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젊은 여자 연예인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5년에 영화배우 이은주 씨, 2007년에는 가수 유니 씨와 탤런트 정다빈 씨 그리고 최근에는 탤런트 장자연 씨가 스스로 생을 끝냈다.

이런 자살 소식을 접할 때에 착잡함은 다 똑같지만, 특히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처럼 부푼 꿈을 안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어도 될 신예가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이, 따라서 다양한 연예 활동 기회가 부여되는 사람이, 그럼으로써 생활 형편이 평균 수준 이상일 법한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우울증 그 자체를 짚기에 앞서서 우울증으로 인도하는 ‘무언가’를 우선 주목해보자.

일각에서는 자살의 전염성을 강조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원인으로 꼽던데. ‘베르테르 효과’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낙담해서 결국 생을 포기하게 되지?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인양 자기연민에 빠져서 동반해 막다른 선택을 하는 현상, 이게 바로, ‘베르테르 효과’인 것이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필립스가 만든 말인데, 이런 ‘베르테르 효과’를 유발하는 매개체는 누가 뭐래도 매스컴일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인 이언 해킹이란 사람은 이걸 ‘루핑 효과(Looping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평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서 더욱 확대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실제로 최진실 씨가 자살했을 때 따라서 목숨을 끊은 몇몇 연예인들이 있었다.

문제는 연예인 자살이 다른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여파를 미친다는 점 아닌가. 실례가 있다.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씨 때 서울지역에서만 하루 평균 2.13명이 자살했다. 이은주 씨 자살 전보다 2.5배가 늘어난 것이다. 연예인의 죽음이 미치는 여파는 이처럼 매우 크다. 여담이긴 하지만, 이걸 대비해서 한국기자협회에서 2006년에 ‘자살 보도 준칙’이란 것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실천 강령까지 있는데, 소개하면 이렇다. △ 자살 보도가 자살의 전염성을 높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어떤 방법으로 자살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 △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도 함께 밝혀준다.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 우리나라 연예 시스템의 지나친 산업화 시장화를 꼽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자살한 장자연 씨의 예는 우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 장자연 씨는 왜 유서 성격의 자필서를 통해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이걸로는 궁금증만 더 커진다. 하지만 심경을 담은 글, 전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고인의 뜻을 완벽하게 헤아릴 수 없지만, 일부 공개된 자필서와 지인의 말까지 종합해보면 생전에 신인 여배우로서 당했던 고통이 컸음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 여배우만이 겪는 고통, 어떤 것이 있을까.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한 매니저는 여배우들이 겪는 고통을 3가지 정도로 분류했다. ‘몸’을 달라는 광고주의 요구, 돈을 줘야 띄워줄 수 있다는 제작사의 횡포 그리고 외로운 가정환경이 주는 심적 고통, 이런 것들로 말이다. 장자연 씨의 생전 지인은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그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시스템이라면 ‘제 2의’, 또 ‘제 3의 비극’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요인의 배경에는 우울증이 있을 것이다. 우울증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해보자. 통계를 보니까 전체 자살하는 사람의 66%가 우울증과 관계가 있고,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이상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흔히들 우울증은 약물치료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연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치료하는 약이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단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즉 약효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효과를 말한다. 심리적 위안만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분석하는 젊은 여자 연예인의 자살 이유도 궁금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인 홍강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말이 있다. “소소한 개인사까지 모두 노출되는 현실, 여러 가지 루머를 통해 얻게 되는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속병은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압박을 해소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유명인일수록 마음속의 갈등을 누구에게 털어 놓기 힘들다. 안 그런 척하고 감추고 살지만 감추는 것들이 하나하나 누적된다. 이것이 폭발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측면 외에 우울증을 가중시키는 외형적 요인은 없을까. 우울증이란 게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이라고 한다. 세로토닌은 일조량과 관계가 깊은 물질이라고들 하는데. 연예인들의 실상을 보면 어떤가. 밤과 낮이 수시로 바뀌지 않는가. 세로토닌 분비 시스템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이러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직업적 특성도 자살의 한 배경이 된다는 설명이군. CF 찍어서 돈을 벌고, 영화, 드라마 출연해서 출연료 받는다. 보통 사람은 60~70년이 걸려도 획득하지 못할 돈과 박수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획득한다. 그러나 쉽게 얻은 영예, 쉽게 잃기 마련이다. 여기서 오는 공허감,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거 살만한데 왜 죽으려고 하나” 이렇게 타박하면, 그네들의 삶을 너무 모르는 단견이 되겠지?

‘자살’을 계속 말하다 보면 결국 ‘살자’라고 하지 않나. 연예인 자살을 막을 사회적 해법, 과연 없을까. 개개인을 찾아다니며 자살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만은 만들 수 있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용인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불러 일으켜 우울증에 빠지도록 만드는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경쟁위주 사회 환경을 인간존중 사회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연예인을 상품이 아닌 인격체로서 예우하도록, 연예인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몇 주 전, 로이터통신은 인구 10만 명 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따져보니 한국이 24.8명으로 세계 최고라고 이야기했다. 국가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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