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은 ‘2시에 들을 때 좋을 음악을 한다’는 뜻의,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남성 팀인데. 이 팀의 리더였던 재범 씨가 연습생 시절 때 인터넷에 남긴 넋두리가 문제가 돼 활동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를 폄하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하지? 그런데 최근에 소속 기획사가 “재범이 중대한 문제 때문에 영구 탈퇴했다”라며 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공개할 수 없는 사생활 문제" 때문이라고 하던데. 모자이크 효과라고 있지? 별거 아닌데 모자이크 처리하면 왠지 더 보고 싶어지는 그런 효과지. 팬들이 기획사에다 토해내는 분노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밝힐 수 없는 사생활의 문제’라고 언급하는 바람에 의혹은 더 크게 불거진 것이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온갖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와중에 소속 기획사 관계자들은 “그 문제, 지금 떠돌고 있는 루머보다 더 심각한 수위의 것이다”라고 불을 더 지피고 있다.

요즘에는 2PM 멤버들까지 나서서 재범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어서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좋은 형인 것은 분명하다"라면서도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자 재범의 복귀를 요구하던 팬들은 이 2PM 멤버들에 대한 안티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이야 말로 사생활이 복잡하지 않느냐’라면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기본이고,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정황 사진들을 첨부해 주요 언론사에 이메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성과의 교제, 종교 문제, 하여간 의혹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아울러 일부 팬들은 그 멤버들의 개인별 팬 사이트를 연이어 자진 폐쇄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 멤버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팬들도 있다.

어제 한 사진 기사를 보니까 “고객이 요구한다, 재범을 돌려줘!” 이런 격문을 적은 메모지가 보이더라. 재범 팬들의 글이다. 그렇다. 팬들은 스스로를 고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게 사실 오늘의 핵심 포인트이다. 통상 팬 하면, 스타가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어주는’ 우둔한 추종자로 인식돼 왔다. 실제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어떤 매니저는 스타 곁으로 다가오는 한 여학생 팬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다 동영상에 포착돼서 물의를 빚은 바 있었다. 그러나 요즘 소비자들은 다르다. 주권의식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의 신도가 아니라 주주다, 이런 인식이다. 이제는 스타의 출연작과 CF, 장기적인 비전, 의상까지 개입하고 있다. 스타라가 궁지에 몰리면 결사항전의 자세로 임하기도 한다. 재범 말고 동방신기를 탈퇴한 세 멤버들도 팬들의 신세를 졌지? 팬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팬들이 일간지에다가 ‘기획사와의 전속 계약이 부당하다’는 광고를 게재하더니, 나중에는 20만 명의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해서 한국소비자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전엔 스타에 대해 비우호적인 언론매체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거기다 전화나 이메일로 항의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최근엔 휴대전화에 1초 간격의 항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접속 불가 상태로 만드는 식의 조직적으로 강한 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기획사 같은 우호적이었던 대상이 순식간에 적대적인 공격 상대로 바뀌는 일도 허다하다.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일 것 같았던 팬들이 공격할 때면 기획사도 참 속이 끓겠다. 물론 팬들의 순기능은 여전히 많다. 기획사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서 스타의 호감도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기부활동을 한다 던지, 언론을 상대로 홍보 또는 기사 모니터까지 하고 있다. 이민호의 팬클럽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 이민호의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펼친다. 문근영의 팬 카페와 갤러리 회원들도 연예계 경사나 조사가 있을 때마다 문근영의 이름으로 화환을 보낸다. 그런가하면 G드래곤의 팬클럽은 최근 G드래곤의 새 앨범을 언론사에 전달했다. 소속사를 대신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펼친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주권의식을 가진 팬클럽이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 ‘노사모’가 원조라면 원조이다. 자발적인 상향식 논의구조인 최초의 인터넷 팬클럽이었다. 자기들끼리 지역 조직 만들고, 저금통에 돈 모아 후원하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벌인 조직이었다. 그 팬클럽을 기반으로 한 친노세력이 최근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고 말이다. 최근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정국 현안에 대해 여과 없이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주저함 없이 정치 한 가운데 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성 팬클럽이 실은 소외된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10여 년 전 하버드대 무명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혼자 볼링하기(Bowling Alone)’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신뢰와 유대가 사라진 사회를 꼬집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예전에 이웃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시합하고 피자파티를 벌이던 동네 볼링장. 이제는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소통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특정 스타를 중심으로 모인 팬클럽은, 바쁜 일상 속에서 멀어졌던 이웃이나 친구를 대신해서, 새롭게 친구로 지내고 싶은 사람들의 소통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더 선명한 모습을 보이려 하고, 그러다보니 더 오버한다는 것이다.