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만났던 이상적인 사모님  

아주 오래 전에, 어느 명망 있는 교계(敎界)의 지도급에 있는 K목사님 댁을 긴급한 용건으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어느 기관에 설교 차 갔으므로 사모님의 권유에 따라 다소 초라하지만 아늑한 응접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뜨거운 호기심은 후배 목회자들에 존경을 받는 그 목사의 체취를 발견하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두어 시간 동안 나는 그곳에서 이상적인 목회자 부인을 만나고 있었다. 이제 막 50대에 들어서는 나이에, 외양은 큰 편이 못 되었으며, 심한 표현으로 볼품이 없는 편이었으나 그녀는 상당히 많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었다.  

다과(茶菓)를 나누며 함께 대화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목회상의 아주 깊은 문제를 취급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대화 도중, 우리는 많은 방해를 받았다. 막 깨어난 손자의 칭얼거림이 있었고, 몇 번의 전화가 걸리어 왔고, 또 몇몇 교우의 방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도 서두는 법이 없이 아이를 부드럽게 달래며 대화를 계속시키고 있었고, 전화를 받으며 사소한 교회 문제를 그녀의 판단으로 처리하고 있었고 어느 교우가 뜻밖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여전도사님에게 전화해서 병원방문을 요청했고, 저녁에 목사님의 방문을 약속했다.  

또한 어느 교우가 방문해서 그의 눈물겨운 사정을 말하는 동안, 나에게 사진첩(寫眞帖)을 내어주며 양해를 구한 후에 그 교우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처럼 분주한 속에서도 나를 상당히 감동시킨 것은 목회자가 비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고 있는 제반사를 목회자의 권한에 속한 것과 그녀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판단한 후 민첩히 처리하고 메모하고 있었다. 더욱 나를 포함한 몇몇 교우의 겹친 방문에도 아주 부드럽게 맞아들이는, 한 마디로 상대방을 아주 평안하게 만들며, 또한 방문자 서로까지도 한 분위기에 조화되도록 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는 듯싶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침내 목사님이 왔을 때, 그녀는 나를 소개시키며 교회의 이름과 간단한 경력과 방문한 요건을, 그리고 나의 주요한 장점까지도 곁들여 말하고 있음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무적인 요건뿐만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나를 거의 이해해 버리고 있음에 놀란 것이다. 생각보다 K목사님은 냉정해 보였고, 사무적이었음에 실망했으나 그의 목회의 성공과 존경 받는 이유가 그의 부인의 공(功)임을 어렴풋이나마 느끼어지는 듯싶었다. 그 뒤 서너 달 후에 내가 전화했을 때도 그녀는 나의 목소리와 이름을 기억하고 반가와 했고 나의 주요 관심사까지 묻고 있었다.  

(2) 목회자에게는 비서로서  

사실 목회자의 직무(職務)의 대부분이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무형적(無形的)인 일이다. 그것은 서류상이나 조직적인 것으로나 어떤 명령 하달로 이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어찌 보면 목회자처럼 놀고먹는 직업이 없는 듯 오해 받기 쉽다. 그러나 목회가 오전 9 시에 교회에 출근하여 사무적으로 서류를 처리하고, 몇 곳의 심방을 하고, 원고를 작성하여 설교 준비를 하고, 사무직원이나 관리인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제반 회의나 주관하는 것으로 끝나고 저녁 5시에 퇴근하여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텔레비전의 재미난 프로나 즐기는 것으로 하루가 지나고 교회가 운영된다면 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랴?  

그러나 목회의 일은 무형적, 무시간적이다. 완벽하고 설교의 깊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면에 등한히 하거나 목회자가 영적인 파수꾼으로 소홀히 할 때, 교회의 어느 구석에서부터인가 무너지기 시작함을 번번이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단한 기도와 영적인 성장과 말씀의 뜨거움을 지니기 위해 많은 목회자는 늘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어느 때는 밤에도 편치가 못하다. 여름휴가를 바닷가에서 식구와 함께 즐기는 시간에도, 문득 그동안 교회의 무슨 시험이 없을까 조바심치며 조용한 장소에 나아가 엎드리고 만다. 

조금만 방심하면 용케도 사단이 알고 교회 여기저기 틈을 타고 있음에 놀란다. 어느 주일날은 감동적인 설교를 하고 내려와서 흐뭇한 기분으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자고(自高) 해 있는 동안, 어느 기관 모임에서 제직 간에 욕설에 가까운 언쟁을 함으로 큰 시험의 전조 (前兆)가 느껴질 때 목회자의 가슴은 상심된다. 분명 그날 설교의 내용이 ‘서로의 허물의 발을 씻는 사랑을 보이자’고 했고, 많은 교우가 ‘아멘’으로 화답 했으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모든 교우의 얼굴에 화기(和氣)로 밝아 있지 않았던가?  

목회자의 고독은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 배울 수 있다. 목회자의 승리 여부는 오직 영적인데 대부분이 달려있다. 그가 갈멜산의 대역사에 도취되어 방심되어 있는 동안 그의 적들은 야음(夜陰)을 타고 재차 공략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패배자의 모습으로 로뎀나무 아래에서 심한 무기력감으로 시달릴 때, 지친 몸으로 골방에 나아가 엎드리며 “오 주여,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나이다.”외칠 수밖에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자 그러나 보라. 하늘을 향해 무기력의 손을 드는 순간, 놀랍게도 큰 도움이 나타나 사단의 예기(銳氣)를 꺾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는 어려운 것만 아닌 것이다. 누가 이 영적인 싸움에 함께 출정하여 그의 참모가 될 것인가? 그것은 그 일을 위해 하늘이 짝 지워 주신 목회자의 부인이 가장 적격자이다. 아무리 사회의 어느 유능한 비서라도 목회자의 영적인 생활과 육적인 생활을 동시에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대부분의 교회가 목회자에게 비서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다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목회자의 비서로서 목사관에 살아야 된다. 수많은 방문객을 만나야하고, 전화를 받고 메모를 하고 목회자의 예배 준비를 돕고 때로 목회자의 건강관리와 휴식을 위해 손님의 방문을 제한시키기도 하고, 과다한 교우들의 음식 접대를 조절해 주기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사모는 이런 잡다한 성가신 일을 피해 목사관을 교회로 부터 멀리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은 도피에 불가하다. 목회자 부인은 싫거나 좋거나 목회자의 비서요 조수요 수종자이며 손발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가 이 일을 유능하고 효과 있게 해내고 있느냐에 따라 이상적인 사모님이냐, 아니냐의 판가름이 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서 소개한 K목사님의 부인은 얼마나 뛰어난 비서인지…. 그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어 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라고 해서 처음부터 무슨 사모님 예비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닌 이상, 젊어서 목회자의 부인이 된 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시어머니 노릇하는 인상을 주는 교인들의 간섭에 적응 되어 가고, 때로 는 큰 시험에 들기도 하면서 함께 웃고 울며, 갖가지 목회상의 희비애락에 젖는 동안 다듬어지고 성육(成育) 되어졌음에 틀림없다. 당신은 지금 어느 나이에 있는가? 막 목회를 시작하는 목회자의 부인이라면 비서직을 위한 훈련에 전심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그의 영적인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영적인 비서가 되고, 아울러 대인 관계 훈련 , 자질구레한 사무적인 능력, 가령 타이핑까지라도 익숙해지며, 재료 정리라도 할 수 있다면 당신의 남편은 유능한 팔과 다리를 얻음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하기 시작할 것이며, 목회상의 잔일로 인해 늘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내곤 하던 그가 그의 기도실과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깊고 뜨거운 영력자로 성장되어 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그와 함께 생(生) 다하는 날까지 목회를 마친 후, 만의 하나라도 당신이 먼저 하늘나라에 오를 때, 그로부터 나의 가장 귀한 팔과 다리를 잃었노라고 뜨거운 고백을 받는다면 이 얼마나 행복된 것이랴. 조지 뮬러는 기적적으로 2000 명의 고아를 양육시킨 분으로 유명하다. 말이 2000명이지, 그 버림받은 엄청난 숫자의 고아들을 뚜렷한 수입원이 없는 채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키운 그분이야말로 너무나 위대한 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대한 거목(巨木)을 받치고 있던 큰 뿌리가 누구인가 주시해야 한다. 그는 그의 부인 메리 그로브스 여사였다. 그녀가 그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오를 때 그는 장례식 석상에서 고백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브리스틀에서 뜻밖에 만난 후 그가 성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그를 고아원에서 만나는 것 같이 즐거웠을 때는 없었고, 이것은 결혼한 이후 10년, 20년, 40년이 되어도 그랬으며, 우리의 결혼 생활은 진정한 영적 행복이 충만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일들에 서로 의견이 꼭 맞았다. 나는 행복하던 지난 39년 4개월간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러한 여인을 그의 아내로 맞은 목회자는 그의 목회 환경이 어떻든 간에 행복한 목회가 될 것이며, 그녀의 깊은 뿌리로서의 섬김을 통해서 그의 목회의 잎은 무성하고 많은 열매들이 그 잎들 속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