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고 장자연 씨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처음엔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들 알았다. 그런데 유서 성격의 문건이 발견됐다. ‘진실이니’ ‘조작이니’를 두고 기획사 대표와 전 매니저 사이에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문건에 고인이 접대했다는 사람의 실명이 거론되는 바람에, 소위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를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건의 유출 경로를 놓고도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그러더니 이 논쟁은 급기야, 자살 배경에 대한 온갖 억측을 빚어내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망자는 말이 없다는 점’ 아닌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논점 하나만은 선명한다. 장자연 씨가 ‘힘없는 신인 여배우’로서 그동안 기획사의 횡포에 속병을 많이 앓아왔다는 점이다. 장자연 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성 상납, 술 접대를 강요받았고, 폭행까지 당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사실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장자연 씨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인 배우에 대한 반인권적 처우, 이게 너무 보편화됐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해 방송됐던 SBS 드라마 '온 에어’를 보면, 기획사 대표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신인 여배우에게 거물급 유력 인사에게 술시중에 몸까지 내주라고 강요하는 대목이 있었다. 이게 실상이 된 셈이다. 자,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여배우들은 자존심이 없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요구에 응한단 말일까. 하지만 답을 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 신인이니까. 신인 여배우가 배역을 맡고 또 드라마 상에서 비중을 높여나가려면 제작 관계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 신인들의 운명인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기획사들, ‘우리만 뭐라 하지 말라’ 이렇게 반론을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일부 기획사 대표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노예 계약’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일까. "요즘은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 연예인이 강자인 세상이다. 강요에 의해 출연하는 경우는 없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톱스타에게만 해당한다. 어쨌든 이런 해명도 있었다. "신인을 착취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신인의 회당 출연료가 많아야 50만 원이다. 신인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수백만 원이다. 5대 5로 나눠도 절대 매니지먼트사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몰라주고 노예계약 운운하는데 아쉽다"고 밝혔다. 이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이런 추론도 가능할 것이다. “‘힘 있는 분’과의 소위 ‘특별한 만남’을 갖는다면, 스타의 꿈을 이루는 길은 한결 수월해진다. 그렇다면 이 만남을 주선한 기획사를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만 할 일인가”라는 주장으로 말이다. ‘상납을 원하고 또 조달하는 구조, 어떻게 우리들만 책임질 일인가’ 이 얘기이다. 우리 연예계의 수준이 이렇다.

부당한 계약도 논점이 되고 있다. 그렇다. 연예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영화 출연료 1500만 원 중 300만 원만 받고, 드라마 진행비와 매니저 월급, 미용실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는” 점이 말이다. 장자연 씨도 거의 이랬다. 사실 신인들은 기획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크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전속계약, 이른바 '노예 계약'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 동안 누구와 사귀지 말라’ 이런 계약 내용도 있었다고 하지? 하지만 이런 잘못된 계약을 맺었더라도 기획사에게 잘못 보이면 출연 기회를 영영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불공정 계약, 당국에서는 관리 감독하고 있을까. 그렇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자료가 있다.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 체결되는 불공정 계약을 조사한 결과인데, 연예인이 일방적으로 손실을 입는 계약을 한 경우가 총 204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충격을 주는 부분은 이 조사 대상이 어디 영세한 기획사가 아니라, 돈 잘 벌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연예기획사였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하지만 감시 감독 수준이 높아진다고 한들, 기획사도 그 수준에 맞게 편법적인 대응을 모색한다면, 말짱 헛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력으로 검증받아 대중 앞에서 인정받는 길, 막연할까. 스타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탁월한 외모와 재능을 뽐내기도 전에 사장(死藏)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소위 상납이라고 하는 것은 데뷔할 기회를 얻기 위한 목적이 크다. 사실 그 기회, 기회를 얻기 위해 진입하는 통로는 매우 좁다. 그러다보니 부당한 또 부정한 접대 같은 불합리한 관행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 상납은 접대의 종류 중에 ‘극단’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업계에서는 성 상납을 ‘비즈니스’로 부른다고 한다. 성 상납이 ‘비즈니스’라면 도대체 성 매매와 뭐가 다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겠지?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폐습이 한 반세기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연예 사업의 산업화를 최초로 구축한 나라가 미국이라서 성 상납의 역사의 원조 또한 이때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전통’이 있다 보니 성 상납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소파에서 캐스팅을 한다’라는 의미의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는 말이다. 마릴린 먼로 같은 글래머 톱스타들과 흡사하게 용모를 꾸미거나 얼굴을 성형한 신인 여배우들이 할리우드 실력자들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교태를 부리고 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배역을 따내는 모습이 연출된다 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장자연 규제’를 만들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연예산업의 부정한 공생의 고리는 너무나 뿌리 깊게 구조화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뿐 아니라 MBC 사장 출신의 민주당 최문순 의원도 ‘장자연 법’을 만들겠다고 했지? 그러나 이 역시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과 규제의 효력은 한계가 있다, 이런 얘기이다. 가장 확실한 해법은 방송 연예 종사자들의 자정 노력이다. 접대 안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배우 선발을 모종의 권한으로 오도하지 않도록 방송 연예계 종사자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물론 피해자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도 필수이다. 이런 시스템이 그동안 무엇 때문에 독버섯처럼 뿌리내렸을까. 피해자의 묵인 또는 동조 덕이다. 본인의 성공을 위해 이런 관행을 정당화해준다면, 이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결단만을 강요하기 어렵다. ‘거부하면 매장 당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마냥 외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관계 당국은 이런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구제책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성을 띄어야 할 것이다. 이런 언급으로 갈음할까 한다. "장자연 씨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라고.

(이 내용은 월~금 오전 6:35경 SBS러브FM '이승렬의 SBS전망대' 시간을 통해 라디오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SBS러브FM 주파수는 서울, 인천, 경기 일원에서 들을 수 있는 103.5MHz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