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가 사실로 드러났다. 이 문제가 대두되면서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친전’이다. ‘친전’은 친하다 할 때 ‘친(親)’자와, 펴다 할 때 ‘전(展)’자가 조합된 한자어이지? 흔히 쓰는 말은 아니지만 ‘본인이 직접 읽을 것’을 요청하는 의미의 말이다.

그렇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있을 당시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여러 통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하지? 이 e메일에는 ‘친전’과, ‘밖에다 비밀로 부치라’는 뜻의 ‘대외비’라는 말이 들어갔다. 내용도 볼까. △ 촛불집회 사건의 배당 문제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 피의자들이 ‘밤에 시위를 못 하게 하다니 말이 안 된다’라면서 위헌제청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판사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또 △ 최종적으로 형량을 어느 정도로 매길 것인지. 이런 문제에 대해 당시 법원장이던 신영철 대법관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e메일을 받은 일부 판사들은 ‘재판을 어떻게 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압력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친전’ 또 ‘대외비’라고 한 점은, 본인 말고 다른데 새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파문이 불거지고 난 다음, 신영철 대법관은 <조선일보> 지난 6일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입장을 토로했다. "판사들을 믿고 보낸 것인데 이걸 공개하다니 불신감이 생긴다"라고 말이다. ‘친전’ ‘대외비’ 당부를 왜 무시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신영철 대법관은 요즘,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했느냐 마느냐 이것에 대한 해명 말고 입이 열 개라도 할 얘기가 없는 처지 아닌가. ‘왜 남한테 공개했느냐’라는 본질과는 무관한 말을 더 해봐야 뒷말만 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이 ‘친전’ ‘대외비’ 당부를 어긴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점은, 신영철 대법관에게는 이것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법조계만 ‘친전’이 많이 쓰이는 게 아니다. 또 많이 쓰이는 곳은 정치권이다.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 도구로 자주 활용된다는 것이다. 친전은 주로 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유신 정권은 물론이고 문민정부 시절에도 정보기관이 당시 실세였던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에게 주요 정보를 담은 친전을 보냈었다. 그래서 뒷말을 많이 남겼다. 이일은 문민정부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당시 국가정보원장들이 주요 인사들의 통화내용을 담은 A4용지 반쪽 크기의 친전 보고서를 실무진들로부터 받았다. 도청 녹취록인 것이다. 당연히 통화를 엿듣는 것. 또 이 통화 내용을 보고하는 것 모두 불법이다. 그래서 훗날, 이 책임을 지고 해당 국가정보원장들은 구속당했다. 임동원, 신건 씨가 그 주인공이다.

요즘에는 e메일이 발달돼서 종이 우편물이 크게 줄고 있다고 하는데, 요즘 친전, e메일로도 많이 활용되는 모양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e메일을 통해 친전을 전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오프라인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꼭 전달돼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e메일로 된 친전은 스팸메일에 묻힐 경우 열기도 전에 휴지통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아예 전달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남기는 것이다. 반면에 종이 친전은 다소 안전하다. 왜냐. 전달자를 통해 이 친전을 열람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친전, 정치인들은 얼마나 받을까. 의원마다 편차는 있지만 하루 평균 1,2건을 받는다고 한다. 다행히 요즘은 음습한 용도, 그러니까 누구를 음해한다던지 하는 식의 친전은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음해하는 내용의 친전이 사라졌다면 요즘 오가는 친전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겼을까. 민원, 법안협조, 모임 안내 이런 것들이라고 한다. 물론 법안협조를 위한 친전이 많이 오가면 가장 좋을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의 본분이 뭔가. ‘입법 활동’ 아닌가. 입법 활동을 위한 빈번한 친전 교환은 그만큼 국회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반증이거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회에서 오가는 친전 중에는 법안협조 보다 민원이 더 많다고 한다. 이를 테면, 본인의 지역구에 도로 건설이 시급하다고 치자. 그런데 본인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그 위원회에 속한 친한 의원에게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지역구 예산확보에 도움을 달라”는 취지로 말이다. 이건 그나마 낫다. 진짜 심각한 건 따로 있다. 인사 채용건 또는 승진건과 관련한 민원이다. 이런 민원에 돈거래까지 추가되면 누가 뭐래도 청탁 아닌가.

친전의 폐단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동료 정치인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을 상대로 ‘민원’을 전달한다며 친전을 통해 청탁을 했다면, 친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라도 외면할 수 없다. 사실 친전은 문서라는 물적 매개체를 이용해 본인의 부탁을 전달하는 것이다. 나중에 이 문서를 갖고 ‘나한테 청탁했느니’ ‘안 했느니’하는 논란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꼭 해 달라’는 부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례를 하나 더 들자. 삼성 비자금 사건 때도 친전 문제가 화두가 됐다. 삼성사건 특별검사팀이 밝힌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삼성 비서실 안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팀이 있었다. ‘관재파트’인데, 여기는, 중요 자료가 있으면 회장에게 직접 문서를 통해 보고했다는 것이다. ‘회장친전’이라는 말을 봉투에 기재해 여기서 계통은 무시된다. 회사 업무가 아닌 회장 일가의 일이다보니 그렇다. 정상적인 계통을 밟아 결재하면 보안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친전 문화가 애용됐다는 것이다. 결국 친전은 이 경우, 투명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

우리 사회 패거리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란 얘기도 있다. 특별한 예우를 원하는 문화, 또, 이 문화에 응해주는 문화가 발동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내가, 너와 특별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의미, 또, ‘고급 정보를 가진 제가, 윗분과 이 내용을 특별히 공유하는 것’ 이런 의미이다. 신분상승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형태이다. 어쨌든 친전이 오가는 사람끼리는, 이런 식의 모종의 유대감이 형성되겠지? 이러다보니 폐쇄 주의적 속성도 엿보인다. 누구든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귓속말을 나누는 사람끼리는 동질감이 형성된다. 선택된 특정 대상과의 폐쇄적 소통. 친전 문화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많아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모든 우편물은 기본적으로 친전화돼 있다. 내 우편물을 남이 대신 뜯어보면 이건 바로 범법이 된다. 이른바 비밀침해죄에 걸린다는 것이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문제는 이런 친전이 거꾸로 법관의 양심과 독립을 해친다던가, 혹은 부정한 재산 증식 상황을 보고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상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겠지? 생각해보라. 남이 뜯어볼 수 없도록 법이 보호하는 우편물 안에, 법을 기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나. 그렇기에 친전이 갖는 음습한 이미지. 이것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소통구조의 표본으로 흐르지 않도록 친전의 격과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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