가 골랐지만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최악의 경우이다. 지식과 철학의 밑천은 바닥인데, 말만 융숭하게 잘 한다? 시골 장터를 오가는 사이비 약장수에 다름 아니다. 아니 약장수도 실은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건강의 욕구’를 자극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지식과 철학을 사전에 구비한다. 따라서 ‘깡통 달변가’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이비 약장수만도 못한 저질 입담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은 대중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말하는 족족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동방신기의 멤버인 영웅재중의 인터뷰가 한 때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성지 <GQ> 2009년 2월호와의 인터뷰였다. 이 때 “신문 읽기를 좋아한다"며 “<중앙일보> 팬이다. 종이 질도 맘에 들고, 글씨도 눈에 잘 들어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기억에 남는 기사를 묻는 질문에 “김정일이 아파서 전쟁 날지도 모른단 얘기가 떠돌 때였는데 신문에 주한미군에 관한 기사가 났었다”며 “그 전까진 미국 기지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게 싫었는데 그 날은 기사를 읽으면서 주한미군에게 조금 의지가 됐다. 어찌 됐건 전쟁 나면 우리 편일 것 같고”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 사실이 있다면 정말 ‘지식과 철학이 없는 말’의 전형이 될 것이다. 영웅재중은 <중앙일보>를 선호하는 이유로 △ 종이 질 △ 글꼴을 들었다. 마치 식당의 외양과 메뉴판 디자인만 보고 ‘맛있다’ ‘없다’를 가리는 꼴이다. 신문의 가치는, 대개 논조, 신뢰성, 기사의 질, 정보량 등이 아닌가. 게다가 주한미군 주둔 지속 혹은 철수에 관한 쟁점이 다분한데, 특정 신문의 기사 한 건 읽고 ‘있어야 한다’며 단선적으로 귀결 짓는 것은 공인으로서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물론 본인은 이런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정말 안 했기를 바란다.

지식과 철학은 책 몇 편 보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는 사색과 호기심, 지식 습득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이런 사람들은 말을 몇 마디만 해도 그 안에 가득한 내공 때문에 ‘달변가’로 추앙된다. 흔히 이런 달변가를 ‘내공이 있다’라고 평한다. 내공 있는 입담을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손석희, 진중권, 김제동은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3) 해설 - ‘질 높은 말’ 하기

‘저질’ 소리 듣지 않으려면 아는 게 많으면 된다. 습관 몇가지를 일러주겠다.

▶ 신문 중 사설을 꼭 챙겨 읽어라

사설은 사진이나 도표가 잘 안 나온다. 제목 한 줄에다, 나머지는 깨알 같은 크기의 글씨로 된 글로 구성된다. 눈길 한 번 주기 힘든 부담스런 영역이다.

그러나 읽어라. 사설 안에 해당 사안의 모든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뿐인가. 문제의식이 담겨 있고 해법도 제시돼 있다. 이 한 편 읽으면 그 사안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간파하게 된다.

그걸 매일 연습해보라. 1년 정도 습관화하면 적어도 지인들 사이에서는 시사 현안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과시할 수 있다. 또한 무슨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시할 때 매우 논리정연하게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눈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이러면 사설에 있는 단어가 내 것으로 소화된다. 어휘력도 풍부해진다.

그러나 모든 사설이 다 주옥같은 것은 아니다. 신문별 편차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신문 사설이 좋을까. 국어문화운동본부가 2007년 5월에 발표한 6개 주요일간지 사설 비교분석 자료가 있다. △ 낱말 사용(맞춤법, 한자, 알파벳, 비표준어, 비속어, 은어, 외국어, 부적절한 낱말) △ 문장표현(길이, 비 문법, 비 호응, 외국어투, 한문 투, 피동형, 특수어투, 잉여, 동어 반복, 부적절한 어구, 어순, 어색한 관형어) △ 주장 방법(수필적 문장, 횡설수설, 모순, 자의적 및 빈약한 근거, 억지, 논리 비약, 지극, 감정, 전투적, 일방, 편파, 주제 이탈, 끝내기 부적절, 주장 없음)을 분류한 결과 가장 잘못이 큰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가장 적은 신문은 <한겨레>였고. <조선일보>는 국어, 논술 등 세부적인 면에서도 잘못이 가장 많은 신문으로 꼽혔다. 국어 부문에서 잘못이 적은 신문 1위는 <한겨레>, 논술에서 오류가 적은 신문 1위는 <경향신문>이었다.

▶ 인용법을 애용하는 훈련을 하라

자신의 입장을 밝힘에 있어 많은 방도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민주당이 싫다”라는 입장이 있다고 하자.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나는 타인에게 반민주당파, 나아가 친한나라당파로 규정될 수 있다. 정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언급을 해도 ‘반민주당파’ 또는 ‘친한나라당파’는 꼬리표를 붙이고 하는 꼴이 된다. 확신체계가 뚜렷한 것이 미덕인 정치인이 아닌 이상 스스로 프레임 속에 갇힐 필요는 없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강구해야 한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을 때, 혹은 자신의 지지입장을 표현하려 할 때. 뿐만 아니다.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갈려있는 사안에 대해서 나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천명하려 할 때. 남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형식의 화법을 이용해보면 어떨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규탄 한다”라고 한다면, 이런 직설화법 보다 “외신 보도를 보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있는 민간인 밀집지역에 포격을 가했다.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 비명에 숨졌다”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어떤가. 남이 한 얘기를 인용한 것 같지만 대화 상대에 이 얘기가 도달할 때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나의 비판 입장’이 격조 있게 접수된다.

내 심경을 드러냄에 있어 최대한 감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 왜 그러느냐. 내 말 속에 담겨있는 ‘신변잡기 성’을 도려내기 위함 때문이다. ‘나만 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무게감’을 실어 말이다.

▶ 거짓말을 안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도덕 교과서 같은 말 좀해야겠다. 선량한 상대에게 악의성을 담아 거짓말을 했을 때에는 이미 그 말은 전혀 ‘질 높은 말’이 될 수 없다. 거짓말은 안 하는 것이 좋고, 옳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진실만한 권위는 없다’라는. 자신에게 부정적인 여파가 오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은 상상 밖에 파장을 낳는다. 상대를 기만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통장으로만 신용평가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말로도 나의 신인도가 좌지우지 된다.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얘기하기 힘든 상황도 있다. 이럴 때에는 진실 대신 최소한 침묵이나 진실에 대해 부정을 표시하지 않는 어법을 통해 거짓의 수렁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흔히 어린이에게 쉽게 거짓말을 하는데 이것 역시 안 될 일이다. 상황을 면피하려는 거짓말은 아이들도 감지한다. 자녀에게 남발한다면, 그 아이가 배울 가능성이 있다. 장래 자녀의 비굴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 얘기에 반해서 해보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왜 재임 중이던 1998년에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당하는 수모를 당했을까. 르윈스키란 여성과 부적절한 혼외 관계를 맺어서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적이 없었다’라고 위증함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는 불륜보다 거짓말에 더 경악한다고 한다. 그 뒤 클린턴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거짓말은 당신의 권위의 무게를 다이어트하는 변수가 된다.

▶ 인격을 훼손하는 말은 피하라.

인신공격이라고 하지? 상대의 불편한 사정을 갖고 희화화하는 발언을 말한다. 상대가 불쾌해한다면 삼가야 한다. 자칫 잘못 꺼냈다가는 대단한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개인의 외모(얼굴, 키, 몸매, 비만정도)와 성적취향을 갖고 종종 웃음거리를 삼는 경우가 있다. 최근 개그맨 김구라는 상대의 이혼 경력, 금전 관계까지 코미디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인신공격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웃음거리가 되는 희극인이 ‘날 웃음의 소재로 삼아도 된다’는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의를 구하지 않은 다수가 속해 있는 집단 또는 직군의 노기를 건드리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를테면 특정 직업군(가스배달, 목욕관리사. 분뇨차 기사, 간호사)이나 지역 거주자, 단체 가입자 등이 불편해 할 말은 삼가야 한다.

일전에 개그맨 왕비호가 불량한 옷차림의 개그맨을 일컬어 “이런 애들이 졸업하면 가스 배달하는 거야”라고 했다. 가스배달에 종사하는 이들의 불만을 샀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천직으로 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인지 반발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가수 태연의 경우는 심각했다. 근속도에 있어서 가스 배달과 비교가 안 되는 간호사 직종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태연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간호사들의 점심식사 때문에 진료 공백이 빚어진 일을 거론하며 “평생 점심식사나 하라”며 비난했다. 발언 다음 날 사과를 표명하기까지 불거진 사회적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수 십 년 전 한 국회의원이 TV토론회에 나왔을 때, 상대가 여담을 자주 늘어놓자, “말이 삼천포로 빠진다”라고 했다가, 삼천포 주민들의 집단 상경 시위라는 여파를 불렀다.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말을 했을 때 반발할 사람들은 없을까’에 말이다.

이보다 더 심한 인격 침해 발언은 사회적 약자 즉 농민, 장애인, 도시 빈민, 여성, 성 소수자에 대한 것이다. 이보다 더 강도가 센 것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가신 망자, 즉 돌아가신 이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일전에 뉴라이트 계열의 한 의원이 “(철거민들에게) 테러의 의도가 있지 않았나”라며 용산 철거민 사망 참사를 호도하려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근본적으로 ‘사람 귀한 줄 아는 것’이 전제된다면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 한국인과 말

화병이라고 들어보았나? 열 불 나는 병이다. 열 불 나는 일을 당한 사람은 모두 화병이 생길까? 그렇지 않다. 그 열 불 나는 마음을 풀지 못하고 응어리로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병이 커진다.

이런 통계가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 1세들의 화병 발병률이 12%였다고 한다. 반면 미국 이민 2세대에게는 화병이 거의 없단다. 왜 그럴까? 혹시 말이 통하고 안통하고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사실 이민 1세대들의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의 사연은 눈물 없이 듣기 힘들다. 인종 차별에 눈물 한 번, 말이 안 통해 구박받는데서 눈물 한 번, 고향 떠나 고생하는 설움에 눈물 한 번. 물방울 하나하나가 바위를 뚫는다고,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미국 땅에서 성공 하겠다’던 굳은 심지, 굳은 가슴이 뚫리고 말았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한국 사람들, 하지만, 돗자리를 펴주면 일단 동공이 확장된다. 긴장하는 것이다. ‘상한 감정에 대해 토로하라’고 해도 소극적으로 나온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감각이나 감정을 멀리하고 인격과 규범을 중요시했다. 한마디로 금욕적인 인간완성을 추구한 것이다.

수다스러운 모습으로 남에게 첫 인상을 남기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단 처음 대면은 과묵한 모습으로 해야 그 관계가 지속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냥 삼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혹시 표현을 기피하는 관습이 소통 문화가 미약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