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우리 신양교회에 처음 부임한 것은 1991년 3월 24일 종려주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40을 갓 넘은 나를 젊은 목사라고 불렀고 노회나 총회에서 젊은 목사 그룹에 속했었습니다. 부임하여 곧바로 고난주간 행사와 부활절 행사로 분주했고 교회가 건축을 끝내고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뒤뚱거리고 있던 힘든 때였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괜찮다는 자신감으로 당당할 때이기도 했습니다. 전임목사님을 원로목사로 세우기 위하여 아무런 법적 보장 없이 2년간을 일했지만 그것 역시 걸림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된 내 목회는 2년 뒤 위임을 받고, 몰려오는 새가족들을 영접하고, 교회를 키워가는 재미에 흠뻑 젖기도 했지만 한동안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고비도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우리 교회를 ‘아침해가 떠오르는 땅(Morningcome Land)’으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따른 성장통(成長痛)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모두에게 힘겨운 아마겟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아픔들을 축복으로 보상해 주셨고 사람복이 많은 저에게 하나님은 신실한 동역자들과 묵묵히 돕는 협력자들, 그리고 믿어주고 참아주는 지도자들과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며 순종하고 섬겨주는 성도들을 많이 붙여 주셔서 어두운 밤을 지나 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 콘텐츠를 가진 교회, 좋은 목회 시스템을 가진 교회, 새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로 인정받는 오늘의 우리 신양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20년간을 피로조차 느끼지 못한 채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 왔습니다. 저에게는 설교처럼 신나고 일처럼 즐거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설교하고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취미가 없습니다. 설교가 즐거움이고 일이 곧 휴식이었습니다. 설교는 나에게 더 큰 활력을 주고 일은 나에게 더 큰 생동감을 줍니다.

이제 일을 놓고 안식년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건 지친 몸을 추스르고 과민한 정신에 안정을 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더 큰 일을 위해 달려갈 방향을 설정하고 더 높이 뛰기 위해 힘을 저축하기 위함입니다. 저의 안식년은 휴가나 연수가 아니라 새 일을 계획하기 위한 담임목사의 또 하나의 중요 사역입니다. 지금까지의 목회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의 내일을 가늠하기 위하여 사람과, 시간과, 일, 경제적 부담, 관계와 갈등으로부터 자유한 무중력 상태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조명해 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 길을 찾기 위함입니다.

6개월을 다녀오겠습니다. 2개월 정도는 그동안의 사역을 정리하는 책을 쓰고 2개월 정도는 사역의 새로운 지경을 찾아 해외를 여행할 것이며 2개월 정도는 국내 여러 교회들과 기관들을 돌아보고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최소한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를 우선하여 체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쌓인 먼지를 털고 찌꺼기를 닦아내고 자신을 하나님이 창조한 원래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모든 사역은 신실하고 유능한 동역자인 부교역자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각 부서 각 기관에서 자신을 드리고 있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로님들이나 부교역자들이나 그리고 모든 사역자들에게 특별한 지시도 당부도 않겠습니다. 모두가 지금처럼 해주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은 제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여전한 교회 사랑과 섬김으로 믿음을 지켜가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방을 나갔다가 그리고 조용히 다시 들어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냥 그렇게 일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도 달라진 것도 표 나지 않게 그냥 그렇게 갔다가 그냥 그렇게 돌아와서 그냥 그렇게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서 신비한 역사를 이루실 것이고 소문 없이 우리를 새로운 자리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안식년 역시 하나님과 저에게는 또 하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