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얘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정년을 늘리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같은 유럽 국가들을 필두로 해서 각 나라 정부들이 정년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왜 이럴까. 언제는 45살이 되면 정년이라는 뜻의 '사오정'과 56살까지 직장생활을 하겠다면 도둑과 마찬가지라는 뜻의 '오륙도'라는 말이 만연했는데. 상전벽해라고나 할까. 정년과 연관돼, 변하는 세태를 짚어보겠다.

정말 우리도 정년 연장이라는 흐름 속에 놓여 있는 모양이다. 물론 임금 피크제를 조건으로 한 정년 연장이다. 임금 피크제가 뭔가. 통상 직장 연차수가 늘면 월급도 늘어나지? 그런데 임금 피크제는 다르다. 어느 시점까지는 정점을 향한다. 그러다 정점을 지나면 퇴직하는 기간까지 서서히 임금이 줄어든다. 이게 바로 임금피크제이다. 이러면 나이 든 직원들, 부담 없이 쓸 수 있지 않겠나? 정부는 임금 피크제 시행과 함께 정년을 당초 58세에서 60세로 연장키로 한 '한국전력 모델'을 전 공기업에 전면 도입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 모델을 현재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눈 여겨 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아무래도 이런 추세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활동인구의 핵심계층인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중년과 고령자의 실업률이 크게 오르지? 사실 이분들, 팔팔하다. 그런데 나이가 찼다고 나가라고 하면, 이건 국가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겠지? 자, 그렇다면 이런 흐름, 사기업까지 이어질까? 제약업계 최초로 유한양행이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현재 55살이던 정년을 2년 연장한다는 것이다.

외국도 정년 연장 논의가 뜨거운 모양인데, 우리와는 양상이 좀 다른 것 같다. 우리야 일할 기회가 더 늘어난다며 좋아하는데 반해, 프랑스는 “유감없이 일 해 왔던 우리이다. 그런데 또 일을 시켜? 안 해!” 이러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연이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노동자 퇴직연령을 현재의 60살에서 대략 65살로 늦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노조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60살에 깨끗이 퇴직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근로자들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나? 왜 일할 기회를 스스로 마다할까? 사르코지가 퇴직연령을 늦추려는 이유는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연금재정 적자를 줄여보려는 심산 때문이다. 현재 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여파가 연금재정에까지 미치다보니 연금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출산율 저하, 실업률 증가, 수명연장, 고령화는 결국 연금을 납부할 사람이 줄어들고 타 갈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을 부르게 된다. 연금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 불가피하겠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무 일 안 해도 연금을 타먹고 살 수 있는 은퇴, 이 은퇴기를 늦추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들어야 말이지.

이런 풍경은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된다면 청년층들은 취업문이 더 좁아지게 될 것이다. 은퇴자가 없으면 새로 뽑을 인원도 없겠지? 이러다보니 청년 실업률은 크게 뛰어 오를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그리스에서 청년들이 이 문제 때문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 정년 연장은 그런 의미에서 불 난 집에 시너를 뿌리는 격이란 해석도 무리가 아니다.

해법이 없을까? 일각에서는 고령화 사회에서 정년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평등인권위원회도 “굳이 일하겠다는 사람, 뜯어 말려 내보내는 거, 이거는 차별이다”라고 못 박았다. 흥미로운 회사가 있다. 정년을 만 100세로 명시한 회사이다. 100살 때까지 일할 수 있는 회사이다. 그렇다고 회사가 ‘니나노’ 시스템이냐, 놀고먹는 시스템이냐, 절대 아니다. 철저한 능력에 의한 고용방침이 선다. 해마다 업무능력이 부족한 인력 10% 퇴출을 원칙으로 정해 작년에도 3명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적합한 사람들은 버스에 태우고 부적합한 사람들은 내리게 한다’는 CEO의 좌우명, 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정년을 없애려는 의도에는, 나이가 들었어도 일할 의지가 있는 분들의 능력이 아쉽기 때문 아니겠나. 그렇다. 일본 오사카에서 1990년 설립된 ‘마이스터 60’이란 회사는 신입사원의 입사를 60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원의 평균 연령은 64세, 최고령자가 80에 가깝다. 숙련된 정년퇴직자들을 활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데 착안해 설립한 회사이다. 지금 사원 500명을 넘어섰다. ‘나이는 등번호, 인생에 정년이란 없다’는 사장의 좌우명, 적중한 것이다. 나이가 젊었다고 일 잘할 것이라는 생각, 늙었다고 일 못할 것이라는 생각, 다 편견이다. 편견을 깨야 창의성이 샘솟게 된다. 정년 논란, ‘나이가 대수냐’라는 논리가 힘을 얻는 능력 본위의 사회에서 참으로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