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폭은 험상궂은 인상과 칼자국이 없다. 꽃미남들이 많다. 이유가 있었다. 최근 경찰에 검거된 폭력조직 ‘이태원파’는 대졸자를 우대하고, 키 175㎝ 이상, 용모 단정할 것 등을 자격요건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주먹을 잘 쓰고 충성심이 강해도 얼굴에 상처가 있거나 혐오감을 주는 인상은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조직에 정식으로 가입해, 패밀리가 되려면 2~4년 정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대기업처럼 ‘워크숍’도 가진다고 한다.

조폭도 외모 지상주의에 휘말렸다는 것일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일까. 특이한 점이 있다. 세계 3대 폭력 조직인 마피아와 야쿠자, 삼합회는 모두 고도 문명화된 사회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가 조폭의 거점일 것 같은데 아닌 것이다. 조폭은 가끔 사회와 타협하면서 생명력을 키워간다. 예컨대 도박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관광객을 상대로 한 범죄가 거의 없다. 그랬다간 마피아에게 ‘피의 보복’을 당하기 때문이다. 9·11테러 후 뉴욕 조폭들이 관광객 상대의 범죄를 하지 말자고 담합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경제를 되살리자는 줄리아니 당시 뉴욕시장의 호소에 호응한 것이다. 조폭들도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조직폭력배가 미화의 대상이 돼 서는 안 된다. 한 때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았나. 이런 류의 작품들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폭력을 사용해 돈을 빼앗지만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도적들의 이야기, 이런 것이다. 뛰어난 재주와 담력을 지닌 이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혼내주는 통쾌함 때문에 여기에 뒤 따르는 폭력 행위가 가려지는 것이다. 대신 의협심과 승부의 법칙 같은 폭력세계의 가치관들이 지나치게 부각된다. 게다가 조폭들이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대형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층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힘을 얻게 된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조폭, 실제로도 의리가 있을까. 조폭의 실제 생활은 결코 멋지지 않으며 잇속을 따질 뿐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스티븐 레빗이라는 미국의 경제학자가 쓴 책 ‘괴짜 경제학’을 보면, 마약 갱단의 회계장부를 통해 조직원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에선 행동대원들이 ‘좋은 직장’을 얻을 경우 조직을 떠나는데 그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고작 잡역부 정도라 한다. 수사관들도 말한다고 하지? “예나 지금이나 조폭에겐 의리란 없으며 돈 앞에서 비열할 뿐”이라고 말이다. 영화와 현실은 차이가 크다.

조폭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형사정책연구원이 2007년에 공개한 조직폭력배 관련 보고서를 보면, 조폭들의 월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42%, 300만~500만원인 경우가 23%라고 한다. 법을 어겨 처벌당할 위험을 진 결과이긴 하겠지만, 보통의 노동자에 견주면 꽤 많다. 따라서 유혹을 느낄 젊은이들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죄짓고는 못산다고. 사람 다치게 해 물어주는 돈, 도망 다니느라 쓰는 돈, 이런저런 거 다 합치면 손에 넣는 돈, 몇 푼이나 되겠나. 게다가 존경받지 못하는 말년에 겪을 비참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시 한 번 폭력의 폐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폭력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필립스 교수의 연구 결과를 들어보자.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전이 미국 전역에 중계되면 4일 이내에 11명의 무고한 미국시민이 살해된다”는 예언이다. 수년 동안 열린 경기 전후의 살인 추이를 분석한 뒤 내놓은 논문 내용인데 그 후 제법 들어맞았다. 더욱 슬픈 사실은 경기 후에 살해된 사람의 유형이 경기에서 진 선수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젊은 흑인 선수가 패했으면 젊은 흑인 남자 피살자가 증가했던 것이다.

조폭의 역사는 곧 한국 현대 정치역사였다는 말도 있다. 정치 깡패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과거 정치깡패들은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정치테러와 선거부정 등에 개입하고 그 대가를 챙겼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당시 정치깡패의 배후에는 당시 정권의 2인자 이기붕이 있었다. 정치깡패 주동자였던 이정재 임화수는 5ㆍ16직후 혁명재판부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다. 그 뒤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87년의 통일민주당창당 방해사건이 있었지? 이 사건의 배후도 5공 정권이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조폭과 깡패는 노선을 달리한다. 조폭은 건달생활을 하는 깡패와 달리 회사를 차리는 것이 특징이다. 기업형 조직을 갖추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돈을 번다. 그 조폭이 그런데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걸쳐 놓은 일도 있어 충격을 준 일이 있었지? 국민의 정부 시절 이용호 게이트에서 드러난 단면이다.

조폭의 기업화로, 조폭의 이미지와 행동거지가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직을 빠져나오려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속설은 옛 얘기라고 한다. ‘갈 테면 가라’ 이렇게 식으로 쿨하게 보내주는 게 요즘 분위기란다. 조직의 가입과 퇴출, 곧 고용의 유연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조직 규모도 슬림화하는 추세다. 서울경찰청의 관리대상에 든 폭력조직 구성원은 평균 10명 안팎이라고 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조직관리비용은 줄고 기동성은 커진다. 영화에서처럼 조직간 패싸움을 벌이는 것도 예전의 일이다. 부득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으면 인근 조직에서 빌려 쓴다. 여의치 않을 경우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 휴대전화를 통해 수십 명 정도 모으는 건 금방이다. 합작 또는 아웃소싱을 통한 인력관리다.

유흥업소를 돌아다니며 푼돈 뜯는 현상도 사라졌다. 그건 라면 한 봉지가 50 원 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요즘 조폭은 돈을 벌러 직접 나선다. 사채·부동산·유흥업소 영업 같은 고전적 업종 말고도 연예사업, 인테리어, 폐기물처리, 경호용역, 투자자문, 농수산물 유통, 직업소개 같이 사업이 다각화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조직 내에서도 분야를 특화해가는 추세라고 한다. 2, 3명 단위로 각각 유흥업소 담당, 상가분양 전담하는 식이다. 팀제를 통한 인력 전문화다. 조직에서 주는 돈 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부업이나 아르바이트를 뛰는 조폭들이 많다. 이른바 ‘투잡족’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오가는 것이다. 조폭은 게다가 세계화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야쿠자와 손잡고 부동산 투자에 나서거나, 중국 폭력조직과 함께 채권 회수업에 나선 사례는 그 일각이다. 꽃미남 조폭 전략도 이런 조폭의 현대화 그리고 기업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