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으로, 요 며칠 새 벼락 스타가 된 여성이 있다. 수잔 보일이란 사람인데. 남루한 차림의 이 40대 여성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수잔 보일은 지난 11일 영국의 민영방송인 ITV의 인기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촌스러운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47살까지 남자와 키스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순박함을 지닌 여성이었다. 무대에 선 경험? 그날 그 자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잔 보일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 첫 소절을 소화하던 순간, 무대는, 또 객석은 뒤집어졌다. 깜짝 놀랄 만한 미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은 1000만 명 정도가 본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1주일 사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수잔 보일의 모습을 본 이들은 족히 2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여성을 ‘제 2의 폴포츠’로 부르던데. 폴포츠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2007년 6월 9일, 이날은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첫 방송이 있었던 날이었다. 37세의 휴대전화 세일즈맨 폴포츠는 이날 출연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연출진에겐 고민이 있었다. 첫 방송인데, 빈약한 외모와 자신감 없는 표정을 지닌 이 폴포츠가 내심 걱정됐던 것이다. 왕따, 불행한 교통사고와 종양으로 몸과 정신이 고단한 점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변수였다. 벌써부터 심사위원들의 얼굴엔 냉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우려는 곧 환호로 바뀌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폴포츠가 훌륭하게 소화하자 장중은 경악과 환호로 들끓었다.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자비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폴포츠의 이름은 전 세계인에게 인간 승리의 대명사가 됐다. 승리의 대가(代價), 명성 얻는 것만이 아니다. 우승자는 십만 파운드의 상금과 함께 영국 왕실 가족들 앞에 공연하는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 나갈 기회를 갖게 된다. 폴포츠가 당시 불렀던 노래, 안 들을 수 없다.

폴포츠, 수잔 보일만 있는 게 아니다. 7살 어린이 코니 탤벗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최종 결승에서 폴포츠에게 밀려 3위를 차지했지만, 탤벗은 그 뒤,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세계적으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은 스타가 된다. 한편 2008년 2회 대회에서는 14세 오페라 소년 앤드류 존스턴이 3위를 차지하며 데뷔했다. 이 존스턴에게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이혼한 다음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았던 우울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존스턴은 교회 찬양대에서 노래를 하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또래들의 놀림을 받고 왕따가 된 아픔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소년에게, 대중은 ‘꼬마 폴포츠’라는 별명을 붙어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 토요일에 발송되는 SBS 텔레비전 ‘스타킹’이 그렇다. 방금 이야기했던 탤벗이 지난 해 5월과 올 1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절대음감으로 피아노를 치는 천재 피아니스트 예은 양과 협연을 했다. 예은 양은 ‘스타킹’이 배출한 스타이다. 천상의 목소리와 천재 피아니스트가 환상의 합동 무대를 선사해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와 ‘스타킹’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밖에 한 번도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열정적인 노력을 통해 놀라운 노래 솜씨를 선보였던 시골 며느리 장은주 씨와 수족관 기사 김태희 씨, 96세 고령의 어머니를 위해 탭댄스를 춘 70대 삼남매, 이들이 또한 ‘스타킹’을 빛냈던 간판스타들이었다.

이런 걸 보면, 스타성은 있지만 등용문이 없어 무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무명을 유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등용문이 과거에는 꽤 있었다. 경연대회, 콘테스트, 가요제, 콩쿠르. 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힘을 잃거나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되면서부터이었다. 스스로 연습해 대회에 도전하던 예비 스타들이 기획사에 문을 두드리고, 기획사는 이 지망생들을 일부 선발해서 장기간 훈련한다. 그런 다음, 시장에 내놓는다. 기획사의 스타 발굴 시스템은 실력 외적인 것들, 이를테면, 외모, 부모의 뒷받침 같은 여러 부분도 따진다. 모든 지망생들이 공평한 기회를 얻기 힘든 구조란 이야기이다. 사실 폴포츠나 수잔 보일이라면 이런 시스템 속에서 감히 스타를 꿈꿀 수 있었겠나. 따라서 가공된, 선택된 신인들만 무대에 서게 된다. 대중은 금방 식상해버린다. 그러니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투박한, 그러나 신선한 신인을 우리 사회는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폴포츠와 수잔 보일은 이런 대중의 목마름을 일부 해소해 준 진정한 스타가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