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 등교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최근 광역 구간이 잇달아 개통되면서 지하철을 여행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온양온천을 예로 들어볼까. (서울)시청역을 기준으로 온양온천(역)까지 가는 지하철 표 가격은 2900 원이다. 소요되는 시간도 2시간 15분이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택시나 버스는 어떠냐. 택시는 2시간 정도면 된다.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비용으로는 75,700 원이다. 압도적으로 비싸다. 버스는 어떨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여러 번 갈아탈 경우 최소 2시간 반 걸리고, 비용은 7,500원이 든다. 뭘 해도 지하철이 가장 빠르고 싸다.

여담이지만, 예전엔 정말 온양온천이 대단한 호황을 누렸다. 1970년대 ‘어린 아이도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것이다. 그때, 온천이 달린 숙박시설이 고작 8개에 불과해 공무원들은 ‘방 잡아주기’ 청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온천이 마구잡이로 개발되고 여행패턴이 해외로 확대되면서 침체기를 맞게 된다. 놀이문화가 향락에서 가족단위로 바뀌었다. 이것이 온양온천의 침몰을 부추겼다.

이런 온양온천이 지금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온양 시내에는 목욕탕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넘쳐났다고 한다. 전철이 개통된 다음, “손님이 30% 늘었다”는 업주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음식점 역시 최대 40%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심지어 문 닫았던 호두가게집이 다시 문을 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5~6년 전 유명 제빵 브랜드 점포로 바뀌었는데 몰려드는 손님 때문에 다시 간판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양온천역에 승하차하는 승객 수는 하루 평균 1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승객 70%가 65세 이상 노인이란 점이다. 이분들 무료 승차할 수 있다. 따라서 교통비가 필요 없다. 그래서 1만 원 들고 와, 5000 원은 욕탕비로, 나머지 5000 원은 식사비로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명이 있으면 암이 있기 마련이다. 울상 짓는 분들도 있다. 전철에 손님을 뺏겨버린 버스·택시업계 종사자들이다. 현지 택시들의 주수입이 천안~아산 운행이었는데, 전철이 개통된 다음, 손님이 70~80％ 줄었다는 것이다. 또 버스도 승객이 15~20％ 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온양에 사람이 몰려든다’는 얘기에 속병 나신 분들은 비단 버스 택시업계만은 아니다. 목욕탕이나 음식점과 달리 재래시장·의류점도 특수를 못 누리고 있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이다. 노인 관광객이 많은 점 때문이다.

온양만은 아닌 것 같다. 전철로 어디 가볼만한 데가 있을까. 노을이 질 때쯤 ‘낙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요즘 인천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공항역에 많이 들른다고 한다. 예전에 영종도 와서 낙조 보려면 하룻밤 자야하는 부담이 있었다. 공항철도는 해양 횡단 철도이다. 오고가는 따분함이 없다. 도착하면 거잠포 해변, 선녀바위해변은 바다와 해가 만났을 때의 절경을 짜릿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비용도 3000 원대이다.

요즘에는 중앙선 이용해서 한강변을 즐기는 분들도 있다. 지난해 말 광역전철 중앙선 5.6km가 개통되면서 이젠 용산에서 양수리까지 전철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덕소역부터는 한강의 절경이 펼쳐진다. 팔당역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찾을 수 있는데, 유적지로 꾸며놓아서 가족 단위의 방문이 많다고 한다. 인근 운봉산에 오르면 구리와 서울이 눈에 들어온다. 팔당역 다음으로 운길산역도 좋다고 한다. 이곳에 하차해 ‘남양주 영화 종합 촬영소’에 들를 수 있다고 한다. 관람시설이 아닌 강변의 호젓한 산책을 원한다면 양수역이 좋다고 한다.

앞으로 개통될 광역 전철구간 또 있다. 2011년까지 수도권에서는 총 11개 노선들이 개통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경기도 문산에서 파주와 일산 지나 성산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전철이 개통된다. 임진각 관광, 전철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 내년에는 서울에서 춘천까지 전철이 생긴다.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제는 ‘춘천 가는 전동차’라고 해야 할까? 대성리, 청평, 남이섬, 강촌을 이제는 전철로 가게 됐다. 또한 지금은 양수리까지 가는 중앙선이 원주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양평, 간현유원지 역시 전철 티켓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요즘 이런 부담 없는 단거리 여행이 크게 늘고 있는 것 같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부대비용이 적잖다. 게다가 운전하는 사람의 육체적 피로 역시 과중해진다. 하지만 지하철은 저렴한 비용에 남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산천을 눈으로 즐길 수 있어 여러 가지로 이롭다. 따라서 지하철 여행의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치열한 경쟁의 세태 속에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쉼을 갈구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벗어나 장기간 어디론가 떠날 여유를 부리기엔 사치스럽다. 갔다 왔을 때 ‘자리’가 온전히 있어줄지도 의문이다. 또 그렇게 큰 맘 먹고 여행 가방에 내용을 채운다 한들 돈이 든다. 저렴한 비용으로, 또 가벼운 일상 탈출을 위한 수단으로 지하철을 이용한 단거리 여행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전철 여행 붐을 일으킨 측면이 있다고 했는데, 거꾸로 전철 여행 붐이 경제 회복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도농복합지역, 수도권 외곽 소도시 역시 지역 경제 발전의 전기로 삼을 수 있다. 앞서 온양에서 없어졌던 호두가게가 다시 생긴다고 하지 않았나? 지역마다 특산품 또 관광 상품의 개발을 서두른다면, 이젠 서울이 아닌 고향에서도 돈 벌이의 활로가 트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수도권 전철이 닿는 곳에 한하지만, 전철이 지역 균형 발전에 긍정적인 여파를 미치지 않을까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