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적을 만나보자. 소말리아 앞바다와 인도양을 누비며 선박 사냥을 벌이는 이들. 다국적 함정이 감시하고 있다지만, 이들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남의 나라 배를 약탈하는 해적들 말인가. 소형 쾌속정과 로켓추진수류탄, 아카보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이다. 배의 규모를 묻지도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나포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330m짜리 초대형 유조선까지 손에 넣었다. 이들은 누가 공격해오더라도 밀리지 않는다. 한 번은, 인도 해군의 프리깃함이 다가와서 검문하려고 하니까 총과 수류탄발사기로 응사하는 대담함도 나타냈다. 상대가 군인데 말지. 해적활동을 감시하는 ‘국제해사국’ 통계를 보니까, 1993년부터 2003년까지 해적공격은 3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데나 해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주로 장사되는 곳을 주 무대로 삼고 있다. 여기가 전 세계 화물수송의 4분의 1 이상이 몰리는 말라카해협과 인도네시아해역은 최고의 ‘상권’으로 꼽힌다고 한다.

며칠 전에 미군이 자기 나라 선장을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사살하며 석방 작전을 벌였다. 결국 구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게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미군의 석방 작전 이후에 미국적의 배에 대한 전 방위적인 공격을 가하고, 더 가혹한 납치로 보복에 나섰다. 미국 정부, 여기에 굴할 리 없겠지? 소말리아 해적들의 지상 근거지에 대한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의 이런 응징 의지에는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왜냐. 1992년 소말리아 기아사태를 지원하겠다며 미군이 유엔평화유지군 자격으로 개입했다가 내전에 휘말리지 않았나? 1993년 모가디슈의 군벌을 체포하려다가 그 유명한 블랙호크 헬기 추락 사건을 겪게 된다. 13명의 미군 장병이 사망하고 그들의 시신이 마구 훼손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노출됐을 때, 미국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해적의 역사가 꽤 오래됐다. 해적을 다룬 문헌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작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이다. 여기서 해적은 어떻게 등장하느냐.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해적을 소탕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해적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디세우스를 죽인 사람은 해적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굉장히 긴 내용의 소설이지만, 해적이 언급된 부분만 간추리면 이렇다는 것이다.) 해적은 성매매 못지않게 가장 오래된 직종으로 분류된다. 8세기에서 10세기에는 노르만족 즉 바이킹이 북유럽 바다를 휩쓸었고, 12세기에는 슬라브 해적이 발트해를 장악했다. 그러나 해적은 이미 기원전부터 기승을 부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도 해적을 일컬어 ‘모든 배를 강탈하는 왕’이라고 소개한 대목이 있다.

국가 권력과 결탁한 일도 있었다. 해적은 때로는 국가나 지방권력과 공생했다. 16세기, 신대륙과 식민지 패권을 다투던 영국과 스페인이 한판 붙었을 때 일이다. 1588년 영국 해군이 34척의 전함으로 130척의 스페인 무적함대 가운데 80척을 침몰시키며 승리했다. 이때 승리의 원동력은 영국 해적들이었다. 배와 대포를 개량했던 영국 해적들은 스페인 보물선들을 약탈했다. 정규군과 해적의 연합작전이라고 할까? 스페인 해군이 대포 한 발 쏠 때 영국 해군은 다섯 발을 쐈던 것이다. 스페인 배는 크고 무거웠지만 영국 배는 유선형으로 날렵했다. 장사 하루 이틀 한 게 아닌 해적들의 역동성이 빛나는 대목이다. 한편 이 해전에 나섰던 해적 두 사람은 팔자에도 없었을 기사 작위를 받았다.

요새 해적들은 인질을 두고 몸값 협상을 벌이지 않았나. 현대에 이르러 몸값을 노린 납치는 이미 ‘산업’으로 불릴 만큼 성장일로다. 영국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센터는 지난 2000년 세계적으로 매년 1만 건 이상 납치사건이 벌어진다는 보고서를 냈다. 건네지는 몸값도 연 5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해적들의 수입은 한 1/5된다. 작년 한 해 인질 몸값으로 벌어들인 돈은 총 1억2000만 달러 그러니까 약 1500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종종 우리 배가 나포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선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거액의 몸값이 지불되고 있다. 몸값의 규모는 얼마일까. 정부와 해적 사이의 몸값 협상은 대개 비밀에 부쳐진다. 정부로선 테러세력과 거래를 했다는 비판이 부담스럽고 무장단체도 정치적 명분이 크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적들도 저마다 이런 약탈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해적들은 "우리 수산자원을 훔쳐가는 것에 대한 정당한 세금"이라며 약탈을 정당화하고 있다. 최근 ‘소말리아 어민들이 왜 해적으로 돌변했는지’를 다룬 <타임>지 기사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내전이 끝난 다음, 소말리아 해군은 바다 경비를 손 놓았다. 참치와 정어리, 고등어, 바닷가재가 풍부했던 앞바다에는 외국 어선들이 와서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말리아 어민들, 자체 경비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대 어선을 공격했다. 이게 바로 소말리아 어민이 해적이 된 사연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은 ‘금전적 이익을 챙겨 재미를 봤다’는 실리에 비할 바 못 된다. 지난해에도 110여 차례나 해적의 공격이 있었고 배 40여 척이 해적에게 나포됐다. 그래서 20년 가까운 내전으로 피폐한 소말리아에선 몇 안 되는 호황 업종이다. 소말리아에서는 유력 기업인들이 해적 자금을 대주고, 항구나 연안이 해적산업의 근거지가 됐다. 그러다 보니 호화 별장에 고급 외제차를 굴리는 해적은 젊은 여성이 신랑감으로 첫 손에 꼽는 선망 직업이 됐다고 한다. 1970년대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신랑감하면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김 상사’였는데 소말리아에서는 ‘바다에서 돌아온 새카만 해적’이 되겠다.

해적을 없애기 위한 방책은 없을까. 현역 해적들을 하나하나 모두 소탕하면 좋겠지만, 거 사람을 없앤다고 해서 그 빈자리가 영원히 결원될까? 보다 강한 생존력과 공격력을 겸비한 또 다른 신예 강호 해적들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결국 해법을 구조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세계적인 부의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소말리아, 참 못 사는 나라이다. 그러다보니 강한 나라, 가진 나라로부터 뜯어내려 하는 것이다. 원조에 의존하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균형 발전의 청사진이 그려져야 하는 것이다. 자본과 무기가 있는 이들이 (균등하게 돌아가야 할) 부를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라는 석학이 쓴 ‘해적과 제왕'이라는 책에 이 대목이 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붙잡힌 한 해적, 이렇게 항변한다. "난 그저 작은 배 한 척으로 그 짓을 하기 때문에 도둑놈 소릴 듣고, 당신은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그 짓을 하기 때문에 제왕이라고 불리는 것뿐이외다." 너나 나나 똑같다 이런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