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3월 위기설이 근거 없는 낭설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사실 전년도 9월에도 위기설이 한참 유포됐었다. 환율 폭등, 주가 폭락의 여파가 있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서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그래서 ‘과장됐던 위기설이 아니었나’하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위기설이 현실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도할 일만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온 상황에서 이런 괴담 하나하나는 실물 경제에까지 여파를 미친다. 심각해지면 나라 경제에 그늘이 드리워질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정부와 사정당국은 루머의 진원지를 찾는 데 중점을 뒀다. 그리고 상징적인 인물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지목해 붙잡았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됐던 것 같다.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뒷말이 더 크게 증폭됐기 때문이다.

루머의 위험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터무니없는 루머가 낳은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2005년 8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일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수십만 명이 티그리스 강 근처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느닷없이 자살특공대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서로 먼저 현장을 빠져나가려다 수백 명이 인파에 짓밟히고 다리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자살특공대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루머 한 마디로 10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루머가 발생하는 원인,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만 믿는 안일하고 무비판적인 대중심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루머는 흔히 공동체 안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되거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전환기에 직면했을 때 가장 크게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앞날이 안 보여 생기는 불안감’이라 하겠다. 이 불안감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 편견, 불확실성, 질투심과 어우러지면 루머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런 루머를 부추기는 데에는 증권가에서 유통되는 사설 정보지들의 몫이 크다는 지적도 늘 제기돼 왔다. "가수 아무개, 돈 잘 벌자 가족들 일손 놔" "A 신문 입사시험 문제는?" "B그룹, C에서 수천억 조달에 나선 배경" 같은 재계 뒷얘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주요 통신 공기업 후임 사장 D와 E 각축"이라거나 "자주 신경질적인 모습 보이는 F 장관" "서울시장 출마했던 변호사, 9월 중 두 차례 법원 기자들과 자리 가져"처럼 사실 비슷한 것들도 없진 않다. 그러나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이다. 이 사설 정보지는 1980년대 생겨나 번성했다는 게 정설이다. 종이로 발행돼 전파되는 형식인데, 인터넷이 만개한 요즘에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정보량이 크게 느는 바람에, 종이신문은 영향력이 감쇠하고 있지? 하지만 사설 정보지만은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누가 이런 것을 만들까. 전·현직 공무원, 정보기관 관계자, 증권사 직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정보 교환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뿌리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기업화됐다. 현재 여의도를 중심으로 4~5개 업체가 성업 중이라고 하지? 가짓수만 1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엔 서로 돌려가며 봤는데 지금은 1부당 30만∼50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폐해는 엄청나다. 어느 여가수는 문란한 사생활로 병에 걸렸다는 한 줄의 내용 때문에 광고계약을 취소당했다. 한 연예인은 낳지도 않은 자식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음해하는 데 사설 정보지만큼 좋은 수단도 없다.

그렇다고 사설 정보지에서 거론된 당사자들, 대응하기로 쉽지 않다. 공식적으로 부인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거나, 위자료를 청구하는 방법이 있지만 자칫 소문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하는 게 나을까요?’라고 물어오는 당사자들에게 정신과 의사들은 ‘침묵으로 응수하기’를 먼저 권한다고 한다. 말(言)이 말(言)을 낳으므로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와호장룡’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의 인기 여배우 장쯔이는 책 ‘장쯔이 성공스토리’에서 “인기를 얻을 때마다 각종 헛소문이 나돌았지만 언제나 나 자신을 믿었다”고 털어놓았다. 평소 남에게 욕먹을 짓은 안 했다는 도덕적 자신감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엔 소문도 제풀에 지쳐 사그라지고 말더라는 얘기다.

소문내는 당사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정치적 억압과 정보 독점이 심하고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폐쇄적일수록 많이 발생하는 게 루머이다. 특히 요즘같이 사회 양극화가 심해져서 질시 받는 대상 또 질시하는 대상, 이런 식의 편 가르기 현상이 뚜렷해지면 이 루머는 ‘진실이 아니라도, 진실이기를 기원하는 마음’까지 담겨 확산의 속도와 폭이 급격하게 넓어진다. 특권층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로써 대중은 가십 속에서나마 평소에 가까이 접하기 힘든 권력자들을 끌어내리고 농단할 수 있다는 쾌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괴소문이란 정보의 공식망에서 배제된 채 유통되는, 대중의 왜곡된 욕구나 억눌린 소망덩어리다.

'루머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해법,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리스트 이야기할 때도 그랬지만, ‘세상에 은폐된 정보가 없다’는 확신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루머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경찰이 청와대 인사들의 성 접대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말 바꾸기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찰 스스로도 진실 앞에 당당하지 못한 현실이다. 이런 문제가 자주 불거지면 부작용은 매우 클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국민들은 진실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가야만 존재한다고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루머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은, 유포자 또는 전파자 색출을 가능하게 하는 공권력 집행이 아니다. 진실에 있다. 루머가 만연한 세상은 결국 진실이 힘을 얻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진실만한 권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