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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보다 낭만 발견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워야

[내가 바라는 목회자 부인 ③] 에트랑제의 연인처럼

2008년 03월 07일 (금) 10:56:47

김태복 목사

hipc6012@cry.or.kr

어느 인생 치고 나그네 아닌 자 그 누구랴마는 그러나 목회자처럼 나그네의 생(生)을 가진 이들도 드물 것이다. 김관호 목사는 그가 수고하던 마지막 강단을 떠나면서 우리 목회자의 마음을 아픔으로 저미게 하는 시(詩)를 남기고 있다.

‘새벽엔 눈 쌓인 언덕을 넘기도 했다.
한강의 얼음을 건너는 밤도 있었다.
진눈깨비 흙탕길은 울고만 싶었다.
비오면 오물 넘치는 길도 헤쳐 다녔다.
어디서나 초창엔 길도 차고 다 없었는데 떠나고 나면 길이 나고 차가 다녔다.
이래저래 20년,
이제는 백발이 왔다.
약해진 몸과 맘,
로렘 수하(樹下)로 나가는 거다.
나 설 자리로 가야하는 거다.’

목회자는 나그네다. ‘에트랑제’ 이다.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는 생을 살아야 한다. 나그네는 늦겨울의 우울한 비애가 서서히 안개처럼 걷히고 봄의 날갯짓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기 시작하는 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어느 도시의 낡은 역을 내리어 도시 변두리의 한 하숙집에 트렁크를 풀고, 그 도시 사람들과 친해가고 도시의 분위기에 익숙하도록 노력하며 거래를 시작하듯이,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이 도시에 정착하여 깊이 생활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애착이 솟구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언제인가 떠날 수밖에 없다는 어떤 숙명감(宿命感) 같은 유랑벽에 시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남편과 아이들이 어느 날, 큰 꿈에 부풀어 어느 도시 중심가 언덕에 서 있는 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열차에 내려 역 ‘플랫 홈’에 내려서 그 도시를 보았을 때, 이 아담한 도시에 오랜 동안 정착하고 싶은 바람을 하늘에 기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의 낡은 목사관에서, 대부분이 책인 이삿짐을 풀고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한 교우들의 방문에 답하며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깊어 갈수록, 당신들이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전 교회의 그 어둡고 아프게 하던 일들이 새로 부임한 교회 안에서도 부각되기 시작 할 때, 그리고 새 목회자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 관계가 둔화되고 열심들이 식어진 채 옛날의 타성으로 돌아가는 교우들의 모습을 볼 때 당신들의 가족들은 어느 날엔가 떠날 수밖에 없다는 아픔을 느끼고는 했을 것이다 .

(1) 나그네의 연인처럼

어느 목회자는 한 교회에서 20-30년의 장기 목회를 하는 행복한 경우도 있으나, 어느 목회자는 목회 생활 30년 동안에 35 개척 교회를 옮겨 다닌 비극적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하튼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3년 내지 6년을 주기(週期)로 해서 떠나야 한다는 어떤 절망 섞인 충동에 시달린다. 부임하던 첫해는 흔히 목회에 대한 꿈에 가득 차게 되고, 두 번째 해는 목회의 기초를 쌓아가기 시작하고, 삼년 째는 혼신(渾身)의 힘을 모와 목회에 전념한다면, 그 다음에는 사력(死力)을 다한 후에 오는 피로 탓인가? 로뎀나무 아래에 있던 엘리야처럼 절망이 그의 모든 것 위에 이슬처럼 젖어드는 것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목회자들은 아브라함의 부부처럼 주님의 명령을 따라 하란을 출발하여 오늘은 이 언덕에서, 내일은 저 계곡에서 장막을 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그와 함께 목회의 긴 여로(旅路)를 떠나고 있는 당신은 차라리 연인의 저 낭만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연인들은 모든 새 환경을 오히려 즐길지언정 결코 불만을 토하지 않는다. 숲속의 풍요와 높은 산정 위에서는 상쾌함과 바닷가 모래벌판의 시정(詩情)을 즐기고 있으며, 낡은 전축의 가요처럼 낯선 도시가 주는 이질감(異質感)에 어떤 새로운 맛을 느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짐승의 거친 소리라도 들릴 듯싶은 어득한 계곡에 텐트를 치고 램프를 밝히고 하모니가라도 불고 싶은 낭만에 젖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가 이러한 때에 생활의 잡동사니를 수없이 조잘거리는 연인을 반려자(伴侶者)로 대할 것인가? 당신들이 어느 때는 조용한 농촌의 골짜기에서 목회의 장막을 칠 때 도시의 편리성에 비해 너무나 비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하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차라리 저 숲의 풍요함과 골안개 피어오르는 계곡의 신비성, 여름 밤 하늘 위에 찬연히 빛나는 무수한 별들의 합창에 탄성을 발하는 여인이 된다면 당신의 남편의 목회는 얼마나 풍부해질 것이며, 그 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우러나 모든 양떼는 살진 꼴을 섭취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어제의 화려했던 목사관을 아쉬워하며, 오늘 부임한 교회의 낡은 목사관에 대해서나 교인들의 비정(非情)이나 낯선 지역의 거친 환경에 대해 느끼는 대로 불평의 소리를 시작할 때, 남편은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더해질 때마다 그 도시에 대한 애정과 교회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고 의욕이 식어지는 비극을 만날 것이다. 그 결과 당신들의 그곳에서의 목회는 낭만이 사라지고 우울한 날들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다. 마침내 양떼들은 우울한 분위기에 견디지 못해 당신들에게 반발할지 모르며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할지 모른다.

(2) 모든 이에게 따듯한 미소를

당신은 어느 환경, 어느 시간에 있더라도 거기에서 여행하는 자의 낭만을 찾아내어 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여행자는 낯선 도시의 역에 내리는 순간 그 도시의 특이성을 재빨리 찾아내는 촉각을 지니게 되고 그곳 읍민과 곧 친숙해지고, 읍민으로 하여금 극진한 대우까지 하도록 만드는 기술을 몸에 익힌다. 또한 그 도시에 머무는 동안 그 도시에 장기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욕망 때문에 그의 마음에 보석처럼 지닌 여행자의 낭만에 결코 상처를 내지는 않으며, 그 욕망 때문에 읍민들과 다투지 않으며 그들의 땅이나 소유를 탐내지는 않는다.

만약 그러한 검은 음모가 노출될 때 읍민들은 당신들을 향해 적의(敵意)를 드러낼 것이며, 성급한 주민들은 당신들을 추방하려고 혈기를 부릴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자의 낭만을 배운 이들은 그 도시에 얼마의 기간을 우거하더라도 결코 여행하는 목적 이상의 탐욕을 부리지 않고 언제나 모든 읍민들에게 따듯한 미소를 선물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진정 그러한 자세로 나그네 길을 거룩히 간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많은 내분이 있었을 때, 무욕(無慾)적인 자세로 과감히 분가했고, 언제나 나그네에게 따듯한 대접을 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그와 함께 어떤 낯선 도시이든, 골짜기이든, 셋방 교회이든, 목회를 시작할 때 늘 명심할 것은 이 여행자의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시에 오래 머물겠다는, 그래서 생활의 뿌리를 깊이 내리어 더 이상 정처 없이 떠다니는 나그네의 저 부허감(浮虛感) 으로 괴롬당하지 않겠다는 허욕을 부리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마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양떼들에게 욕심의 악취를 풍기었던가? 그러한 마음은 때로 큰 오해까지 가지게 하여 교인들이 자기들을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노파심을 자주 가지게 될 것이며 또 자기가 세운 공과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슬픈 모습도 보여줄지 모른다.

“내가 세운 교회인데 너희가 무엇이냐?” “내가 이렇게 부흥시키었는데.” 그러한 말을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목회의 선배들의 저 신선한 여행자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곧잘 우리에게 충고해 주곤 했다. “목회자는 늘 이삿짐을 싸놓고 목회를 해야 한다”라고. 그 말은 유리하면 머물고 불리하면 도망치라는 충고가 아니다. 그런 고백은, 세상 것에 대한 초연한 자세나 신선한 여행자의 자세를 가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러한 경건미까지 풍기는 초연하고 신선한 자세를 교우들이 당신들에게서 발견할 때, 오히려 모든 교우들은 당신들을 할 수 있는 한까지 오랫동안 모시고 싶은 존경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

(3) 순례자의 노래를

목회자는 나그네로되 단순히 방랑벽을 지닌 나그네가 아니다. 순간을 즐기려는 나그네가 아니다. 목적이 뚜렷한 이인 것이다. 그래서 순례자(巡禮者)인 것이다. 모세는 그의 양떼들과 푸른 초원을 만나든지 뜨거운 열사(熱妙)위에 머물든지, 맑은 시냇가에 장막을 치든지 결코 그 장소의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능력을 의지하며 저 복지(福地)를 향해 전진해 갔으며, 바울도 다메섹이든, 안디옥이든, 루스드라이든, 아덴이든, 어느 장소, 어느 시간, 어느 환경에 처하든지 구애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명하는 목적에 전심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때로 만나는 뜨거운 인정이나 차가운 박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날마다 순례자의 길을 향해 떠나고 머물고는 했던 것이다. 그러한 험난한 세월 속에서 그가 무엇을 깊이 터득했는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어찌하여 바울 사도인들 순종과 인정이 깊은 빌립보 교회이든, 푸른 바다가 보이는 에베소 교회에 오랫동안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주님이 명하시기에 병든 몸을 이끌고 주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따라 떠나 어떤 낯선 도시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목회자의 반려자이다. 여행자의 연인이다. 당신이 그와 함께 긴 목회의 여행을 떠날 때, 열차 차장에 스치는 모든 것, 머무는 곳에 모든 환경에서 불평을 발견하기 보다는 오히려 낭만을 발견할 줄 아는 비결을 배우라. 그 비결은 어느 환경에서든 주님이 보내신 곳이란 확신이 설 때, 그곳에 깊이 정착하려고 뿌리를 내리려는 허욕을 부리기보다 그 도시와 골짜기에 대한 주님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그 기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아니면 일생동안이든 머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