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로 통했던 인물 워런 버핏이, 요즘 젊은이들 말로 ‘굴욕’의 연속이다. 1분기에 150억 달러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18조가 넘는다. 강타자들이 슬럼프에 빠져 연달아 헛스윙 하는 모양새이다. 미국의 한 수석 투자전략가는 “워런 버핏도 완벽하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워런 버핏을 졸졸 쫓아다니며 투자했던 사람들에겐 결코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 워런 버핏

워런 버핏의 안목, 이제 흐려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주식 시장은 누구도 통찰할 수 없을 만큼 극도의 불확실성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겠지? 어쨌든 아직 결론 내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우선 지금까지 척척 맞춰온 워런 버핏의 투자 안목에 대해 짚어보자. 사실 워런 버핏 말고도 조지 소로스, 존 템플턴같이 증권시장을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큰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버핏만큼 오랫동안 성공 신화를 유지하고, 또 그만큼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은 없다. 버핏의 성공 비결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누구도 워런 버핏을 ‘투기꾼’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무슨 얘기냐. 자기가 잘 아는 기업의 주식만 사고, 그 주식을 5년이건 10년이건 장기 보유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왔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투자자일 지언정 투기꾼이 아닌 워런 버핏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힘인 것 같다. 버핏의 투자는 11살 때부터 시작됐다. ‘시티서비스’라는 회사의 주식 3주를 한 주당 38달러씩에 사들였다. 이후 주가가 2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40달러로 회복되자 곧바로 되팔아 이익을 조금 남겼다. 그런데 이 회사 주식이 나중에 200달러까지 치솟았다. 팔 때 가격보다 5배 올랐다. 소년 워런 버핏은 그때 무릎을 쳤을 것이다. ‘좀만 더 기다릴 걸’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어린 나이에 장기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워런 버핏은 코카콜라, 질레트같이 탄탄한 기업의 주식에 장기 투자를 해서 투자 원금을 3000배 넘게 불렸다. 덕분에 40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재산가가 됐다. 그러다가 워런 버핏에게 ‘솔로몬의 선택’같은 고민을 안겨준 사안이 생겼다. 이른바 IT붐이다. ‘닷컴 열풍’으로도 불린 바람 아닌 바람이었다. 사실 1990년대 말,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업에 환상을 가졌다. 그래서 너도나도 투자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 별 거 없으면서 ‘닷컴’, ‘벤처’, ‘IT' 이런 말만 상호에 붙으면 앉아서 그야말로 ‘눈감고 투자’를 했다. 그러다보니, 주주들, 투자금이 밀려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사람들은 그때 워런 버핏에게 물었다. “살까요, 말까요”라고.

투자를 결국 안 했다. 투자 원칙 상, 그런 거 안 한다며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워런 버핏도 한 물 갔다” “IT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저러는 거다” 이런 얘기를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IT붐은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그 거품이 빠지면서 워런 버핏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이뿐 아니다. 워런 버핏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를 10년 전에 예견함으로써 최근까지 명성을 얻었다. 10년 전부터 “파생금융상품은 대량살상무기”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 제조업 같은 실물경제의 동력이 되는 산업이 아닌 곳에 투자할 경우 큰 패착에 직면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이야기해, 파생금융상품은 ‘돈 놓고 돈 먹는 식’의 투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여기에 투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이야기이다. 막연한 예측이 아니었다. 본인의 체험을 토대로 한 경고였다. 예전 워런 버핏이 한 재보험회사를 인수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재보험이란 건, 보험계약상의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보험자에게 인수(引受)시키는 보험을 말한다.) 이 회사가 워낙 주가가 좋아 샀는데, 수십 억 달러를 횡재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따지고 보니 4억900만 달러 손실이 났다. 파생 상품의 거품을 정리하다보니 큰 낭패를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워런 버핏은 이런 파생 상품에는 앞으로 손도 대지 않는 게 낫다고 다짐했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공언했다. 그러나 이 말에 귀 기울인 미국인들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미국은 지난해와 올해 엄청난 뒷감당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선견지명이 있는 워런 버핏이 왜 큰 손실을 입었을까. 이런 때일수록 고수익율을 나타내야 옳은 것 아닌가. 여기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 원인은 본인이 그토록 조롱하고 경계했던 ‘파생상품’ 때문이라는 점이니 말이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워런 버핏은,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채권, 이걸 잘만 굴리면 돈 좀 벌겠다 싶어서, 파생상품 거래를 늘렸다. 그랬다가 큰 손실을 입은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회사, 버크셔가 보유 중인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673억 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손실 규모가 25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현지 언론은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파생상품 투자손실이 갈수록 더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버크셔가 투자한 상당수의 파생상품은 만기가 2019년 9월부터 2028년 1월까지 걸쳐 있으며 거래조건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자기가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자기가 해놓고, 자기가 낭패를 본 꼴이다. 그만큼 파생상품, 즉 돈 넣고 돈 먹기는 투자자들에게 큰 유혹거리인 것 같다. 돈을 쉽게 벌수도 없겠지만, 벌어도 금방 탕진된다는 현실,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고 워런 버핏의 명성이 완전히 옛말이 됐다고 단언할 수 없다. 왜냐면, 워런 버핏의 수익률은 낮아졌긴 해도 어쨌든 플러스였다. 하지만 지난해 뉴욕증시의 평균 수익률이 -37%였다. 그가 재기할까. 이 사건을 변곡점으로 해서 더 크게 추락할까. 글쎄. 이건 시간이 말할 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