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겠다며 새 당명을 모집한 친박연대가 '당선작'을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명 개정을 미뤘다. 사실 친박연대란 이름은 18대 총선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따르는 인사들이 만든 당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비록 급조된 당이었지만 이른바 ‘박풍’에 힘입어 무려 14명의 당선자를 냈다. 그러나 우스꽝스럽지.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당명에 반영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새 당명을 공모 중인 친박연대가 ‘대통합박애신당, 줄여서 대박신당’을 유력한 새 당명 가운데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왜 대박신당이냐. ‘대박을 터뜨린다’는 의미가 살아있고, 또 부르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박(근혜)신당’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판단했던 것이지. 그러나 친박연대는 “우리를 완전히 희화화한 것”이라며 이런 보도 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희화화되는 것은 싫다는 뜻이지. 한편 대박신당 외에도 ‘근사하당 즉 박근혜를 사랑하는 당’, ‘신의당’, ‘신공화당’ 같은 1200여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당 이름 짓기가 참 쉽지 않다. 옛날 것을 쓰자니 구태의연해 보이고, 새 것을 쓰자니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고 말이다. 한국 정치사에 명멸한 정당은 110개가 넘는다. 한민당 민국당 민주당 공화당 신민당 이렇게 기억에 남는 당도 많고, 관보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페이퍼 컴퍼니'에 준하는 '페이퍼 파티' 즉 ‘종이 정당’도 숱하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20년 밖에 되는 정치 인생에,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당이 네 번 바뀌었다. 외국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바뀐 명함을 보고는 놀란다”라고.

민정당 입당이래 한 번도 당적을 바꾸지 않았는데 이름이 네 번 바뀌었다? 야당은 더하다. 민주당의 경우를 보자. 민주당 박상천 의원의 경우, 1988년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 당은 1991년 신민주연합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듬해 1992년 통합민주당이 된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떨어지고 1996년 총선을 앞든 시점에서 통합민주당을 나와 새 당을 만들었을 때, 이때 합류했는데, 당시 당의 이름은 새정치국민회의였다. 그 새정치국민회의가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그러다 2004년 무렵 '새천년'자를 뗀 민주당으로 변신한다. 그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통합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듬해에는 다시 민주당으로 거듭난다. 당적 한 번 바꾼 게 전부인데, 20년 동안 당적이 8번 변경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이름을 가진 당은 뭐였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정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출마를 위해 창당해 재임기간 내내 그 이름을 유지했던 민주공화당이다. 17년 6개월 기록이다. 그 다음이 1997년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선을 앞두고 만든 한나라당이다. 올해로 13년째를 이어오고 있지? 김종필 씨가 1995년 창당해 2006년까지 유지했던 자민련의 경우 10년 9개월의 역사를 기록했다. 세 번째 장수정당인 셈이다.

하도 많은 당 이름이 나오다보니 당 이름 속에 그 때의 시대정신이 녹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해방 이전엔 ‘독립’이 최고 가치여서 한국독립당이 대표적 정당이었고, 해방 이후엔 민주주의 구현이 현실정치의 목표다 보니 ‘민주’란 수식어가 붙은 정당이 많았다.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민주당이 제1공화국 시절 대표적인 야당이었고, 5공 말기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이렇게 3김의 정당들에도 민주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물론 5공 때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나 2중대로 불리었던 민주한국당도 민주를 사용했었고. 뉴 밀레니엄을 맞아 새천년민주당이 등장했고, 국민 화합과 국론 일치를 도모한다며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국민통합21 이런 당 이름이 나왔다. 최근에는 현재 정치상황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신당'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진보신당이 그렇다. 그러나 이름값을 제대로 한 정당이 있었나? 그건 청취자 여러분이 판단할 몫이다.

외국은 어떤가? 특히 미국의 경우는 공화당 민주당이 꽤 오래 가던데. 미국 대선에서 정당 간판을 내걸고 후보로 나선 정치인은 제3대 대통령인 민주공화당의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그전에는 정당이 아니라 연방주의자니 반연방주의자니 하는 당파만 있었다. 그러다 제퍼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1801년부터 1829년까지는 민주공화당의 1당 지배체제 시대였다. 그리고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 16대 링컨 대통령 이전까지는 민주당과 휘그당의 양당체제가 계속되었다. 공화당, 민주당의 전통이 200년이 넘는다 이런 얘기이다. 영국은 또 어떤가. 보수당과 노동당이 수십 년 동안 당 이름에 손도 안 대고 지금껏 이어오고 있지 않나.

결국 당이 특정 인물에 따라 명멸되는 구조 때문 아닌가? 권력을 위해 또는 권력에 의해 급조된 정당치고 오래 간 적이 없었다. 정강 정책에 따라 시스템이 갖춰진 정당은 집권을 하건 안 하건! 유명세가 있는 정치인이 존재하건 은퇴하건 안 하건 간에!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뿌리 깊은 정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친박연대는 이름만 고칠 게 아니라 특정인의 집권에만 방점을 두는 현재의 지향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지적에 직면하고 있다. 정당이 이른바 ‘떴다방’이 된다면 서로 안 좋은 거 아니겠나? 간판만 바꾸고 음식 맛은 그대로인 식당, 소비자에게 외면 받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