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이름난 사람들이 정치판이라는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업적을 쌓은 학자, 정론을 펼치던 언론인, 용기와 정의감을 갖춘 법조인, 신념의 사회운동가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우리를 배신하였다. 블래홀에 빠진 별처럼 본래의 빛을 잃고 암흑 속으로 녹아 들어갔던 것이다. 정치란 본시 백성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는 기능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어쩌다 백성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을까?

정치인 때문에 짜증나며 ‘정치적인 사람’이라 하면 욕이 되는 나라가 되었을까? 이들은 어째서 백성의 편안한 삶보다는 자신들의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면서, 숭고한 이념이 실현되어야 할 정치판을 블랙홀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한 번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아 정치 맛을 본 사람은 좀처럼 거기서 빠져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끊임없이 그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판이 좋으니까 그렇다. 국회의원에겐 거의 무제한의 권한에다 완벽한 무책임이 주어진다.

장관들에게 ‘공손하지 않다’고 호통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으나 자신이 직접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이니 이성도 마비되고 양심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정치는 마약과 같다는 말도 한다. 블랙홀이든 진흙탕이든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상당히 오래 전 국회의원들이 회기 중에 고스톱을 쳤다는 웃지 못 할 보도를 보았다.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할 일이 없고 무료했으면 의원회관에서 고스톱을 쳤겠는가? 당 지도부에서는 고스톱을 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 봐야 소용이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판이라는 ‘블랙홀’ 에 빠지게 되면 멍청한 짓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들이 뭘 하는지 국민들이 투명하게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제도가 그들을 무력하고 무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법안을 연구하는지, 고스톱을 치는지, 보스의 비위를 맞추러 돌아다니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심지어 민감한 법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정치판이 블랙홀로 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법률을 만들어 내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될 만큼 법 집행이 엉성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법을 지키는 후보도 드물지만 의법 처리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이런 사건들이 쌓이면서 권력자는 법 위에 존재한다는 경험적 지식을 만들어 냈다. 사실 조선후기의 정약용 선생도 지적했듯이, 법률을 경시하는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대부들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사회였고, 자신이 만든 규율을 해석하는 권한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반이란 법규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법규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법을 만들거나 해석하는 사람은 그 법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관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개명한 세상에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검찰이 집행하지 못하는 사태를 보면서 정치가는 항상 법 위에 존재한다는 경험적 지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서는 안 되듯이, 정치개혁도 정치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 경영학 박사, 서강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