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학문이 있다. 그 가운데 오늘은 참 생소한 학문으로 ‘실패학’을 한 번 소개해볼까 한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의미일까. 여담 이다만, 사실 연구 결과는 정 반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학습기억 연구소가 작년 여름에, ‘인간은 실패가 아닌 성공에서 배운다’라고 발표했다. 원숭이를 상대로 실험을 했더니, 뇌의 정보처리 활동이 성공해야만 개선되더란 것이다. 다시 이야기해서, 실패하고는 개선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말로는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라고 하면서도 실제론 대부분 성공 사례에만 주목하게 되지?

그 성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은 요즘 GM과 도요타 같은 대마들의 실패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 GM이 파산 위기를 만났지? 많은 이들의 지적과 훈계를 무시하고 그 방만한 경영, 치밀하지 못한 시장 전망을 한 탓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일본 도요타의 패착은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원인은 이렇게 전해지고 있지? 3년 전 브레이크 이상을 보고받았는데, 이걸 손을 쓰기는커녕 무시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사태를 키웠던 배경이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도요타의 뒤를 바짝 쫓아왔던 현대 기아자동차, 만약 남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면, 돈 안 내고 수업 받는 셈이 되겠지? 이때 ‘실패학’은 참 유용하다.

실패학도 학문인데, 뭘 연구하는 것일까. 실패 사례를 통해 실패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식화하는 거다.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실패가 발생한다. 그러면 결과를 분석한다. 그리고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보면, 틀림없이 요인과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실패학은 바로 그 실패의 요인과 장치를 알아내고, 실패의 맥락을 분석해서 다른 실패에 대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개인과 조직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학문이라 하겠다.

관련한 서적도 있다. 3년 전에 나온 ‘배드해빗’이란 책인데, ‘성공한 기업의 7가지 자기파괴 습관’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미국 마케팅 분야를 대표하는 석학 가운데 한 사람인 잭디시 세스 미국 에모리대 교수가 쓴 것인데. 한번 성공했던 기업이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는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잭디시 교수는, 그 원인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았다. "기업이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 가면, 그 결과로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중에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자기 파괴 습관이라, 이게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 혹시 오만함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자기 파괴 습관, 7가지이다. ①현실을 부정한다. ②오만하게 된다. ③타성에 젖는다. ④핵심역량 또는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⑤눈앞 경쟁만 보는 근시안이 된다. ⑥규모에 대한 집착이 크다. ⑦구성원들의 텃세가 그렇다. 이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후반 미국 기술자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어요. MIT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나 샴페인, 조지아텍….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수많은 교수들을 자랑했죠. 누구도 미국의 기술을 따라올 수 없다고 굳게 믿었어요. 그러나 그 믿음은 깨지고 말았습니다"라고 밝혔다.

작년에 파산 신청을 한 GM이 바로 그 경우이다. 이 교수의 말을 더 인용해보자. "1980년대에 GM은 자기 회사 직원을 일본에 보내서 도요타와 기술을 교류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은 도요타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요타는 GM이 개발 중인 신기술에 대한 시험을 이미 모두 끝낸 상태였고, GM이 도요타와 같은 대수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두 배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러나 그가 미국에 돌아와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GM 경영진들은 '제대로 조사한 거야?' 이러며 한마디로 무시했습니다." 마치 임진왜란 10년 전, ‘일본의 침략이 있을 거다’, ‘없을 거다’라며 서인과 동인의 대립이 심화되던 그때를 보는 것 같지 않나?

도요타가 추격을 했지만, 지금 도요타도 최대의 위기를 만나고 있다. 이번엔 ‘실패학’의 또 다른 거성,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옮기지 않을 수 없다. 하타무라 교수는 기업들이 실패라는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공으로 거듭나는 비결에 초점을 맞추는 인물인데. 작년 9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누구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괴로워하죠. 하지만 실패는 훗날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숨기기보다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실패를 밑거름으로 해서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패가 없게끔 사전에 예방하라는 것도 요타로 교수의 주장이다. 불의의 사고는 없는 만큼, 평소 주의 깊게 살피고 문제를 찾아 빨리 대처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지만, 눈앞 이익에 연연해 시장의 경고를 외면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하타무라 교수의 말대로 했더라면…….’하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도, 이런 시련을 ‘하타무라 교수의 말을 앞으로 따른다면…….’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도요타에겐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 기회이자 위기인 셈이란 얘기이다.

하타무라 교수의 ‘조직의 실패를 막는 실패학의 법칙’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책임추궁과 원인 규명을 분리하라 *당사자의 시점으로 실패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라 *부서간의 틈새가 실패의 배양처가 된다 *업무 영역간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보라 *지나친 경제성 추구가 기술을 죽인다 *정보 단절이 실패를 부른다 *부작위는 범죄적 실패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잠재 실패를 비용 처리한다. 이것이다. 실패를 극복하는 것, 이것도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