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하나의 공학이라면 후보 단일화는 고차방정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일화는, '1등 후보에게 뒤지는 2,3등 후보가 자기들끼리 혹은 다른 군소 후보와 더불어 전세를 뒤엎기 위한 방편으로 연합한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이 후보직을 내놓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형태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데. 이게 유권자들에게 먹힌다는 점에서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를 찾아볼까. 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단일 후보를 낸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선거, 진보 쪽의 승리로 끝났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각 지역에서 합종연횡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대선은 1987년 이후 매번 '선거연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DJ와 YS로 분열되는 바람에 노태우 후보의 어부지리 승리로 귀결됐다. 1992년 대선은 민정 민주 공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끝났다. 1997년 대선에는 선거 한 달여 앞두고 DJP연합을 성사시킨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때 한나라당은 이회창 이인제 두 후보로 분열됐다. 2002년 대선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최대 화두였다. 막판에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표가 지지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단일화로 굳어진 대세를 뒤집지는 못 했다. 단일후보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연합으로 큰 재미를 본 민주당. 2007년에는 별 소득이 없었던 것 같다.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와의 연대를 통해 신화를 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대는 불발로 그쳤고, 이미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가 이명박 후보로 단일화되다시피한 한나라당에 크게 밀렸다. 뭐 사실 '정동영 문국현 두 사람이 합친다 한들, 이길 수 있었겠느냐'하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사실 그해 여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같은 친노 성향의 후보 셋이 단일화를 시도했다. 성공했다. 하지만 단일 후보가 된 이해찬 후보는 정동영 손학규 두 사람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여담인데, 당시 여당 후보였던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이 세 사람을 두고 이명박 후보가 “9급짜리 세 명이 힘을 합친다고 1급이 되겠느냐”라고 폄하하기도 했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선거 연합을 이뤄냈다. 하지만 선거 판세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단일화 과정과 결과가 흥미롭지만, 실은 그 선거연합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부분도 관심이다. 사실 정치권의 합종연횡이나 이합집산은 선거 때만 되면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일화의 유혹은 강도가 센 만큼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원한 2인자’ JP는 DJ YS 두 사람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고 정몽준 대표는 막판에 지지철회를 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챙기고 체면을 구긴 일이 있었다. 우리 정치판에서 단일화라고 하는 것은 가치와 비전을 오랫동안 공유하며 끝내 하나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다. 전광석화와 같은 전격적인 합의로 이뤄내는 대타협의 사례가 많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진 대타협은 많은 한계점을 노출한다. 튼튼하지 않은 연대의 기반 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거래 즉 흥정을 하게 된다.

단일화가 이뤄지려면 양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전을 포기하는 식의 양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지, 자신의 정치적 앞날에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해야 하지, 무엇보다도 ‘예선 탈락자’라는 비운의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 정치적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 후보 쪽에서 화끈한 반대급부를 내밀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대급부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른바 당권 분리안이다. 대권과 당권을 분리해서 당권을 주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1987년 직선제 개헌 후에는 헌법을 고쳐 국정운영권을 나누거나, 차기 대통령 혹은 내각제총리로 밀어주겠다는 권력 분점 형태의 약속도 맺어졌다.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절차에 있어서 오점이 남아도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풍조,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일화 앞에 더 이상 정책의 동질성이나 정체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정책과 비전은 ‘우리는 하나’라는 조작된 이미지 뒤로 숨는다. 유권자를 마비시키는 이벤트요, 정치쇼만 남는다는 지적이다. 사실 정치적 거래에 그치는 단일화에는 우리 정치의 역한 폐습이 녹아있다. ‘영남 또는 호남 한 군데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니 충청도와 손잡아야 한다’는 따위의 지역주의, ‘보수 또는 진보 단독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니 서로 손잡아야 한다’는 식의 몰 이념성의 구태도 거침없이 유입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서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며 비난한다. 그리고 갈라선다. 그런 다음, 과거의 적과도 연대하는 강수를 둔다. 국민들은 혼란스럽게 된다. 그리고 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

이런 부정적 선거연합의 폐습은 어디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드러내놓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치인들은 ‘공급자는 수요자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라며 유권자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유권자 탓만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사실 어디라고 안 그러겠냐만 우리 정치는 승자 독식구조이다. 1등만 있을 뿐이지, 2등부터 꼴등까지는 똑같은 패배자이다. 권력을 쥐고 안 쥐고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여와 야, 의원직 신분과 아닌 신분의 차이는 매우 크다는 얘기이다. 그러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승리에 혈안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지지층을 나눠 갖는 후보들끼리 ‘반드시 승리하는 방책’으로 단일화를 꿈꾸게 된다. 유권자들도 ‘한 번 이겨보겠다는 건데’라며 더 이상 문제 삼기를 꺼려한다. 그러다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고 갈라진다면 이에 실망해 투표참여를 포기하기도 한다. ‘투표해 뭐하나, 결국 딴 후보가 될 텐데’하는 심리가 강한 것이다.

사표도 즉 당선자를 찍지 않은 표도 우대받을 수 있는 현실, 2등과 3등 성적도 평가받을 수 있는 현실로 가야할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단일화의 폐단을 방지할 대안으로 결선투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의를 수렴하는 길, 너무나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