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죽을 때까지도 대학 보낼 엄두가 안 났던 부모님 슬하에서 말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9년 간 독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동안 공부는 어디서 했느냐. 봉하사라고 인근 사찰에서 했다. 그 오가는 길에, 5월 23일 몸을 던진 언덕이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노무현은 사법고시를 통과한다. 그리고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 일을 맡았다. 그러나 곧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왜일까. 판사로 있는 동안 형인 노건평 씨가 이른바 ‘사고’를 쳤던 것이다.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부적절한 행실을 보이는 바람에 옷을 벗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생인 자신이 어떻게 판사를 할 수 있겠나”하며 사표를 냈다는 설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적 결벽증을 일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뒤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훨씬 더 잘 나갔다. 승률이 무려 90%를 넘나드는 전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1년 그의 일생 최대의, 운명 같은 수임자를 만난다. 그들은 바로 부림 사건에 휘말린 운동권 대학생들이었다.

부림 사건은 용공조작 사건이었다. 멀쩡한 학생들을 ‘북한에 조종당하고 있다’며 혐의를 뒤집어씌운 사건이다. 이 사건은 원래 선배 변호사가 맡기로 했었다. 그러나 바빴던 모양이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친구들 좀 맡아줘’라는 선배의 강권에 얼떨결에 수임하게 됐다. 사실 이 학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한 말처럼 ‘돈 밖에 몰랐던’ 변호사였다. 그래서 학생들과 술을 나눌 때 아내를 때린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무용담처럼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학생들이 정색을 하며 “아니,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변호사님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며 나오니까, 그때 충격을 받고는, 서야 비로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변호사는 이후,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987년 6월 항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부산 6월 항쟁에 있어 노무현은 사실,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때 눈여겨봤던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1988년 총선 때 끌어들인다. 5공화국의 ‘쓰리 허’의 일원인 허삼수와 맞붙었는데 이때 이기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름을 본격적으로1 알렸던 때는 그해 말에 있었던 5공 청문회 때였다. 송곳 같은 질문으로, 5공에 치떨어했던 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줬다.

그러나 김영삼 총재와의 인연은 2년도 채 못 갔다. 김영삼 총재가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던 것이다. 택한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양김과 결별하면서, 혈혈단신으로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에는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1996년 총선 때 맞붙었던 신한국당 후보가 바로 현 이명박 대통령이란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자진해 의원직을 내놓으면서 1998년 7월에 종로에서 보궐선거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때 나와 당선됐다.

오랜만에 금배지를 다시 단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자신을 버렸던 부산에 돌아간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또 졌다. 지역주의에 도전했다가 계속 실패해도 또 도전 또 도전하는 노무현의 진정성. 이 진정성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팬클럽이 있다. 바로 노사모였다. 노사모는 그를 대통령의 길로 인도했다. 그 유명한 국민 경선이 있었던 2002년.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인제 후보와 2강 구도를 이루며 한판 승부를 벌였고 승리했다. 그러나 저조한 지지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당내에서는 후보 교체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뚝심의 승부욕으로 결국 16대 대권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숱한 역정 끝에 대통령이 됐지만 그의 진짜 역경은 2003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검사들의 반발, 제 1야당인 한나라당의 견제, 또 훗날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당 인사들의 저항! 그야말로 줄줄이 선 반대세력과의 신경전이 취임 직후부터 펼쳐졌다. 이런 반발로 태동한 것이 바로 2004년 봄에 있었던 탄핵이었다. 이 탄핵은 의회의 지형을 바꾼 노무현 일생일대의 최대 승부수로 기록될 것 같다. 그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대통령 탄핵반대' 바람을 타고 원내 151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꼬이는 일 뿐이었다. 국가보안법 사학법 과거사법 신문관계법 등 4대 쟁점입법을 고치거나 없애려 했다가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한다. 그 결과가 참여정부 내내 44대0이라는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재선거 또 선거 패배 실적으로 이어졌다. 되는 일이 없던 노무현 전 대통령, 보수는 물론 아군인 진보 세력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다 결국 정권을 내주고 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더 이상 특별할 건 없을 것 같은 일반 시민으로 돌아왔다. 퇴임 후의 역량을 고향마을을 '부자마을'로 만들려는데 쏟기로 했다. 그래서 봉하마을 앞 농경지에다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은 관광코스로 유명해질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됐다. 정쟁에서 벗어나 고향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노무현을 놓지 않았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인 386세대에게 칼을 뽑아들었다. 급기야 친형 건평 씨가 지난해 12월 세종증권 매각 로비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다. 청와대 '집사'로 불렸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역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3억 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특수 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부인 권양숙 여사의 사건으로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로 검찰 소환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 "저의 집은 감옥"이라고 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익숙했던 그 고개에서 영욕의 63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드라마 같은 인생, 이제 역사의 평가만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