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심리·고민 상담이 붐이다. 하는 사람도 많고 해주는 사람도 많다. 고민거리가 많음도 있지만, 나의 삶을 나누고 싶은 욕구 또한 큰 것이다. 요즘 심리학책과 상담서에 손을 대는 이들이 크게 많아지고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교수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는 지난해 2월 초판이 나온 뒤 37만부나 팔렸다. 정신과나 심리학 전공자가 아닌 인터넷 논객인 김어준 씨의 상담집 <건투를 빈다>는 지난해 11월 초판 뒤 2만3000부 팔렸다. 처세술 책보다 인간적인 고민에 더 주목한 직장생활 에세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도 가뿐히 1만부를 넘겼다. 이것 말고도 방송사별로도 부부관계, 친구사이, 연예문제에 대한 상담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팝 사이콜로지’ 즉 대중심리학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관계’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꽤 많다. 디지털 세대를 일컬어 신(新)유목민이라 부르지?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일컬어 유목민이라고 하는데. 속도감, 이동성 이런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인간관계의 변화 역시 그 폭이 매우 크다. 의지만 있으면 직장도 옮기고 배우자도 바꾼다. 영원한 관계, 피를 나눈 형제애는 닭살 돋는 이야기가 돼 버렸다. 과거의 인간관계는 지속성이 최대 가치였다. 가파른 변화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고민하는 신유목민에게는 인간관계도 경영의 대상이다. “제한된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무조건 마당발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 상담가 대신 일반인이 상담을 해주는 점, 독특하다. 그래서 ‘팝 사이콜로지’이다. 면허증이 있지 않아도 가능한 게 대중상담이 되겠다. 외과 수술이나 내과 치료와 다르게, 마음의 치료는 ‘편한 상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의사와 환자의 상하위 관계가 아니라 동네 형,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격의 없는 상담을 대중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상대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만한 같은 세대, 직장 환경, 사는 동네가 같은 이이다. 해법 역시 심리학적인 이론에 끌어오기보다 경험칙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게 더 신뢰감이 가는 것이다.

전문 상담가의 조언에 비해 일반인의 상담, 특별히 다르기도 할까. 김어준 씨의 <건투를 빈다>에서 한 스물네 살 여성이 ‘남자친구를 확 뜯어고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어준 씨는 “애인이 남인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이래서야 사랑할 수 있겠나. 못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심리학은 치유를 위한 학문이고 실용학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심리학이 전문 상담소에 갇혀 대중과 유리된 측면이 있었다. 나아가 전문상담가가 상담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아픔을 질환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면 간단한 문제가 괜히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의 조언, 공감이 간다하더라도 100% 수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심각한 문제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까. 바로 혈액형 심리학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절반 정도가 혈액형 성격학을 믿는다고 했다고 한다. 일본 영향이 크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혈액형 관련 프로그램이 크게 늘었다. NHK와 민방이 만든 혈액형을 다룬 프로그램은 한 때 50개 이상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시시때때로 ‘남성이 결혼하고 싶은 여성의 혈액형 1위는 A형’ ‘여성이 결혼하고 싶은 남성 1위는 O형’ 등 순위 붙이기부터 ‘한국 인기 배우는 모두 O형’이라고 소개하거나, 연예인을 혈액형별로 나눠 행동을 관찰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혈액형에 관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분류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실제 어느 일본 20대 여성은 “조건도 좋고 성격도 싹싹하지만 B형이어서 A형인 우리 하고는 맞지 않다”고 A형인 남자친구 부모로부터 결혼승낙을 얻지 못했고, 주위에서 A형 아니면 O형으로 여겨졌던 여대생이 실제는 B형이라고 A형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한 순간 “역시 너는 자기 멋대로 였어! 나는 B형하고는 맞지 않아”라며 절교 선언을 당하기도 했다. 집단적 의식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고,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동질성에 삶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 일본사회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해석되는데. 한국에서 혈액형 분류 붐은 또 다른 일본문화 따라 하기의 변종이면서도, 상대와 나의 차이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중심리학이 우리 사회에 크게 확산되는 배경, 끝으로 짚어본다. 팝 사이콜로지는 소통 없는 세상의 소통이고, 동정 없는 세상에서 공감을 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 소중하게 담아줄 그릇이 많아진다면 좋겠지? 하지만 이 점도 명심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명쾌한 답을 구하려는 하는 것, 문제라는 것이다. “고민에 대해 도움을 얻거나 성찰을 얻는 건 지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정서적인 깨달음의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논리적인 깨달음만으로 단번에 태도나 생각이 바뀌기는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