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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나의 설교

2010년 02월 01일 (월) 19:58:50

김태복 목사

hipc6012@hitel.net

남독(濫讀)으로 굳어진 독서 악습(惡習)

나의 독서 습관을 보면 거의 마구잡이식 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차분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들을 펼쳐놓고 이것을 읽다가 저것을 읽는 식이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많이 아는 척은 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나쁜 독서습관은 중학교 초학년 때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싶은 의욕은 넘치는 데, 전쟁이후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정은 6남매의 학비를 대기도 바쁜 형편이라 교과서 외에 책을 사준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형편에 종종 고등학교 다니는 형이 친구로부터인지, 학교 도서실로부터인지 이광수의 ‘흙’이나 ‘무정’같은 소설을 빌려오면, 형이 집을 비운 사이에 순식간에 읽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다가 중3학년 때인가, 우리 학교에도 도서실이 생긴 것은 너무나 감격적인 일이었으나, 문제는 너무나 보고 싶은 책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매일 빌려다가 대충 읽고는 반납하는 일을 다반사로 하다 보니 남독의 습관이 굳어진 것이다.

형이 무슨 마음으로 샀는지 몰라도, 나가 고등학교 시절, 또스또엡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이 형의 초라한 서가에 꽂혀 있었다. 나는 읽을 책이 없는 때면 그 어려운 책을 읽고는 했는데, 어려운 대사, 사설이 긴 문장을 껑충 뛰어 읽어 버리고는 했다. 그래서 그 책만도 서너 번이나 읽은 것 같다. 그 때문에 나중에 또스또엡스키이의 팬이 되어 대부분의 작품을 읽기도 했다. 여하튼 무엇이 그리 급한지 항상 빠르게 대충 읽는 것이 습성화 되었다. 이런 식의 독서방법은 대학에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

대학을 입학하는 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거기에는 늘 읽고 싶었던 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4년 동안 엄청난 양의 책들을 읽어댔다. 그러나 칸트나 헤겔, 하이덱거 등의 책들은 정독을 해도 이해가 될까 말까하는 난해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은 몇 번이고 반추하며 읽었으나 어느 부분은 껑충 뛰어 넘어가기도 하면서 다만 명저(名著)을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나 대학 때는 전공과는 달리, 문학지망생이 됨으로 국내외의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거의 설렵하다싶이 할 정도였다.

그런 남독의 습관은 67년 봄, 장로회 신학대학에 입학하고서도 변함이 없었다. 독서량으로 계산한다면 어느 대학생이나 신학생들보다 가장 앞섰다고 자부할 정도로 읽었댔으나, 항상 어떤 책을 읽고 나면 지적인 충족감보다 스스로 기만하고 있는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그런 겉핡기식의 독서방법이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고 분석해 본다. 후에 나름대로 많은 책들을 저술했지만, 한 테마를 중심으로 해서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모든 분야를 닥치는 대로 집적거린 것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농촌교회, 그 독서의 밤들

그나마 독서를 가장 보람 있게 한 시절을 꼽는다면 농촌교회 7년이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은 길고 긴 낮과 밤을 책을 붙들고 있었다는 점이요, 대학이나 신학교 시절과는 달리 질적으로 깊이 있게 독서했다는 점이다. 신학교 시절은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었으므로 계속 데모열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으로 자연적으로 휴강이 잦았다. 대부분의 학과가 서론만 듣다가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농촌교회 사택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다. 100여명이 모이는 농촌교회라 일거리가 많지 않았고 텔레비전도 없었음으로 무료한 시간들을 독서로 메울 수가 있었다. 또한 교역자 사례비란 뻔한 것이어서 책도 많이 구입하지 못하는 관계로 모처럼 사온 책을 깊이 독파하고는 했다. 예컨데, 라인홀드 니버, 마틴 루터킹,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본 회퍼, 존 로빈슨, 헨드릭 크레머, 폴 아브레흐트, 위리암 호오던 등의 저자들의 작품이었다.

지금도 서재에서 그 때 읽은 책들을 보면 지저분할 정도로 줄을 긋고 빈 공간에 가득 메모한 것이 발견된다. 때로는 귀한 책을 다 독파하고 가슴에 가득 넘치는 감격을 안고 시골길을 산책하거나 앞산으로 산행(山行)하면서 사색에 빠지고는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에 감동적인 책들을 읽고 고뇌하고 아파했던 날들이 목회이나 저술활동에 큰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해 본다.

도시목회와 독서의 한계

1975년 늦가을부터 농촌목회를 청산하고 도시목회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도시는 삶을 쫓기게 만들고 있었다. 그에 따라 독서에도 농촌에서만큼 여유가 없었다. 교회의 몸집이 점점 커짐에 따라 그 나마의 여유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설교나 성경공부의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원고작성에도 벅찰 정도가 되었다. 자연적으로 독서방향도 그 때 그 때 필요한 분야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나가 목회 하던 지역은 빈촌(貧村)이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서점에 가면 먼저 찾는 책들이 기도나 성령, 종말론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런 분야에 책들을 구입하여 읽고 요약하여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서재에는 많은 문학적인 책들이 밀려나고 기도와 성령, 종말에 대한 책들로 채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열심히 읽으면서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고는 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모처럼 무게 있는 일반적인 책들이나 베스트셀러를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적지 않았고. 설교나 청탁 원고에 필요한 부분들만 읽고 발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때로는 목회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는 겨울에 큰마음을 먹고 여러 권으로 된 ‘세계문화사’나 ‘동양문화사’같은 방대한 책들을 구입하고 읽기를 시작하였지만 끝을 맺지 못하기 일 수였다. 그것이 도시목회가 주는 독서의 한계였다.

컴퓨터 시대와 독서의 빈약

나는 90년 초반부터 컴퓨터로 설교와 원고 작성을 해오고 있다. 초창기의 컴퓨터는 ‘워드푸로세스’ 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으나, 지금 당회실의 최신형 컴퓨터는 사용하면서 그 기능 면에서 언제나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다시 구성, 수정, 가감할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 것이어서 원고작성자가 손으로 쓰는 것이 ‘기는 느낌’이라면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은 ‘날고 있는 느낌’이다.

더 나가서는 컴퓨터를 통해서 모든 자료들을 마음대로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연결하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도서관도 들어가서 재료를 이용할 수 있고, 또한 기독교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유명한 분들의 설교를 마음대로 복사해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신문이나 잡지, 심지어는 주간지들의 자료들을 수집하여서 순식간에 내 원고에 삽입할 수 있으며, 무수하게 제작되고 있는 설교자들을 위한 CD들을 이용하면 성경이나 주석 없이도 쉽게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다.

더 나가서는, 다른 이의 책들을 ‘스캐너(scanner)’를 통해서 복사하거나 일일이 타이핑하지 않아도 많은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기막힌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나가 30대부터 이런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저술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컴퓨터를 사용할 때마다 절감하고는 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독서시간들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도시목회 하면서 그 때마다 필요한 책을 구입하여 필요한 부분만 읽는 절름발이 독서를 하였을지라도 그래도 책을 대하는 시간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에 빼앗기고 있음으로, 설교자로서 원고작성의 기능면은 탁월해지는 반면, 정신면으로는 퇴행하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독서를 통해서 지식도 습득하지만, 저자와 면대하여 그의 사상을 전해 듣고 무언의 대화를 하며, 깊이 사색하는 이점을 가질 수 있으나 컴퓨터를 이용할수록 차분함보다는 성급함만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익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