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세브란스병원 존엄사 논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예정돼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병원이 말기 암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이다. 이러는 이유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전에 사실상 존엄사 허용을 촉구하려는 의지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1998년 9월의 일이다. 미국의 잭 케보키언 박사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한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숨지게 했다. 몰래 해도 논란이 될 텐데. 케보키언 박사는 이 과정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미국 CBS방송에 보내 방영하게 했다. 어떻게 됐겠나. 이듬해 ‘2급 살인죄’로 10에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확신범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케보키언 박사는 이미 1990년부터 불치병 환자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자살 장치’를 개발해, 약 130명을 자살로 이끌어 수시로 기소됐다. 그리고 2년 전 79세의 나이로 가석방됐다. 이 사람은 존엄사 논쟁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다.

‘존엄사’라는 표현은 최근에 나왔다. 그 이전엔 이런 것들이 ‘안락사’로 불렸다. ‘안락사’에는 ‘직접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직접적 안락사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에서라도 환자를 곧바로 죽음으로 이끄는 적극적 행위를 말한다. 이것을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미국 오리건 주뿐이다. 반면에 소극적 안락사는 ‘적극성’을 뺀 것이다. 진통을 가라앉히는 약물이지? 모르핀의 양을 치사량에 이르도록 주입해 놓고는 실수인 척 하는 것. 그러니까 법의 테두리 밖으로 안 나가는 척 하며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소극적 안락사에는 또 이런 것도 있다. 아무런 희망 없이 고통만 장기화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맞이하는 죽음, 이런 걸 통칭해 ‘존엄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뇌사는 죽은 거냐, 산거냐 논란이 많다. 죽음을 판정할 수 있는 기준. 의학계에서는 어떻게 세워두고 있나. 죽음의 의학적 판정 기준으로는 ‘심폐사’와 ‘뇌사’가 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 죽음은 호흡과 심장박동, 뇌활동이 모두 정지된 심폐사로 정의됐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심폐소생 장치가 나왔다. 이러다보니 숨은 쉬는데 정신은 돌아오지 않는 상태의 환자가 크게 늘었다. 이걸 뇌가 죽은 상태라 해서 뇌사라고 한다. 뇌의 모든 기능이 멈춘 뇌사 상태에서도 심장을 계속 뛰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죽음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게다가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뇌사에서 심폐사에 이르는 그러니까 완전한 죽음에 이르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따라서 의식은 없지만 호흡을 하기에 영양만 공급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일까. 식물인간 상태도 죽음으로 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계에서는 생명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면서 생명 단축을 금기시한다. 이 주장은 최근까지도 힘을 얻어왔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어떤가. 회생 가능성이 아주 없는 환자, 살아서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인 그러면서 치료로써 회복할 가능성이 아주 없는 환자, 그래서 편안히 영면하고 싶다는 환자. 이런 환자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까지 이런 잣대를 엄격하게 대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결국 본인이 원하는 바대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최초로 인류 앞에 던진 사건이 있었다. 1976년, 미국 뉴저지 주에 살고 있던 21세의 카렌 앤 퀸란은 친구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해 술을 마신 후 정신안정제를 복용했다가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카렌의 아버지는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다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뉴저지 주 대법원은 “딸에게 보장된 헌법상의 사생활 권리는 치료거부권도 포함되어 있으며 아버지가 그 대리인”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훗날 Natural Death Act. 그러니까 자연사법의 입법을 가능하게 했던 동인(動因)이었다.

우리 국민은 존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005년에 나온 여론조사를 보니 소극적 안락사 찬성이 69%에 이르렀다. 의식불명이 될 경우에 대비해 환자가 미리 치료거부 의사를 밝혀두면 그 뜻을 존중해주는 ‘존엄사’도 71%나 찬성했다. 우리나라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2004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 기억하시나. 환자 아내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떼 준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환자의 아내는 살인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의료계는 “현실과 관례를 무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법원은 일반의 시각보다 좀 더 보수적인 것 같다.

최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거부해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7월에 입원한 뒤에, 올 초에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과 패혈증이 악화됐다. 하지만 생명연장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조용히 영면했다. 고인이 그걸 원했단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보다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실천 하나가 사회적으로 큰 울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