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오늘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나?

잡 셰어링(Job sharing) 이야기를 해보겠다. 잡 셰어링. 말뜻을 풀이해보면, ‘일을 나누다’가 되겠다.

MC: 이게 독일 기업에서 처음 나온 말이라고?

폴크스바겐이란 자동차 기업이 사실상 시초였다. 이 기업의 사례를 우리가 많이 참고하고 있다. 이 회사는 1990년대 초에 주당 36시간이었던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였다. 감원 없이는 더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 사정이 나빠졌지만 감원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은 그래서, 임금을 10% 삭감하는 대신 약 2만 개의 일자리를 지켜냈다.

MC: 이건 어떻게 보면 ‘일자기 나누기’라기 보다는 ‘고통 나누기’ 아닌가? ‘잡 셰어링’의 정확한 뜻이 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에서 정의한 중에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과 ‘잡 셰어링’(Job Shar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워크 셰어링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감을 나눔으로써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것이다. 잡 셰어링은 직무분할을 통해 1명의 풀타임 일자리를 2명 이상의 파트타임 근로자가 나누어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준을 본다면, 앞서 폴크스바겐처럼 임금을 깎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워크 셰어링에 좀 더 가깝다 하겠다.

MC: 지금 우리 정부가 선도하고, 기업들이 따르는 ‘잡 셰어링’은 어떤 것일까?

정부 대책은 공기업의 대졸 초임을 평균 14% 정도 깎아 연봉 2500만 원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와 같은 국민운동 차원으로 잡 셰어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MC: 금 모으기 운동 같은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 캠페인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다. 자발적 참여가 필수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금모으기’ 운동은 일종의 의병 운동이었다. 기억날 것이다. 외환위기가 발발하고 이듬해인 1998년 1월 초부터 4월까지 무려 351만 명이 참가했지? 모두 227톤에 이르는 장롱 속 금을 끄집어내 수출했다. 물론 금은 20억 달러어치에 불과했다. 외국에 진 빚의 규모를 고려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하지만, 국민의 열정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적 측면에서는 기막히게 성공했다는 평이 나온다.

MC: 국민들에게 뿌듯한 자긍심을 안겨준 감동적인 사건 아니었나?

그렇다. 그때 국민들은 금을 싼값에 팔아 약간의 희생을 하는 대신, 나라의 위기 극복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 같은 감동이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노동계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든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잡 셰어링 운동은 임금 삭감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갓 사회에 진출하는 새내기에게 집중적으로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MC: 사실 금모으기 운동만 해도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고 일반 국민이 지지하며 동참하는 형태이지 않았나?

새내기는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보호 대상이라고 하지? 그런데 고위 공직자, 기업인들이 앞장서서 희생한다는 얘기는 자주 들리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 없지 않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최근 “내 월급을 깎아서라도 신입사원을 더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이러다보니 밑바닥으로부터의 강력한 지지세가 목격되지 않는 것이다.

MC: 그것 말고도 ‘잡 셰어링’이 유일한 돌파구일까 하는 의구심도 있는 것 같다.

임금을 깎아 사람을 더 뽑는다 하더라도 추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일할 데가 없는 현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공황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루스벨트 해법은 이랬다.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린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도 올려줬다. 이러다보니 고용은 보장되면서 임금이 늘다보니 노동자들은 지갑을 열게 되고 그럼으로써 내수회복을 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 경제는 공황의 터널을 지나 도약의 발판으로 접어들게 됐다고 한다.

MC: 일각에서는 한가하게 ‘잡 셰어링’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도 한다. 요즘에는 ‘잡 컷’ 이야기도 나온다고?

(‘잡 컷’을 잘 못 들으면 ‘잡 것’처럼 들린다.) 앞서 폴크스바겐 이야기를 했는데, ‘잡 셰어링’의 대명사였던 이 회사가 요즘 ‘잡 컷’이라는 카드를 꺼냈다고 한다. ‘잡 컷’은 말 그대로 해고하는 것이다. 임시직 1만6500 명을 전원 해고했다고 한다.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해온 유럽에서는 ‘해고’는 정말 드문 경우이다. 그런데 지난 1월 말 유럽 최대 가전업체인 네덜란드의 필립스는 6000명, 금융그룹 ING는 7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식 잡 셰어링 모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MC: 우리도 남 얘기 할 때만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삼성, LG, 현대·기아차 같은 대표 기업들로부터 중소기업들까지 잡 셰어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유럽·중국 등 수출시장 경제가 더 나빠지고 내수침체가 깊어질 경우 잡 셰어링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C: ‘잡 컷’이 해법일까?

당장은 그렇다. 감원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외환위기 때 경험한 바가 있다.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위기 중에 핵심인력이 빠져나가면서 기술이 유출되고, 위기가 끝난 다음에 인력충원 비용이 더 많아지는 부작용을 체험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기업들이 새내기들, 일반 노동자들보다 더 크게 ‘셰어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MC: 한마디로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군.

얼마 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100조 정도의 돈 금고에 둔 것으로 알고 있다. 풀어 달라”라고 했다.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 현금 갈증 너무 혹독하게 느껴서 쉽게 못 푼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가 있어야 기업이 있는 것 아니겠나. 기업이 화끈하게 돈을 풀어 투자와 고용을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안 보인다. 말하자면 ‘잡 셰어링’이 아니라 과감한 ‘머니 셰어링’이 필요한 것이다. 위기 때마다 없는 사람들 방패막이로 세우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기업이 나설 때가 아닌가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현할 때이다.

이 내용은 SBS 러브FM(서울 103.5MHz) '이승열의 SBS전망대'를 통해 월~금요일 오전 6:35경부터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