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2학기 연세대학교의 전공과목을 수강한 학생의 43%가 A학점을 받았다. 웬만하면 A학점이니 기업들은 불만이 많다. 학점 갖고 학생의 수준과 능력을 감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연세대학교가 먼저 나서서 “이걸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조치로 절대평가를 상대평가로 바꾸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잘 아시겠지만, 절대평가는 모든 학생이 다 잘했다면 다 A+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상대평가는 등급별로 점수 줄 수 있는 학생 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A+는 몇 명까지. 또 A는 몇 명까지’ 이런 식이다.

지금도 많은 과목에서 상대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걸 더욱 확대할 모양이다. 이번 학기부터 영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과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에서 과감히 절대평가를 없애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4학년 심화 전공과목의 경우 교수 재량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던 방식도 폐지한다고 한다. 4학년이라고 뭐 특별히 봐주는 거 없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절대평가를 허용하던 교직과목과 현장실습도 A학점 인원을 50%로 제한하기로 했다.

학점 인플레 현상이 그렇게 심했던 모양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에, 전국 4년제 185개 대학의 성적을 분석해 올렸다. 결과를 봤더니, B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의 수는 전체의 73%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평점 A학점을 받은 사람의 수는 무려 40%에 육박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재 대학들의 학점인플레는 '사기행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면서 "학생을 선발할 때는 0.1점, 0.001점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대학이 정작 자신들이 재학생을 평가할 때는 뻥튀기를 하고 있다"라면서 맹비난을 퍼부었다.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도 그런 지적에 공감한다며 방향을 바꿔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취업난 때문에 어학 공부하랴, 스펙 쌓으랴 정신없는 대학생들, 학점 관리에 비상이 걸리겠다. 그렇다. 특히 4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초비상이다. 취업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지는 것은 아닐까 서로들 염려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상대평가를 내세워도 그저 원칙에 그쳤다. 그만큼 교수 재량권을 폭 넓게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러나 명문대인 연세대가 깃발을 듦으로써 다른 대학에도 여파가 안 미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업들의 요구가 매우 강하다는 점은 취업생을 늘려야 할 대학으로서도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교강사들 중에 상대평가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A를 줘도 “나하고 비슷하게 한 저 친구는 왜 A+를 주느냐”라며 항의를 받게 된다. 이럴 때 ‘저 친구하고 자네하고 이런 저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해줘야 하나. 그건 또 아니지. 게다가 “저 이것만 A+주시면 장학금 받는데…….” “4학년이거든요. 취업에 걸림돌 돼요. 그러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대체로 이런 요구하는 학생들 보면, 잘 줬는데도 불만인 경우이다. 문제는 불쌍하게 올려주면, 떼로 몰려들어서 “나도 올려 달라” 이러는 경우를 만난다는 점이다. 또 학교 안팎에서 “저 교수는 전화하면 점수 올려준다” 이 소문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면 교수가 소신 있게 점수 주면 어떨까. 돌아오는 건 아주 야박한 강의평가 결과이다. 이런 강의평가로는 정교수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비정규직 교수인 강사들도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한 교수는 “이럴 때 출석부가 참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조금만 지각해도 점수를 적게 줘도 되는 구실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생 사이에 실력 차이를 입증하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거다.

교수의 고충도 고충이지만, 요즘 대학가가 더욱 이기주의에 함몰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20대 대학생 문제에 대해 많은 책을 내고 또 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우석훈 2.1연구소장이 지난 해 11월에 쓴 <한겨레> 신문 칼럼 하나를 소개한다. 우석훈 소장은 “상대평가를 없애고 절대평가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세대의 조치와 정 반대의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지. 이런 얘기이다. “절대평가만 도입해도, 학생들끼리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소한의 ‘협동’과 ‘연대’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금 구조적으로 친구를 적으로 돌리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학문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기업도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창의와 협동 없는 암기기계들과 21세기를 열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