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씨가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2개국을 방문하면서 했던 발언들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황석영 씨는 몽골과 남북한을 망라한 '알타이 연합' 구상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보 측에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 말을 한다. 큰 틀에서 현 정부를 돕겠다”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과 문인들은 “변절”이라며 일제히 황석영 씨를 공격했다. 그러나 냉담하기는 우파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서 굴러와 숟가락 하나 올리려 하느냐”라며 진의를 의심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노벨 문학상 타기위한 전략일 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가뜩이나 “현 정권과 협력하겠다”라는 발언만으로도 놀라운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두고도 진보 진영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아 논란이 됐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표현 대신 ‘광주 사태’라고 부르고는, ”광주 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국 대처 정부 때도 시위 군중에 발포해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더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라고 했다. 황석영 씨는 과거 권위정부 시절에 체제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도 황석영 씨였다. 5공 시절, 광주항쟁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쓴 것이다. 그런 황석영 씨의 입장 변화는 놀라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변절’이냐 ‘전향’이냐, 또는 ‘전향’이냐 ‘변절’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국 사회처럼 흑백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환경에선 한결 같이 처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분단에 따른 이념 색채가 진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접점을 찾기 힘든 반목 속에서 특히 지식인이 택할 수 있는 입지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칫 ‘사쿠라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황석영 씨가 갑자기 안보 논리를 내세운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협력 입장만 밝혔을 뿐, 한반도 분단 현실에 대해서만은 여전히 진보적인 입장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대의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에 대해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변절로 낙인찍히는 현실, 우파진영에서는 “좌파의 독선과 아집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비판을 제기하지만, 좌파진영은 “변절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물에 풍덩 빠지지 않고 발부터 슬쩍 담그며 눈치를 보기 마련”이라며 ‘싹수가 보인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황석영 씨에 대한 ‘변절 규정’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진보 진영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대표적 인터넷 논객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황석영 씨를 두고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가 부패했다며 반 MB비상시국선언까지 했던 분이 정권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한다”며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이다. 욕할 가치도 없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김지하 시인이 이 논쟁에 끼어들었다. 김지하 시인은 ‘황석영 씨의 기억력’을 문제 삼은 진중권 교수를 상대로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라고 강조하더니 ”진중권은 문학을 모른다“며 비난했다. 그러자 진중권 교수는 김지하 시인이 쓴 시 '타는 목마름으로'의 한 구절을 빗대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지요"라며 김지하 시인을 비꼬았다. “기억력이 나쁜 게 좋다면, 2초마다 한 번씩 잊어버리는 금붕어가 작가로서 최고의 소양을 갖춘 거냐”라며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변절‘이 아니라 ‘지평 확대’로 봐야한다고 이야기한다. 황석영 씨의 입장 표명이 지지의사를 분명히 한 <국민일보>의 사설을 소개한다. 이 내용은 보수 진영의 오랜 논리기도 하다. “전통사회와 달리 현대 사회에선 노인이 청년의 공박을 받게 마련이다. 황석영 씨의 발언을 두고 좌파 진영의 후배 세대에선 벌써 '변절' '전향' 운운하며 욕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황석영 씨보다 더 짙게 고민했다고는 할 수 없다. 체험이 부족하면 관념이 앞장서게 마련이다. 선배 세대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체득한 식견과 통찰에 귀를 기울여 보는 상식이 좌파에게 절실한 때다.”라는 지적이다.

황석영 씨 논란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우리 사회가 극도로 양분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준 것이다. 양분된 이 나라, 어느 쪽에 더 많은 수가 몰려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도를 그려보면, 보수 아니면 진보 이렇게 확 갈려있는 듯하다. 중도는 발언권은 물론, 설 자리마저 사라진지 오래이다. 시대가 그렇게 국민을 양분한 느낌이다. 황석영 씨는 사실 좌에서 우로 향해 슬쩍 한 발짝 움직였을 뿐이다. 여전히 몸은 좌쪽 중심에 있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좌에서 우의 품으로 안긴 것으로 규정돼 버렸다. 황석영 씨가 ‘현 정권을 중도실용 정부’라고 한 말을, 우파로의 변절로 여과 없이 해석된 것이다. 중간지대가 없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파열음이 커지니까 황석영 씨는 “나는 변한 게 없다”며 자중하는 모습이다. 황석영 씨가 절감했을 것이다. 본인이 찾았던 중도란 한국사회에선 신기루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