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년해로도 축복이다 ⓒ 비씨카드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이혼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같이 산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 이혼. 이건 남편의 정년퇴직이나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주로 아내의 요구에 의해 부부가 갈라서는 노년기 이혼을 말한다. 지난해 26,900 건으로 1년 전보다 1,900 건 늘어난 수치이다.

일본에 나리타공항이 있다. 이곳은 ‘황혼 이혼의 전당’으로 통한다. 어째서 그러냐. 막내자녀의 결혼식을 마친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자녀 부부를 환송하기 위해 이 공항에 나간다. 그리고 환송한다. 그 다음, 노부부는 그 자리에서 남남이 된다. 각자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다. 1990년 이래 ‘황혼 이혼’을 하나의 현상으로써 부각시킨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싫으면 바로 헤어질 일이지, 왜 기다렸다가 이혼할까. 사실 여성들도 같은 고민이다. 생각 같아선 당장 짐 싸고 싶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한 통계에 의하면 ‘자녀 때문에 정말 참고 산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등 돌리고 싶다’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74.6%였다고 한다. 또 이런 통계도 눈 여겨 보게 된다. 황혼이혼의 70%가 여성의 요구에 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성들이 남편이 모르는 새 아내의 가슴에 미운 정이 아닌 미움이 자란다는 걸 의미한다. 남자들, 사실 아내가 이런 독한 마음 가질지 잘 모른다.

황혼 이혼의 역사, 꽤 깊다. 황혼이혼의 수가 크게 늘어난 점은 아무래도 재산분할청구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였다. 헤어져도 남편의 퇴직금을 위자료로 받을 수 있으니 새 출발을 위한 경제적 여건은 마련되는 셈이다. 이런 게 없었을 때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나이 들어 이사할 때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고 트럭에 먼저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버림받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배경이 무엇일까.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건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데, 퇴직연령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 이야기하면, 퇴직 후에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기 때문이란 것이다. 따라서 같이 오래 있다 보니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그래서 결국 이혼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경기침체로 은퇴시기가 오히려 앞당겨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나리타공항을 ‘황혼 이혼 전문 공항’이라고 했다. ‘이혼 도시’도 있다. 미국 네바다 주의 리노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기는 ‘이혼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왜냐. 이 도시는 너무나 이혼이 간단하다.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이 도시에서 40일 정도만 거주하면 아주 간단하게 이혼을 허가해준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허락해주지 않아 협의이혼이 안 되는 여성들, 여기로 다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도시의 호텔, 모텔, 하숙집은 1년 365일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세계 경제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대에도 파리 날릴 새가 없었다고 하고.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혼녀들의 이혼 의식이다. 코스가 있다. 이혼이 확정되면 법원건물의 하얀 돌기둥에 립스틱 자국을 기념으로 남긴다. ‘GOOD BYE (그리고 남편 이름)’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에 있는 다리에 올라가 결혼반지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이 다리의 이름은 ‘한숨의 다리’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이혼이 참 쉽기 때문에, 이 도시는 과거만한 특수(特需)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혼에도 종류가 많다. 협의이혼, 조정이혼, 소송이혼 이런 게 있다. 부부가 합의에 의해 갈라서는 게 협의이혼이고, 판사나 조정위원이 적절한 이혼조건을 중재하면 조정이혼이다. 삼성 이재용 전무가 이경우이다. 하지만 이도저도 안 돼 재판으로 결판내면 소송이혼이 된다.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위장이혼도 있다. 빚 문제나 세금 회피를 위해 법적으로만 부부관계를 끝내는 척하는 것이다. 이건 어떤 방식이냐. 재산 많은 부부들이 많이 써먹는 거다. 1가구 2주택 부부가 있었다. 이때 부부가 집을 한 채씩 나눠 가진다. 그리고 이혼한다. 그리고 이혼상태에서 집 한 채를 팔아버린다. 그리고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러면 양도세를 안 내도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과세 기준이 크게 완화되면서, 앞으로 이런 이유로 이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최근 11년 새 이혼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이혼을 많이 하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한국의 이혼율, 그러니까 결혼 대비 이혼 건수는 47.4%로, 2007년 OECD 국가 중 3위다. 여전히 높다. 미국 51%, 스웨덴 48%에 이어서 세계 3위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외도와 폭력, 고부갈등이 이혼의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요즘은 경제 문제와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성 쪽 불륜으로 인한 이혼도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다. 정말 사로 맞지 않는다면, 같이 사는 것이 서로에게 불행이라면 이혼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혼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것, 이것이 대세라면!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 자녀의 상처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뒀으면 한다. 그래서일까. 자녀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부모로서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는, 황혼 이혼 부부들의 배려만은 하나의 귀감으로 다가오는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